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울타리가 필요한 파견노동자, 노조는 당연한 권리입니다

반월시화공단 내 만연한 불법파견은 이곳의 노동조건을 다른 어느 곳보다 열악하게 만든다. 노조가 없어 저임금·장시간 노동이 고착화돼 있다. 노조가 없어 파견이 늘어나고, 파견이 늘어나면서 노조조직률이 저하되는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이 모여야 한다.

“우리 회사는 전통적으로 노조가 없는 회사니까 그런 기대는 애초에 안 했으면 좋겠고, 여직원들은 승진 없고 수당 올라가는 것도 없으니까 그런 거 감안하고 들어오세요.”
면접관이 말했다.

“네, 저는 정말 그런 거 상관 없습니다.”

윤지은씨(가명·33)는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힘껏 대답했다. 진심이었다. 노조, 승진, 수당은 전혀 따질 만한 기준이 아니었다. 기준은 단 하나였다. 안정적으로 계속 다닐 수 있는 정규직이냐, 아니냐. 윤씨는 면접을 통과하고 정규직으로 뽑혔다. 그는 자신의 합격을 “인간 승리”라고 말했다. “오랜 기간 파견직으로 장기근속했던 언니들도 있고, 여름방학 때부터 취업 나오기 시작하는 열아홉 살 어린 애들도 있다. 정규직 자리가 난다고 해도 내 나이대가 정규직이 되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정말 인간 승리다.”

6월 8일 수요일 안산역 광장에서 안산공단 내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월담무료상담소가 열렸다. / 이미숙 제공

언제든 교체할 수 있는 부품 같은 파견직
윤씨는 이 회사의 파견노동자였다. 1년 넘게 파견직으로 일하며 정직원 결원이 나기만을 기다렸다. 정직원 결원이 나면 파견노동자 중에서 정직원을 채용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파견노동만 이 회사가 네 번째였다. 파견노동자는 언제든 갈아끼울 수 있는 부품 같은 존재였다. 윤씨가 첫 파견노동을 한 곳은 전자제품 조립회사였다. 파견업체를 따라 첫 출근한 날은 잊을 수가 없다. 작업장은 흡사 경매장 같았다. “파견업체 10군데 정도에서 파견노동자들을 데려왔다. 관리자가 각 부서에 부족한 인원을 칠판에 적었다. 도장반에 3명 필요하다고 하면 한 파견업체가 ‘우리 3명 보낼게요’라고 답하는 식이었다.” 아침마다 반복되는 일이었다. 새로운 사람들이 그날그날 투입돼 바로 작업을 시작했다. 약간의 숙련도 필요 없을 정도로 일을 쪼개놨기 때문에 가능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회사에서는 혼자서 할 만한 일을 3~5명으로 쪼개놓았더라. 매일 새로 파견이 와도 공정 속도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게 아주 단순한 작업으로 일을 나눠놓는 것이다. 그래서 수시로 사람을 교체하며 넣어도 공정이 늦어지는 것은 없었다.”

인력이 바로바로 채용된다는 것은 또 바로바로 해고될 수 있다는 것을 뜻했다. 윤씨는 “하루아침에 100명 잘랐다가 하루아침에 100명씩 뽑기도 하고, 언제 잘릴지 모르는 게 파견노동자다”라고 말했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기에 미래 계획은 그저 뜬구름 같은 이야기다. “당장 오늘 저녁 잔업이 있는지, 이번 주말 특근이 있는지 모른다. 미래 계획은 세울 수 없다. 파견노동하면서 적금 같은 건 들 수가 없다.” 윤씨의 말대로 파견노동자에게 자신의 시간은 없다. 그날의 물량에 자신의 시간을 끼워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파견노동을 하는 동안 윤씨는 물량이 많은 날에는 하루 5시간 잔업에 토요일 10시간 특근을 했다. 법정근로시간인 주 52시간을 훨씬 뛰어넘는 75시간 노동이다. 그러다 물량이 떨어지면 주 3일밖에 일을 못했다. 당연히 휴업수당은 없다. 회사로서는 전혀 손해볼 것이 없다. 그러다 계절적 요인 등으로 물량이 아예 없는 시기가 오면 회사는 해고를 통보했다. 퇴근 3분 전에 파견노동자를 모아놓고 내일부터 나오지 말라는 식이었다. 언제 잘릴지 모른다는 불안 없이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고, 비슷한 최저임금이지만 얼마간의 상여금도 받을 수 있고, 퇴직금과 4대보험이 가능한 정직원이 된다면 윤씨는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노조, 승진, 수당은 당연한 권리가 아닌 비현실적인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노조 있으면 좋긴 하겠지만, 그게 가능할까?” 윤씨가 말했다.

윤씨는 안산 반월시화공단에서 일한다. 반월시화공단은 중소기업 밀집공단으로, 전국의 공단들 중 파견업체들이 가장 많이 밀집해 있는 공간이다. 반월시화공단에는 50인 미만의 소기업이 전체의 90%를 넘는다. 대부분 제조업이다. 법은 제조업에 파견을 허용하지 않는다. 다만 예외적으로 일시·간헐적인 업무에 한해서만 최장 6개월까지 허용한다. 반월시화공단의 현실은 이 법의 테두리를 한참 벗어나 있다. 공단 내 불법파견의 만연은 정부도 인정하는 공공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정부는 ‘행정력의 한계’를 들먹이며 불법파견 문제에 손을 놓고 있다. 반월시화공단이 불법파견의 치외법권 지대가 되면서 이곳의 노동조건은 다른 어느 곳보다 열악해져 간다. 반월시화공단노동자 권리찾기모임 ‘월담’과 민주노총 안산지부의 임금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국 노동자의 월평균 노동시간은 174시간이고, 월평균 임금은 274만원이다. 반면 반월시화공단 노동자의 월평균 노동시간은 218시간이고 월평균 임금은 210만원이다. 명백한 저임금 장시간노동이다. 장시간노동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강요된다. 파견노동자로 일하다 최근 정규직으로 취업한 이영숙씨(여·31)는 “파견노동으로 핸드폰에 붙어 있는 보호필름을 떼는 작업을 하루 열두 시간씩 했다. 그런데 어느 날 회사가 두 시간을 더하라고 강제하더라. 라인에 30명 넘게 일하는데, 나와 아이엄마 한 명만 못하겠다고 했다. 당장 회사 사장이 내려와 노발대발했다.” 결국 아이엄마는 다시 들어가서 일을 했고 일을 못하겠다고 버티던 이씨는 일을 그만두어야 했다. 임금은 최저임금 수준이다. 파견노동자의 시간당 평균임금은 6270원. 전국에 비해 저임금인 반월시화공단 노동자의 시간당 평균 임금 7940원보다도 훨씬 낮았다. 파견노동자 중 최저임금에 못 미치게 받는다는 응답도 50%가 넘었다.

파견직 절반 이상이 최저임금도 못 받아
반월시화공단에 저임금·장시간 노동이 고착화돼 있는 것은 노조가 없기 때문이다. 안산의 문상흠 공인노무사에 따르면 안산의 노조 조직률은 3%다. 전국 평균 조직률이 10.3%인 것에 비하면 현저하게 낮다. 문 노무사의 말이다. “영세한 업체가 많고 100인이 넘는 사업장이 몇 개 없다. 노동조합이 만들어지면 회사가 폐업을 하고 다른 곳으로 부지를 이전한다든지 하는 경우도 있다.” 불법파견이 만연하면서 노조 조직은 더 어려워졌다. 오민규 전국비정규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은 “반월시화공단은 초단기형 파견이 맞춤형으로 진행되고 있는 지역이다 보니까 노조라고 하는 안정적인 조직체를 꾸리기가 어려운 구조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노조가 없어 파견이 증가되고 파견이 증가되면서 다시 노조 조직률이 저하되는 이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라도 노동자들이 모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공장과 공장 사이, 그 벽을 넘어 함께 움직일 공간’이라는 뜻의 ‘월담’은 그래서 만들어졌다. 4년 전부터 반월시화공단에서 노동자들의 힘을 모으기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월담은 “임금협상도 못하는데 임금인상은 생각하기 어렵다가 아니라 노동자가 모이지 않기 때문에 임금협상도 못하고 임금인상도 어려운 것”이라며 “이제라도 함께 모여 ‘우리 공단’의 임금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삶의 조건을 나누는 것을 시작해야 할 때”라고 주장한다. 노조로 갈 수 있는 초기 형태인 노동자 모임을 구성하기 위해 지난 4년간 월담은 반월시화공단에 몇 개의 거점을 잡아 지속적으로 노동자들을 만나 왔다. ‘노동자들의 권리찾기’의 일환으로 ‘근로계약, 임금·체불, 징계·해고, 노동시간 등 일하면서 궁금한 문제에 대한 상담’, ‘노동법 교실을 통해 근로기준법·비정규직법 등에 대한 정보 제공’ ‘실태조사·토론회·정책모임 등을 통해 노동자 권리찾기를 위한 의제 마련’ ‘매월 월담 난장 및 안산역에서 캠페인’ 등의 활동을 해 왔다.

더디지만 반응이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다. 월 1회 안산역에서 열리는 월담의 캠페인에 노동상담을 받으러 오는 사람들이 늘었다. 팸플릿을 나눠주면 “아, 월담” 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도 늘었다. 그러나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한 군데에 모으기는 쉽지 않았다. 월담 활동가들은 매주 수요일 점심시간에 공단을 찾아 최저임금 인상 등의 주제로 선전전을 해 왔다. 이미숙 활동가는 이를 “사람을 찾으러 간다”고 말했다. 하루 12시간 꼬박 공장 안에서 일하고 출·퇴근시간에는 통근버스가 실어다 나르는 구조에서 노동자들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임순영 활동가는 “공단이 좀 특이한데, 길거리에 사람이 없고 공단 안에도 없다. 안산역에서 캠페인이나 문화제를 해도 사실 누가 공단 노동자인지 알 수가 없다. 사람들을 만나기가 힘든 구조라 계속 찾으러 다녀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하반기에는 ‘노조하자’는 주제로 모임을 만들고 4개월간 이를 홍보한 적이 있다. 노조가 무겁고 어려운 것이 아니라 헌법에 보장된 권리이며 또 왜 필요한 것인지에 대해 가볍게 이야기를 해보자는 취지였다. 모임 날짜와 이야기 주제를 놓고 홍보했지만 찾아오는 사람은 없었다. 엄진령 활동가는 “여기 노동자들이 관계 맺기가 어렵다. 노동법교실을 안내하고 공단 안에 안내문을 붙이고 올지 안 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기다리기를 반복했다. 장시간노동에 회사 눈치도 보이고 행사를 찾아올 여유가 없다”고 말했다. 월담은 어떤 매개로 사람을 찾고 모아야 할지 계속해서 고민 중이다.

아파트형 공장에 여러 개의 영세업체가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박송이 기자

노동자 권리찾기 나선 지역사회 모임
공단 노동자들은 노조는 필요하다고 생각은 하지만 현실화되기는 어렵지 않으냐고 말했다. 이은식씨(47)의 말이다. “공단 내에서만 28년 일했다. 별로 변한 게 없다. 노조는 있어야 하는데, 지금 내가 일하는 업체에서는 11명이 일한다. 11명이서 뭘 생각하기가 힘들다. 필요는 하지만 중소영세업체가 많다 보니 여건이 맞지 않는다.” 김진석씨(가명·62)는 “노조야 있으면 좋은데, 그게 그렇게 안 될 거다. 10~12시간 일하고 나서 노조 만들 시간이 있겠나. 또 노조를 만들려면 적어도 5~6년 경력자들이 뭉쳐서 해야 하는데, 다들 요즘은 단기간 일하고 이직을 해서 중심에서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월담에 따르면 안산지역의 근속연수는 1년 미만이 31.3%, 1~2년이 17.1%, 2~5년이 22.4%다. 5년 이상은 29.2%에 불과했다.

이러한 단기노동이 지역 내 주요 노동형태로 자리잡으면서 동료관계마저 끊어졌다. 회사 안에 노조를 만들기 위해서는 노동자들 간의 관계가 형성되어야 하는데 단기노동과 비정규직 및 파견노동의 증가는 동료관계 형성마저 생략시켜버렸다. 파견노동자로 일하다 최근 정규직이 된 이영숙씨는 파견노동과 정규직은 동료관계 형성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고 말했다. “일단 정규직이 되니까 다른 부서에도 소개시켜주고 인사도 시켜줬다. 그러나 파견노동은 그렇지 않다. 같은 라인인데도 이름도 모르고 나이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여기가 내 회사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곧 나갈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파견직일 때 내가 그 회사를 다닌다고 말하는 것도 왠지 부자연스러게 느껴졌다. 이런 상황에서는 동료의식이 생길 리 없다.”

반월시화공단에서 일하는 청년노동자들의 정주의식을 분석한 논문 ‘부유하는 노동자: 시흥시 정왕동 1인가구 노동자들의 생활세계’(김철식·2016)는 불안정한 고용이 공사를 막론하고 모든 관계 형성을 가로막는다고 지적했다. “주목할 것은 작업장에서 인간관계, 친밀한 동료관계가 형성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파견직이나 계약직은 고용이 불안정하고, 이에 따라 사람들이 자주 바뀌기 때문에 작업장 내에서 친밀하게 지내거나 사적인 관계를 맺기가 어렵다.” 나아가 장시간노동은 직장 밖의 지역사회와의 관계맺기도 어렵게 한다. “장시간노동이 일상화되어 있는 조건에서 작업장을 벗어난 일상적 인간관계를 만들어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는 작업장에서의 불안한 고용과 빈약한 동료관계가 일상적인 사회적 관계 형성을 어렵게 만들면서 노동자들의 정주성 형성을 제약하는 조건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함의한다.” 결국 직장 안팎 모두에서 관계망 형성이 어렵다 보니 개별 노동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열악한 노동조건을 자발적으로 수용하는 것뿐이다. 연세대 동서문제연구원 소속인 김 연구원은 이를 ‘부유하는 노동’이라고 명명했다. “자신이 속한 지역에 대한 정주의식이 매우 낮은 가운데, 노동과 주거의 불안정성을 적극적으로 변화시키려 하기보다는 주어진 상황을 체념적으로 받아들이면서 ‘부유’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이지만, 노조의 경험을 통해 ‘부유하는 노동자’를 넘어 다른 가능성을 모색하기도 한다. 2년 전 반월시화공단에서 파견노동을 시작한 이성재씨(가명·29)는 지금은 정규직 직원이다. 이씨는 2년 전 울산에서 안산으로 올라왔다. 구직사이트에서 본 안산시화공단 내 생산직 일자리는 생각보다 나쁘지 않아 보였다. 파견업체가 올린 공고에는 6개월 후 정규직으로 전환이 되고 기숙사를 제공한다고 되어 있었다. 깨끗한 기숙사 내부 사진을 보니 환경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급여도 괜찮은 수준이었다. 그즈음 이씨는 해양플랜트 사내하청에서 하던 용접일을 막 그만둔 참이었다. 이씨는 제대 후 대학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집안형편도 어려웠고 대학을 더 다닌다 해도 취업난에 뾰족한 수가 없어 보였다. 그보다는 하루빨리 기술을 배워 돈을 버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직업훈련원에서 3개월 용접기술을 배우고, 사내하청에 들어가 용접 조공부터 시작했다. 갓 들어온 이씨에게 일은 무척 위험해 보였다. 아파트 5층이 넘는 높이를 수시로 오르락내리락해야 했는데, 작업속도는 굉장히 빨랐다. 회사는 근로계약서도 쓰지 않았다. 계속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판단한 이씨는 일을 그만두었다. 새로운 일을 찾던 이씨는 파견업체에 연락한 후 반월시화공단에 들어왔다. 그러나 모든 것은 예상과 달랐다. 파견업체는 기숙사가 아닌 무보증 월세 원룸을 소개시켜줬다. 원룸에 두 명이 함께 살았는데, 너무 더러웠고 벌레가 들끓었다. 파견업체가 연결해준 회사는 핸드폰 액정 부품을 만드는 곳이었다. 주야 맞교대로 12시간씩 서서 일하고 일주일이 지나고 나니 결코 이 일이 조선소보다 낫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쳐서 돌아오면 벌레들 때문에 잠을 자지 못했다. “정말 내려가고 싶었는데, 벗어나고 싶었는데 못 벗어나는 상황이었다. 그냥 버텼다.” 한 달 만에 이씨는 고시원으로 옮겼다. 그리고 7개월 사이에 작업장을 세 번이나 옮겼다.

그러나 고립된 공간에서 작업장을 세 번이나 옮기며 ‘부유하던 노동’을 하던 이씨가 다른 가능성을 모색한 건 마지막 해고된 후 노동청에 진정을 내면서다. 더는 이런 방식의 노동을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 이씨는 지인의 추천으로 민주노총 일반분회에 가입한 후 진정을 내기로 결심했다. 노조의 도움을 받아 노동청에 진정을 냈고, 불법파견으로 판정되면서 이씨는 회사의 정직원으로 취업할 수 있었다. 이씨는 “파견노동으로 일할 때는 미래를 계획할 수 없었고 많이 불안했는데, 정직원이 되고 나서는 미래도 생각해 보고 이 지역에서 어떻게 뿌리내리고 살아갈지 고민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명숙씨도 이씨와 마찬가지로 갑작스럽게 해고되자 불법파견에 항의하며 노동청에 진정을 냈다. 이씨 또한 정규직으로 채용됐다. “진정을 넣어보니 알겠더라.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그때 노조에서 같이 기자회견을 해주고 지원을 많이 해줬다. 혼자 싸우는 건 너무 힘이 없다.”

점심시간을 마치고 공장으로 돌아가는 노동자. / 이미숙 제공

‘부유하는 노동자’ 넘어 가능성 모색
그러나 노동청에 진정을 내는 것과 같은 개별적인 싸움에는 한계가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김철식 연구원은 지역노조처럼 노동자들의 커뮤니티를 만드는 게 절실하다고 말했다. “노동자들이 집단적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개별화되는 경우 이들의 정치적 영향력은 매우 빈약할 수밖에 없다. 정치적 영향력이 없는, 집단화되지 못한 노동자들에 대한 정치적·사회적 관심은 낮을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지역에서 커뮤니티를 만드는 작업들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역 차원의 공동체 모임이라든지 커뮤니티 활성화 작업이 필요하다.” ‘월담’도 기업별 노조를 만드는 것이 어려운 안산공단의 특수성을 고려해 지역노조의 방식으로 노조를 만들어가는 방법을 모색 중이다. 이미숙 활동가의 말이다. “지역적 상황이 중소영세사업장이 많고 계속해서 사업장을 옮기는 파견노동자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기업별로 노동자들을 조직하지 않고 지역 차원에서 노동자를 조직할 계획이다. 지역에서 노동자들이 다함께 요구를 해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게 맞지 않겠느냐는 고민이다. 안산시나 안산노동고용청 등 지자체를 상대로 한 여러 가지 요구들이 있을 것이고, 지역의 사용자 단체를 대상으로 한 요구들이 있을 것이다. 여기가 국가산업단지이다 보니까 국가산업단지를 관장하는 기관들을 대상으로 한 요구들도 있을 것이다. 노동자들과 지역주민들의 요구를 수렴해 다각도로 활동을 할 예정이다.”

이훈원 중부지방고용노동청 안산지청장은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어떤 형태로든 방안을 마련하지 않는 이상 저희 행정력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말한 바 있다. 13년째 공단에서 일하고 있는 안성호씨(39·가명)는 “고용노동부에서 지청장이 안산에 불법파견이 너무 많아서 단속하기 힘들다고 하는데, 노동부에서 지역노조 만드는 것을 지원해주면 이 문제를 싹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여기에 공간도 내 주고 상근자들 월급도 지원해주면 불법을 없앨 수 있다”고 말했다.

인력알선업체가 일자리를 창출한다고?

지난해 한 인력알선업체가 일자리 창출한 공로로 국무총리상을 받았다. 인력알선업체와 일자리 창출이 무슨 관계일까. 근로기준법 9조는 중간착취를 금지하고 있다. 노동계 관계자는 “인력알선업체가 일자리를 창출했다고 보기는 힘들고, 정부는 파견노동 등 중간착취가 발생하는 구조를 개선해서 노동권이 보장될 수 있도록 공적 인력정책을 펼쳐야 함에도 불구하고, 중간착취를 발생시키는 인력알선업체에 일자리 창출 상을 줬다. 한마디로 한숨이 나오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인력알선업체에 ‘일자리 창출’ 상을 수여한 것은 ‘일자리’에 대한 정부의 시각을 보여준다. 양질의 좋은 일자리를 늘리기보다는 취업률 숫자만 높일 수 있다면 그것이 곧 ‘일자리 창출’이라고 보는 게 정부의 시각이다. 파견노동을 하기 전 직업상담사 일을 했던 이영숙씨(31)는 정부가 내세우는 취업률은 숫자 맞추기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에 소속돼 직업상담사로 일했는데, 노동부에서 내려보내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식이었다. 한마디로 숫자 맞추기였다. 취업률 95%를 맞추라는 식이었다. 주 1회 1시간씩 3주 동안 구직자를 만나서 일자리를 소개시켜주는 것이었는데, 그런 식으로는 좋은 일자리를 당연히 소개시켜줄 수 없다. 당장 하루하루가 급하고 다급한 사람들은 파견직에 뛰어들어갈 수밖에 없고, 그런 안 좋은 일자리와 연결시켜줄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정부의 시각은 파견 허용 업종을 확대하려는 노동법 개정과도 맞닿아 있다. 정부가 추진하는 파견법은 55세 이상 고령자와 주조·금형·용접 등 뿌리산업 종사업무에 대한 파견 허용을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파견법만 통과되면 9만개의 일자리는 물론 뿌리산업의 구인난도 해소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자리만 늘리고 취업률만 높이면 된다는 식이다. 그러나 이미 불법파견 노동이 만연한 현실에서 파견업종 허용 확대는 반월시화공단의 사례에서 보듯 불안정한 나쁜 일자리만 양산하는 결과를 낳을 우려가 있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