이천 ‘민주공원’에서 듣는 ‘그날이 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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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운동의 기억과 그 무렵의 문화예술 흔적들이 망실되거나 관제화되거나 박제화되고 말았는데, 거의 키치적인 공간이 된 이 추모 묘역에서 그나마 노래 하나가 들려와서, 문득 걷다가 멈춰설 수 있었다.

오래전에 거리에서나 옥탑방에서 부르던 노래, 여러 사람들과 더불어 부르기도 했고 무슨 까닭인지 혼자 있을 때도 한숨 쉬듯이, 천, 천, 히 부르던 노래가 있다. 문승현 작사·작곡의 ‘그날이 오면’이다. 이렇게 시작한다.

한밤의 꿈은 아니리 오랜 고통 다한 후에
내형제 빛나는 두눈에 뜨거운 눈물들

문승현의 기억에 따르면 “1986년인가? 아니면 85년?”, 영등포의 “성문밖교회, 도시산업선교회라고 불렀던 곳”에서 진행될 행사를 위해 여러 곡을 짓다가 만들었다고 한다. 김보성, 표신중 등과 함께 ‘노래모임 새벽’으로 활동하던 시절 “망원동 세 평짜리 차고. 늦겨울이었나? 아니면 초봄? 한기 때문에 갖다놓은, 냄새나는 석유난로가 기억”나는 곳에서 고 조영래 변호사가 몸으로 쓴 책 <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을 바탕으로 이 곡을 만들었다고 한다. 문승현은 이 노래를 기억하면서 “숭고한 아름다움. 내 젊은 날의 유일한 신앙”이라고 했고, “전태일이 그것을 내게 선사했다”고 썼다.

지난주에 올여름 경기 이천시에 마련된 ‘민주화운동기념공원’을 찾아갔었다. 중부고속도로 남이천 톨게이트를 빠져나오면 바로 눈앞에 있다. 정부가 466억원을 들여 15만774㎡ 규모에 조성했다. 2000년 1월 12일 제정된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에 관한 법률’에 근거하여 추진되었는데, 꽤 오랫동안 난항을 겪었다. 2002년 서울 수유리 4·19 민주묘지 인근과 2006년 인천시 남구에 공원 조성을 추진했지만 여러 이해단체들과 일부 주민들의 반발에 따라 지체되다가 2007년에 공모사업으로 전환하여 이천시에 유치하게 되었다.

경기도 이천 ‘민주화운동 기념공원’에는 강경대 열사를 비롯한 민주열사 49명이 안장돼 있다.

경기도 이천 ‘민주화운동 기념공원’에는 강경대 열사를 비롯한 민주열사 49명이 안장돼 있다.

민주화운동 시기에 울려퍼졌던 노래
이름은 ‘기념공원’이지만 실은 추모공원이고, 좀 더 사실적으로 표현하면 추모묘역이다. 그래서 일단 이런 생각부터 들었다. 보통 ‘공원’ 하면 잠실의 올림픽공원, 일산이나 광교의 호수공원, 분당의 중앙공원 등 도심지에 조성된 널찍한 녹지 휴식공간부터 떠올리게 된다. 물론 엄밀히 말하여 ‘공원’은 공공의 목적으로 조성된 시민의 공적 문화공간이라는 뜻이 크기 때문에 묘역도 그리 부를 수 있지만, 일상의 어휘에서 공원은 산책과 놀이의 공간이기 쉽다.

다음, ‘기념공원’이라는 말도 생각해 보자. ‘기념’은 역사적이든 개인적이든 어떤 뜻깊은 일이나 사건이나 뛰어난 인물 등을 오래도록 잊지 않고 마음에 간직함은 물론 일정한 형식으로 그것을 기억하는 일까지 포함한다. 이 객관의 묘사와 달리 기념은 대체로 밝고 건강한 일들에 해당한다. 상처 입은 삶, 잔혹한 학살, 뼈저린 상흔 등의 일도 사전적으로나 행정적으로나 그것을 기억하여 일정한 형식을 치르는 것은 당연히 ‘기념’이지만 어떤 경우에는 ‘추모’ 같은 용어가 좀 더 현실적이며 역사적이다.

그런 점을 생각해 보면 ‘민주운동기념공원’은 이 장소의 역사적 의의를 좀 더 고려하여, 예컨대 ‘민주화운동추모묘역’같이 좀 더 엄밀한 이름이 되었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행정 서식에 이런 용어가 없다면 모를 일이지만 말이다. 이곳은 고 김상진, 강경대, 김귀정 등 귀한 분들이 모셔져 있는 공간이다. 서울 동작동과 대전의 ‘국립현충원’은 물론이고 영천, 임실, 산청, 이천 등에 조성된 국가유공자를 위한 묘역 ‘호국원’이나 서울 수유리의 ‘4·19국립묘지’는 그 용어를 듣는 순간 어떤 장소이며 무엇을 기념하고 누구를 추모하는 곳인지를 금세 알 수 있다. ‘민주화운동기념공원’은 듣는 순간에는 묘역인지조차 분명치 않다.

그러나 이런 정도의 아쉬움은 기념공원을 무거운 마음으로 돌아보는 내내 더욱 짙어지면서 약간의 아쉬움 정도가 아니라 화가 날 정도로 급변하게 된다. 7개의 공간으로 나뉘어 있으되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는 이 공원은 맨 뒤편의 따스하고도 야트막한 곳에 조성된 묘역을 제외하고 나면 대체로 그 뜻을 기리는 추모의 조형물과 전시장으로 형성되어 있는데, 그 형상들이 몰역사적이며 그 만듦새가 뛰어나지 않다.

우선, 공원에 들어서 주차를 하고 나면 ‘민중의 힘’이라는 스테인리스 스틸 재질의 조형물이 눈에 들어온다. 가운데에 설치한 붉은 색 기둥을 좌우의 강력한 힘들이 떠받치는 형상이다. ‘민중이 힘’이라고 했지만, 그 추상성은 오직 ‘힘’의 강조에만 집중되어 있다. 그 형상들을 받치고 있는 바닥의 4개의 원형들은 견고한 받침이라는 구조적인 이유와 기하학의 조형성이라는 의무 이상의 그 어떤 언어도 갖고 있지 않다.

묘역으로 향하는 방향으로 조성된 ‘시간을 담은 희망의 공간’, ‘민주의 돛대’, ‘민주주의·민중의 길’ 등의 조형물도 물리적 ‘힘’과 강력한 ‘의지’의 강조라는 도심형 기념 조형물의 전형성을 전혀 벗어나지 않은, 진부하고 지루한 반복에 불과하다. 감히 말하건대, 이 형상물을 새로 조성된 아파트 단지나 도심지의 휴식형 공원에 갖다 놓아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

묘역 앞에 큼직하게 조성된 ‘염원의 빛’에 이르면 그 도식성과 알레고리의 진부함과 이질적인 크기에 오히려 놀라게 된다. 화강석으로 11m 너비에 높이 7m의 입방체를 쌓고 그 가운데에 원형의 스테인리스 스틸 형상물을 앉힌 후 LED 조명을 추가한 이 조형물은 국가 권력의 폭력에 저항하다가 죽어간 자들을 지극히 국가주의적으로 추모한다. 사실 추모라는 느낌도 들지 않는다. 단지 강한 입방체의 ‘힘’만이 두드러진다. 추모와 기억의 엄숙함이 아니라 ‘힘’의 무거움 말이다.

‘민주화운동기념공원’에 있는 추모 조형물 ‘염원의 빛’ .

‘민주화운동기념공원’에 있는 추모 조형물 ‘염원의 빛’ .

이 공원에 설치된 조형물들을 대체로 기획하고 조성한 곳은 ‘유니온아트’라는 업체인데, 내가 ‘업체’라고 표현한 것은 이 회사와 공원의 작업물을 비난하려는 게 아니라 회사 홈페이지에 ‘메탈, 환경조형물, 기념물 전문업체’라고 쓰여 있기 때문이다. ‘다년간의 노하우와 기술력으로 공간의 활용과 시각적 예술을 추구’하는 업체라고 스스로 소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야말로 ‘다년간’ 해온 작업들이 홈페이지에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살펴보니 ‘시화수자원공사’ ‘새만금방조제’ ‘과천시 기무사령부’ 등의 공간 조성을 하였고, ‘한화센텀시티’ ‘춘천 두산위브’ ‘울산 센트레빌’ ‘부천 휴먼시아’ 등의 아파트단지에 조형물을 제작·시공하였으며, 그밖에도 고속도로 휴게소·해수욕장·방조제 등에 각종 상징물을 설치한 업체다. 그러니까 청양에는 고추 형상물을, 진안공설운동장에는 공 차는 사람을, 제주도의 이호 해수욕장에는 배 형상물을 설치해온 업체이다.

‘추모’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 조형물
나는 지금 이 업체가 뭔가를 크게 잘못했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이 ‘업체’ 및 이 업체와 협업한 사람들이 민주화운동이나 고귀한 죽음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며, 그들은 그럴 만한 자격도 없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누군들 내가 그 역사적 죽음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문제는 이 묘역의 역사적 의의를 생각한다면 ‘업체’가 맡을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아파트단지도 아니고 그 무슨 준공탑 세우는 곳도 아니다. 묘역이다. 더욱이 개인적 죽음이 아니라 역사적 죽음이며, 그것도 타국과의 관계가 아니라 자국 안에서 부당한 국가 권력의 폭력에 맞섰다가 죽어간 분들이다. 이에 대한 역사적·심미적·조형적 고뇌가 반드시 수반되어야 할 장소라는 점! 그것에 대한 깊은 고려가 부재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넘어 허탈함과 분노까지 생겨나는 것이다.

그럼에도 따스한 가을 햇살에도 불구하고 묘역 일대는 무거운 공기가 지배하였고, 죽어간 분들의 영정을 모신 지하의 공간은 그나마 일체의 장식 없이 고귀한 죽음 그 자체를 직면하게 하는 바가 있어 다행이었다. 묘역은, 그러니까 죽음을 모신 장소는, 그에 걸맞은 장중하면서도 엄숙한 조형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둘러본 후 지하의 전시공간으로 이동하였는데, 이 공간의 구성과 전시내용도 아쉽기 그지 없지만, 민주화운동 시기에 울려퍼졌던 노래들이 흐르고 있었다. ‘그날이 오면’도 들려왔다. 민주화운동의 기억과 그 무렵의 문화예술 흔적들이 망실되거나 관제화되거나 박제화되고 말았는데, 안타깝게도 일정 수준의 관제화도 박제화도 아닌 거의 키치적인 공간이 된 이 추모 묘역에서 그나마 노래 하나가 들려와서, 문득 걷다가 멈춰설 수 있었다.

한줄기 강으로 흘러 고된 땀방울 함께 흘러
드넓은 평화의 바다에 정의의 물결 넘치는 꿈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한신대 정조교양대학 교수>

정윤수의 길 위에서 듣는 음악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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