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가습기 살균제 피해 정부판정 문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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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손상만을 관련성 기준으로 삼고 이외의 장기 영향 가능성 반영 안 해

“이게 무슨 소리야, 사망한 피해자가 언제 아산병원에 내원했다는 거야?” 2007년에 당시 25세의 아내를 잃은 유족 장원섭씨는 환경부의 조사판정위원회가 올해 8월 18일자로 발송해온 ‘가습기 살균제 폐손상 피해조사 결과 안내’라는 제목의 우편물을 받아보고 기가 막혔다. 2015년 초에 피해신고를 했고, 1년을 기다려 받은 결과 통지의 내용은 이랬다.

‘귀하의 거주환경에 대한 환경노출 평가와 귀하가 제출한 자료(임상, 영상, 병리 등) 판독 및 서울아산병원으로 내원하여 검사한 임상검사결과에 근거하여 판정하였을 때, 귀하의 질병은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말단기관지 부위 중심의 폐질환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판단됩니다.’

“죽은 사람인데, 병원 내원해서 검사한 근거로 판정했다는 건 기본적인 사실관계도 틀린 엉터리입니다.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하게 된 상세한 설명이 담긴 첨부자료가 있는 줄 알았는데, 전혀 없었어요. 재심 신청에 대한 안내문만 있더군요.” 정씨는 이런 걸 받으려고 작년부터 신청하고, 자료 보내주고, 설문에 답해준 게 아니었다며 울분을 토로했다. 환경부는 판정등급을 1~4단계로 나누어 일괄적으로 같은 내용의 결과서를 우편으로 통보했는데, 생존자에 대한 판정 결과 안내문구를 사망자들에게도 똑같이 적용해 이런 일이 벌어졌다.

“4등급 받았습니다. 2009년도에 제 딸아이가 태어난 지 6개월 만에 집에서 거의 반 죽어서 병원에 실려갔는데, 폐 사진이 없으니까 인과관계가 거의 없다고 합니다. 심장이 안 좋아서 치료받고 많이 좋아졌다가 홈플러스 가습기 살균제를 쓴 이후에 다시 심장이 나빠져서 죽었어요. 그런데 오직 독성물질과 폐의 연관성에 중점을 둔 판정입니다.”

2009년 1월에 태어난 딸 지현이를 6개월 만에 하늘로 보낸 아빠 김홍석씨 이야기다.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심장이 안 좋았지만 병원에서 수술을 하지 않고도 약물치료로 나을 수 있다고 해 열심히 약을 복용해 상당히 좋아졌는데, 홈플러스에서만 파는 PB상품 가습기 살균제 2개들이 세트를 사서 1개를 사용하는 동안에 급격하게 나빠졌고 병원에 실려간 후에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다.

김씨는 홈플러스 가습기 살균제 제품도 옥시싹싹과 같은 PHMG라는 살균성분을 사용했기 때문에 딸에 대한 판정 결과가 다른 옥시 제품 사용자들과 같이 관련성이 높은 것으로 나올 것으로 믿고 있었는데, ‘관련성 거의 없음’의 결과를 받고 황당했다고 한다.

환경부의 가습기 살균제 피해 3차 접수자에 대한 조사·판정 결과에서 3~4단계 판정을 받은 피해자들이 8월 19일 서울 환경보건시민센터에서 ‘수용할 수 없다’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환경보건시민센터

환경부의 가습기 살균제 피해 3차 접수자에 대한 조사·판정 결과에서 3~4단계 판정을 받은 피해자들이 8월 19일 서울 환경보건시민센터에서 ‘수용할 수 없다’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환경보건시민센터

생존자에 대한 안내문을 사망자에게도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에 대한 정부의 판정은 왜,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일까? 이유는 살균제 사용과 건강 피해를 각각 확인하고 이의 관련성을 판단하기 위함이다. 가습기 살균제의 종류는 많고 성분도 제각각이다. 사용한 사람도 부지기수다. 따라서 훈련된 전문조사원이 직접 신고자 집을 찾아가 가습기 살균제 사용환경을 확인한다. 이 제품들이 일회품이기 때문에 신고자 대부분이 제품을 증거로 갖고 있지 않은 상황이라서 사용 여부에 대한 조사는 매우 중요하다. 지금까지 조사된 모든 피해 신고자들은 모두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것이 확인되고 있다.

건강 피해에 대한 조사는 소화기내과, 소아청소년과, 영상의학과, 조직병리학과, 직업환경의학과 등 전문분야의 의료진들이 맡는다. 살균제 사용에 대한 환경조사와 건강영향조사는 별도로 진행되다가 나중에 통합적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사용 제품의 종류에 따른 판정 차이는 발생하지 않는다. 문제는 판정기준이다. 어떤 내용의 건강 피해가 가습기 살균제에 의한 것인지를 확인하고 이를 기준으로 삼아 피해 신고자들의 건강 피해를 확인해서 관련성 여부를 판단하게 된다.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모든 사람들이 건강 피해를 입은 게 아니라 사용자의 일부에게만 피해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흡연이 폐암을 일으키는 건 맞지만 모든 흡연자가 폐암에 걸리는 것은 아닌 것과 같은 이야기다.

2011년 초 정부가 역학조사를 하게 된 계기는 아산병원 응급실에 실려온 산모 7명과 성인 남성 1명이 원인 미상의 폐손상으로 심각한 호흡곤란을 일으켜 이 중 4명이 사망하고 다른 3명도 폐이식으로 겨우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당시 판정기준은 폐손상에 집중되었다. 당시 피해자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난 흐름은 ‘가습기 살균제 사용 이전에는 문제가 없다가, 사용한 이후 일정시간이 지나 감기증상이 나타나고 호흡곤란이 일어나고 호전이 안 되다가 심각한 상태에 빠지고, 병원에서의 의료조치에도 불구하고 사망에 이르는데, 이러한 과정이 몇 주에서 몇 달 정도의 비교적 짧은 기간에 일어난다’는 것이다. 폐손상의 공통된 증상은 ‘폐포와 연결되는 호흡기의 끝부분인 말단기관지에서부터 염증이 일어나고 이어 폐포, 즉 허파꽈리로 염증이 확산되는데, 살균제 노출과 중단이 반복됨에 따라 염증과 회복이 반복되면서 폐가 딱딱하게 굳는 폐 섬유화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이 폐를 찍은 사진에는 반투명 유리가루가 뿌려진 듯하다 해 간유리음영이라고 표현되기도 한다. 이러한 내용이 판정의 기본적인 기준이 되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폐손상의 판정기준에 부합하는 의료적 증거가 있으면 ‘관련성 매우 확실’이라는 1단계, 부합하지만 증거가 부족하면 ‘관련성 높음’의 2단계, 부합한다고 보기 어렵지만 완전히 아니라고 하기 어려우면 ‘관련성 낮음’의 3단계,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하면 ‘관련성 거의 없음’의 4단계로 구분된다.

4가지 판정단계 구분이 문제인 이유는 정부가 1~2단계만을 공식 피해자로 인정하여 의료비와 장례비를 일부 지원하기 때문이다. 3~4단계는 아무런 지원이 없다. 3단계는 혹시 모르니 살펴보자는 의미에서 1년에 한 번씩 건강검진을 한다. 4단계는 그마저도 없다. 따라서 4단계 판정자는 이후 상태가 악화되어 사망해도 알려지지 않는다. 이미 그런 경우가 발생해 1~2차 조사에서 4단계 판정을 받은 3명이 나중에 사망했지만 정부는 이를 사망자 통계에조차 반영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환경보건시민센터가 정기적으로 발표하는 피해현황 통계와 정부의 통계가 다른 것이다. 한마디로 4단계 판정자들은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도 하지 않은 것처럼 취급되는 것이다.

옥시 측이 전문기관에 의뢰한 독성시험 결과 폐가 망가졌고 간독성이 심각하게 나타났다. 그러나 옥시는 이 결과를 은폐했다. / 한국건설생활연구원

옥시 측이 전문기관에 의뢰한 독성시험 결과 폐가 망가졌고 간독성이 심각하게 나타났다. 그러나 옥시는 이 결과를 은폐했다. / 한국건설생활연구원

4단계 중 1~2단계만 공식피해자 인정
지금까지 정부가 판정한 조사자는 1~3차 695명이다. 이 중 37.1% 258명이 정부 지원대상인 1~2단계이고, 절반이 훨씬 넘는 62%인 431명은 3~4단계이다. 정부 지원이 전혀 없는 3~4단계 비율이 1차 51%에서 2차 69.2%로, 다시 3차 79%로 점점 늘어났다. 사망자들의 판정단계를 보면 1~3차 189명 중 59.8%인 113명이 1~2단계이고, 39.7%인 75명이 3·4단계로 사망자 10명 중 6명이 1~2단계 판정을 받았다. 사망자들의 경우에도 3~4단계 비율이 1차 39.7%에서 2차 47.4%로, 다시 3차 63%로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판정기준의 문제를 보다 자세히 살펴보자.

첫째, 폐손상만을 관련성 기준으로 삼고, 폐손상의 경우에도 대부분의 ‘특발성폐섬유화증’ 사례가 3~4단계로 판정되고 있다. ‘특발성’이란 ‘원인을 모른다’는 의미인데, 특발성폐섬유화증을 일으키는 원인으로는 흡연, 석면 등에서부터 1994년부터 판매되기 시작한 ‘가습기 살균제’가 원인에 포함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지적하자면 가습기 살균제를 판매하기 시작한 1994년을 기준으로 ‘가습기 살균제가 원인일 수 있는 1994년 이후에 검진된 특발성폐섬유화 사례’와 ‘가습기 살균제 노출이 원인일 수 없는 1994년 이전의 특발성폐섬유화 사례’ 간의 차이 연구를 통해 ‘특발성섬유화’와 ‘가습기 살균제 노출’ 관련성의 차이를 밝혀내고, 이를 근거로 관련성 여부를 판정하지 않는 이상 현재의 4단계 판정은 주관적이고, 근거에 기반한 판정이라고 하기 어렵다.

둘째, 폐손상 이외의 장기 건강영향의 가능성 근거를 반영하지 않고 있다. 간독성과 피부독성에 대한 동물실험 결과 및 실제 사례가 있는데, 이는 다름아닌 옥시가 한국건설생활시험연구원에 의뢰한 결과였다. 심장부위 영향에 대해서는 영남대학교 연구팀에 의한 동물실험 결과가 있고, 심장 관련 피해사례가 있다. 천식과 비염의 경우가 피해자들이 공통적으로 가장 많이 호소하는 증상이다. 특히 애경 가습기메이트, 이마트 PB, 지에스 PB 등의 제품 성분인 CMIT/MIT의 독성자료에 이미 나와 있는 동물실험 증상이다. 그외 신체부위의 영향에 대해서도 특발성폐섬유화증의 경우와 같이 명확하게 관련성이 없다는 근거가 제시되지 않고 주관적인 임상경험에 의존해 4단계 판정을 해서는 안 된다.

셋째, 기저질환의 영향에 대해서도 분명한 관련 연구를 하지도 않고 3·4단계 판정을 내리고 있다. 건강한 사람들도 가습기 살균제에 노출되어 죽고 심각한 손상을 입는 마당이다. 그런데 병약하거나 환자인 경우 가습기 살균제에 노출되면 기존의 병환이 더 악화되거나 이 때문에 심지어 사망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은 누구나 의심할 수 있다. 그런데도 이런 부분에 대한 관련 연구를 해보지도 않고 단지 제출된 의무기록상 기존의 질환에 대한 근거가 뚜렷하다는 이유만으로 3·4단계 판정을 내리고 있다. 이 부분 역시 최소한 관련 가능성을 열어놓는 3단계 판정으로 국한해야 하며, 4단계 판정을 내릴 경우는 분명하게 관련성이 없다는, 즉 가습기 살균제 노출로는 일어날 수 없다는 근거가 명확하게 연구 제시된 경우에 한해야 한다.

넷째, 태아 영향, 사산, 의무기록이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영유아 사망, 혈액순환장애로 인한 뇌질환, 암과 같은 만성질환 같은 문제도 마찬가지 이유로 3·4단계 판정이 주를 이루고 있다. 특히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결과인 사망의 경우 관련성이 없다는 객관적이고 충분한 연구와 근거가 없는 한 관련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하고, 따라서 4단계 판정을 내려서는 안 된다.

이러한 판정기준의 문제점들은 환경보건과 산업보건의 유명한 국내외 사례에서도 나타난 바 있는데, 과거의 오류가 또다시 반복되고 있다. 즉 사건 초기에는 기존에 경험한 바 없는 일이기도 하고, 문제를 축소 은폐하려는 정부와 관련 기업의 움직임 때문에 매우 엄격한 관련성 판정잣대를 들이대 소수의 피해자만 인정하고, 이 때문에 피해자들이 발발하면서 사회적·법적·의료적 문제제기가 일어난다. 시간이 지나면서 관련성을 폭넓게 인정하라는 법원의 판결이 나오거나 추가적인 연구를 통해 판정기준의 근거가 확보되어 피해자 다수가 관련성을 인정받게 된다.

가습기 살균제 노출로 인한 건강영향 이미지. / 월간 함께 사는 길

가습기 살균제 노출로 인한 건강영향 이미지. / 월간 함께 사는 길

기저질환에 대한 연구도 없이 판정
이러한 사례로는 세계적인 공해병인 일본의 미나마타병, 한국의 대표적인 산업보건 사례인 원진레이온 이황화탄소 중독사고가 있다. 미나마타병의 경우, 초기 일본 정부는 복수의 증상을 나타내는 피해자만을 인정했고 수은에 오염된 생선을 섭취한 엄마에게서 태어난 뇌성마비 신생아는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관련 연구를 통해 태아성 미나마타병이 확인되었고, 법원은 하나의 증상만을 나타내는 경우도 미니마타병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고 판결하여 관련 피해자가 대폭 인정되었다. 이러한 과정은 수십 년이 걸리고 말았다. 대표적인 산업재해이자 직업병 피해사건인 원진레이온의 경우에도 초기에 정부는 극히 일부만 산업재해로 인정했고, 이에 관련 피해자와 사망자들이 크게 반발했다. 결국 추가적인 연구를 통해 관련성이 폭넓게 인정되었는데, 역시 피해자와 가족에게 큰 어려움을 안겼다.

판정기준이 개선될 때까지 기본 환경노출조사 이외의 현행 판정절차는 중단돼야 한다. 폐손상을 중심으로 하는 현재의 판정절차상 폐손상을 중심으로 하는 의무기록만이 강조돼 제출되고 있다. 판정기준이 다른 장기와도 관련이 있다고 본다면 기존의 관련 병원기록을 새롭게 파악하고 제출돼야 할 것이다. 병원기록 외에 현재의 건강상태를 파악하는 검진내용과 방법도 달라져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환경보건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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