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진의 중국 도읍지 기행]뤄양… 용문석굴의 ‘노사나불’ 모델은 누구일까

노사나불의 모델이 측천무후라는 건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다. 그런데 그 모델이 측천무후일 가능성은 적은 듯하다. 아무리 정권을 장악하고 있었다한들, 최고 권력자가 아닌 그녀를 그 거대한 노사나불로 형상화했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내레이션: 서기 65년, 중국의 어떤 황제가 꿈에서 석가모니를 만났다. 이로써 히말라야 산 양쪽 인류의 양대 고대문명이 조우하게 되었고, 약 800년에 걸친 문화 대융합을 가져왔다. 일찍이 한 서양학자가 말하길 “인류의 기우(奇遇) 가운데 사람들의 마음을 가장 사로잡는 시기는 그리스문명과 인도문명이 중국문화와 조우한 때”라고 했다.

Scene: 백마사
Scene: 용문석굴의 노사나불

내레이션: 이 풍만하고 아름다운 얼굴, 사람의 넋을 빼앗는 두 눈, 온화하고 너그러운 기상. 그 앞에 처음으로 서는 사람은 누구나 일순간에 떨게 된다. 나선형의 머리 모양을 하고 있는 거대한 불두(佛頭)는 오늘날 중국의 불교예술 및 동방문명의 상징처럼 되었다. 전문가의 고증에 의하면, 노사나불의 코는 전형적인 고대 그리스의 조각법이다. 먼 바다 건너 동서양이 이처럼 이곡동공(異曲同工)의 현묘함을 지녔던 것이다. 노사나불은 모든 것 위에 군림하는 기상으로 여기에 단정히 앉아 있다. 그는 동방의 아테나다. 그에게는 최고봉이라는 영예가 마땅하다. 신비하고 생각에 잠긴 듯한 그의 미소는 결코 외래문화를 거절하지 않는 민족이 자신감 있게 미소 짓는 듯하다. 이것이 바로 성대했던 당나라의 기상이다.(다큐멘터리 <하상(河傷)>)

봉선사 노사나불

높이 17.14m의 좌상, 머리 높이만 5m
후한 명제 때 수도 뤄양에 최초의 불교사원 백마사가 세워진 이래, 불교는 중국에서 성공적으로 자리잡는다. <하상>에서 묘사한 용문석굴의 노사나불이 자리한 봉선사(奉先寺)는 당 고종과 그의 황후인 측천무후가 자금을 대서 만든 황가 사원이다. 고종과 측천무후 시기는 용문석굴 조영의 황금기였다. 용문석굴의 상징인 노사나불(盧舍那佛)은 비로자나불이라고도 하는데, 비로자나불은 산스크리트어 바이로차나(Vairocana)의 음역으로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 모든 곳을 두루 비춘다’는 의미다. 그래서 일명 광명불(光明佛)이라고도 한다. 봉선사의 주불인 노사나불은 그 크기부터 사람을 압도한다. 17.14m 높이의 좌상에 머리 높이는 5m, 귀의 길이만도 1.9m나 된다. 노사나불을 비롯해 가섭과 아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 두 명의 천왕과 두 명의 역사로 이루어진 봉선사의 조각은 중국 석각예술의 최고봉이자 당나라의 위대한 시대적 상징으로 칭해진다.

봉선사가 완공(675)되기까지는 무려 20년이나 걸렸다고 한다. 봉선사가 완공되던 해 섣달 그믐날, 측천무후는 조정대신들과 함께 노사나불의 개광(開光, 불상을 만든 뒤 처음으로 불공을 드림) 의식에 참가했다. 20년 전(655), 측천무후는 왕 황후를 폐위시키고 그 자리를 차지했다. 고종의 건강이 나빴기에 측천무후는 뜻대로 전권을 장악할 수 있었다. 이후 측천무후가 중국역사상 유일무이한 여황제가 된 것은 690년, 봉선사가 완공된 지 15년이 지나서다. 노사나불의 개광 의식에서 그녀는 무엇을 발원했을까? 혹시 당시에 이미 여황제가 되길 꿈꾸고 있었던 걸까?

노사나불의 모델이 측천무후라는 건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다. 제왕을 본떠 불상을 만드는 선례는 일찌감치 있었다. 대표적으로, 북위 문성제(文成帝)의 명으로 만들어진 불상은 심지어 그의 몸에 난 검은 점까지 본떠 얼굴과 발 부위에 검은 돌이 있었다. 그런데 노사나불의 경우, 그 모델이 측천무후일 가능성은 적은 듯하다. 아무리 정권을 장악하고 있었다 한들, 최고 권력자가 아닌 그녀를 그 거대한 노사나불로 형상화했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노사나불의 모델이 측천무후라는 이야기가 광범하게 퍼진 근거는 무엇일까? 우선 노사나불의 얼굴이 매우 여성스럽다는 점이다. 측천무후의 딸인 태평공주의 생김새가 “네모반듯한 이마에 넓은 턱” (<자치통감>)으로 묘사되는데, 측천무후는 딸이 자신을 닮았다 여겼다고 한다. 또 다른 근거는, 무조(武照)라는 측천무후의 이름과 빛이 세상을 두루 비춘다는 의미의 노사나불의 명칭이 맞아떨어진다는 것이다. 측천무후는 훗날 제위에 오른 뒤 새로운 글자를 만들어서 자신의 이름인 조(照)를 대체하는데, 바로 해(日)와 달(月)이 하늘(空)에 걸려 있다는 의미를 지닌 ‘조’자다. 아무튼 노사나불의 모델에 대한 기록이 없는 상황에서, 이런 정도의 근거로 그 주인공을 측천무후라고 하는 것은 무리인 듯하다.

마애삼불

실제로 측천무후와 관련지을 수 있는 불상은 마애삼불에서 찾을 수 있다. 마애삼불감(摩崖三佛龕)에는 3좌의 좌불과 4좌의 입불이 있는데, 그 중 3좌의 좌불을 마애삼불이라 한다. 마애삼불은 과거불·현재불·미래불로 이루어져 있는데, 특이하게도 가운데 자리한 주불이 현재불인 석가모니가 아닌 미래불인 미륵이다. 바로 여기서 측천무후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마애삼불감이 착공된 때는 측천무후가 제위에 오른 690년을 전후해서다. 측천무후는 자씨(慈氏)를 자칭했는데, 자씨란 바로 미륵을 의미한다. 자신을 미륵의 화신이라고 선양함으로써 정권의 정통성을 확보하고자 했던 것이다. 황제가 되기 직전, 측천무후는 미륵신앙을 이용한 물밑 작업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법명(法明)과 설회의(薛懷義)가 <대운경>과 <대운경소(大雲經疏)>를 지어 바치는데, 이는 측천무후가 제위에 올라야 한다는 당위성을 제공했다. 이에 따르면 정광천녀(淨光天女)가 여인의 몸으로 왕이 될 것인데, 이를 거역하면 하늘이 징벌할 터였다. 2년 전(688) 낙하(洛河)에서 발견된 돌 역시 측천무후가 황제가 되기 위해 꾸민 공작이었다. 측천무후의 조카 무승사(武承嗣)가 사람을 시켜 흰 돌에 ‘성모께서 인간 세상에 임하시니, 제업이 영원토록 번창하리라(聖母臨人, 永昌帝業)’라는 글귀를 새기도록 했던 것이다. 이 돌이 발견된 이후 측천무후는 낙하를 ‘성하(聖河)’라 칭하고 고기잡이를 금했으며, 뤄양을 ‘신도(神都)’라 칭하고, 자칭 ‘성모신황(聖母神皇)’이라 했다. 이렇게 어느 정도 사전작업이 이루어진 상태에서 <대운경>이 세상에 나왔던 것이다. 측천무후는 뤄양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 대운사를 짓고 <대운경>을 강설하게 했다. 미륵이 여황제로 강생한다는 설이 민간에 광범위하게 퍼져나갔고, 측천무후는 미륵을 자칭했다. 뤄양의 수많은 신하와 백성이 측천무후에게 황제가 되어달라는 청을 거듭 올렸다. 결국 그녀는 690년 9월 9일 중양절에 즉위하게 된다. 국호는 주(周), 연호는 천수(天授), 왕명은 성신(聖神)황제였다. 바로 이 즈음에 마애삼불감이 착공되었다. 마애삼불감은 측천무후와 함께 시작되어 측천무후와 함께 끝났다. 마애삼불감의 불상은 미완의 상태인데, 측천무후의 주왕조가 무너지면서(705) 작업이 중단되었기 때문이다.

약탈 전 만불동, 샤반 촬영(1907)

측천무후 즉위 관련 미완의 마애삼불
마애삼불에서 봉선사로 가는 길에 만불동과 연화동이 있다. 당 고종 때 만들어진 만불동(萬佛洞)에는 1만5000좌에 달하는 작은 불상(4㎝)이 양쪽 벽 가득히 부조되어 있다. 만불동의 주불은 아미타불이다. 남쪽 벽 보살(85㎝)의 S형 신체 곡선이 매우 아름답게 느껴지는데, 경극배우 메이란팡(梅蘭芳)이 이 보살의 자태를 자신의 연기에 응용했다고 전해진다. 이 보살 아래쪽으로 벽이 움푹 파여 있는 게 심상치 않아 보인다. 본래 여기엔 사자가 있었다. 여기뿐만이 아니다. 맞은편의 북쪽 벽 역시 움푹 들어간 자리가 있는데, 여기에도 본래는 사자가 있었다. 두 사자는 모두 1930년대에 미국으로 밀반출되어, 현재 보스턴 미술관과 넬슨-앳킨스 미술관에 각각 소장되어 있다.

천장에 거대한 연화가 부조되어 있는 연화동(蓮花洞)은 북위 시기의 석굴이다. 입구에 용문을 의미하는 ‘이궐(伊闕)’이라는 두 글자가 크게 적힌 곳이 바로 연화동이다. 연화동에는 1불 2제자 2보살이 자리하고 있다. 주불인 석가모니가 입상이라는 게 매우 특이하다. 그런데 석가모니를 비롯해 모든 불상의 두상이 대부분 파괴된 상태다. 제자 가섭의 두상은 아예 통째로 뜯겨 사라졌다. 현재 프랑스 기메 미술관에 연화동의 이 가섭 두상이 소장되어 있다. 이쯤 되면 주요 동굴 중에 유린당하지 않은 게 거의 없을 정도라는 생각이 든다.

연화동을 지나면 봉선사이고 다음이 약방동이다. 약방동은 북위 말부터 당나라 초까지 조성되었는데, 안에 모셔진 불상은 북제(北齊) 시기의 것이다. 1불 2제자 2보살의 풍격은 북위에서 당나라로 이행하는 과도기적인 형태를 지닌다. 약방동에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입구 쪽의 약방(藥方)이다. 약방동에는 140여 종의 약방이 새겨져 있다. 이 약방들에는 내과·외과·소아과·부인과·신경과 등에 걸쳐 120여 종이나 되는 약재료가 등장한다. 생명과 건강을 좌우하는 비법을 이렇게 공개적으로 새겨 놓음으로써 구제와 나눔의 정신을 실천하고자 했으리라.

연화동의 가섭 두상, 프랑스 기메 미술관 소장

2005년 해외로 유출된 문물 7점 귀환
용문석굴 서산에서 마지막으로 둘러볼 곳은 고양동이다. 고양동(古陽洞)은 북위 효문제가 뤄양으로 천도할 즈음인 493년에 조성되기 시작했으니, 용문석굴에서 시기적으로 가장 이른 것이다. 고양동은 북위의 황실과 귀족이 발원한 조상(造像)이 가장 많은 동굴이기도 하다. 동굴 내부의 벽과 천정에 1000여 개의 불감과 800여 품(品)의 비각제기(碑刻題記)가 있다. 1불 2보살이 모셔져 있는데, 주불 석가모니(높이 7.82m) 좌상의 좌측에는 관음보살이, 우측에는 대세지보살이 시립하고 있다. 고양동은 북위 시기의 조각과 회화뿐 아니라 서예까지 집성된 동굴로 칭해지는데, 그 유명한 ‘용문이십품’ 가운데 19품이 바로 고양동에 있다. 불감을 만들면서 누가 언제 왜 만들었는지 등의 내용을 새겼는데, 고양동이 북위의 대표적 동굴이니만큼 이곳에 새겨진 제기가 당시 서체 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되는 것이다. 용문이십품의 서체를 위비체(魏碑體)라고 한다. 예서에서 해서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글씨체로, 자형이 단정하고 기세가 강건한 게 특징이다.

고양동 역시 파괴와 약탈의 흔적이 역력하다. 그 중 고양동 고수감(高樹龕)의 석존 불두는 다행히 되돌아왔다. 해외로 유실된 용문석굴의 문물 7점이 2005년에 용문석굴로 되돌아왔는데, 고양동의 불두가 그 가운데 하나다. 1991년 봄 중앙미술학원 교수 탕츠(湯池)는 미국에서 온 편지 한 통을 받았다. 미국 국적의 화교 천저징(陳哲敬)이 보낸 그 편지에는 고양동의 불두 사진도 함께 동봉되어 있었다. 불상 수장가인 천저징은 사진의 불상이 용문석굴의 유물인지 알아보고자 편지를 보낸 것이다. 수많은 불감에서 그 불두의 정확한 자리를 찾아내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이었으랴. 마침내 탕츠는 그것이 용문석굴의 유물이라고 회답해주었다. 1992년, 천저징은 뤄양을 찾았다. 그의 말에 따르면 그 불두는 10년 전 미국의 수장가가 벨기에로부터 사들인 것이라고 한다. 벨기에는 용문석굴의 유물을 약탈해 가지 않았으니, 아마도 다른 나라를 거쳐 벨기에로 들어왔을 것이다. 그렇게 벨기에로부터 미국의 수장가 손으로 들어온 고양동의 불두를 천저징 알아봤고, 결국 중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2005년 용문석굴에서는 해외로 유실되었던 문물 7점의 귀환 의식이 거행되었다. 이 7점의 문물은 국가문물국이 문화재 환수를 위해 조성된 국비를 사용해 되찾아 온 것이다. 이는 민족의 자존을 지키는 일이리라.

이유진의 중국 도읍지 기행

다큐멘터리 <하상>(1988)에서는 노사나불을 보여준 뒤 이렇게 묻는다. “이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노사나불, 영원토록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노사나불, 이는 우리의 기적이자 자랑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를 대할 때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어떤 힘과 정신이 그의 완미함과 웅대함을 빚어낼 수 있었는지, 우리는 왜 다시 제2의 노사나불을 만들어내지 못하는지.” <하상>에서는 황색의 중국문명을 봉건전제의 대륙문명으로 그려내면서, 자유·민주의 해양문명인 남색의 서양문명과 대비시켰다. 중국이 한창 개혁개방에 돌입하던 시기에 방영되었던 <하상>은 중국의 전통문화로 상징되는 황색문명에 사형을 언도하며 남색의 서양문명을 수용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하상>의 제작진은 노사나불로 대표되는 당나라 융성의 근원을 대외개방에 의한 외래문화의 영향과 자극으로 보았다. <하상>이 방영된 지 30년이 지난 지금, 중국은 경제적·문화적으로 세계에 막강한 영향과 자극을 주고 있다. 이와 더불어 세계 도처에 흩어진 문화재 환수작업도 갈수록 성과를 거두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하상>에서 저주했던 황색문명의 대표격인 유교가 중국의 굴기와 더불어 정신적·문화적 자원으로서 그 어느 때보다 각광받고 있는 지금이다.

<연세대 인문학연구원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