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돈의 책을 통해 세상읽기]피로 얼룩진 격동과 혼란의 세월

1950년 10월, 이승만 대통령은 방첩대를 육군본부 직할 특무부대로 승격시키고, 육본 정보국장이던 김형일 대령이 부대장을 겸하도록 하고 김창룡을 부부대장으로 임명했다. 다음해 5월, 이승만은 대령으로 진급한 김창룡을 특무부대장에 임명했다.

이 책은 이승만 정부 시절에 특무부대장을 지내다가 피격돼 비명에 간 김창룡의 일대기다. 1916년에 함경남도에서 태어난 김창룡은 영흥농잠학교를 다니면서 일본어와 중국어를 배웠고, 졸업 후 만주철도회사에 취직했다. 일본인 여객전무가 김창룡에게 관동군 헌병부에서 일할 것을 권유하자 이를 받아들인 그는 나가노 정보학교를 마친 후 관동군 첩보원이 됐다. 김창룡은 만주에서 활동하는 공산주의자들을 감시하는 일을 했는데, 중국인 공산주의자를 검거하는 실적을 올렸다. 일본이 패망하자 김창룡은 남한으로 향했다. 그 도중 황해도 친구 집에 잠시 머물다가 소련군 첩보부대에 체포돼 기차에 실려 사형장으로 가던 중 극적으로 탈출했다.

단신으로 서울에 도착한 그는 만주군 장교였던 박기병을 만나서 국군 5연대에 이등병으로 입대했고, 얼마 후 3연대 정보하사관이 됐다. 3연대에서 있을 때 그는 자신의 상관인 정보과장 오일균 대위가 이상하다고 느꼈다고 한다. 장교가 되기를 원했던 그는 경비사관 3기생으로 입교해서 1947년 4월에 임관됐다. 동기생 중에는 여순반란을 일으킨 김지회 등 남로당원이 많았고, 오일균 대위도 나중에 남로당원으로 밝혀졌다.

<대한민국 특무부대장 김창룡> 기파랑, 2011년

관동군 첩보원, 국군 정보장교로 변신
정부 수립 후 국군은 내부의 공산세력을 축출하는 것이 큰 과제였다. 만주에서 공산주의자들을 상대로 첩보활동을 했던 경력에 힘입어 김창룡은 1연대 정보장교가 됐다. 김창룡은 1연대에서 암약하던 좌익장교들을 적발해 냈다. 1948년 10월 19일, 여순지역에 근무하던 14연대가 주동이 된 반란이 일어나서 많은 경찰관과 양민들이 학살되는 등 심각한 사태가 벌어졌다. 여순 반란사건을 계기로 국군 내부에 대한 숙청이 본격화됐고, 육군본부 정보국 대위이던 김창룡은 김영식·오일균·김종석 등 국군 내 남로당원들을 체포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김창룡은 이 과정에서 국방부 정부국에 근무하던 박정희 소령이 남로당 간부임을 파악하고 체포했다. 박정희가 남로당원임을 순순히 자백하자 김창룡은 그에게 전향할 것을 권했다. 박정희는 수사에 협조했으나 군 검찰은 사형을 구형했고, 재판부는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박정희가 목숨을 부지하게 된 데에는 국방부 정보국장이던 백선엽 장군의 신원보증이 결정적이었다.

1949년 7월, 김창룡은 국군 방첩대(CIC) 대장으로 임명됐다. 1950년에 들어서서 경찰과 방첩대는 성시백·김상룡·이주하 등 남로당 거물을 연거푸 체포했고, 이어서 미군 고위장교의 정부이던 여간첩 김수임도 체포했다. 이들은 모두 6·25 전에 사형이 집행됐다. 6·25 남침이 발생하자 김창룡은 문관으로 정보국 북한상황실장이던 박정희와 함께 서류 보따리를 들고 광나루에서 나룻배를 타고 한강을 건넜다. 당시 북한의 대규모 남침 가능성을 예고했던 기관은 방첩대와 정보국 북한상황실뿐이었다. 피난지 부산에서 김창룡은 군·경 합동수사본부장을 겸임하면서 경남에서 준동하던 남로당 세력을 검거해서 이승만 대통령의 신임을 얻었다.

1950년 10월, 이승만 대통령은 방첩대를 육군본부 직할 특무부대로 승격시키고, 육본 정보국장이던 김형일 대령이 부대장을 겸하도록 하고 김창룡을 부부대장으로 임명했다. 다음해 5월, 이승만은 대령으로 진급한 김창룡을 특무부대장에 임명했다. 김창룡은 6·25 전란 중 최대의 부패사건이었던 국민방위군 사건을 수사해 관련자들을 체포, 사형 판결을 받도록 했다. 그런 과정에서 김창룡은 국군총사령관이던 정일권 장군에게 뇌물이 흘러들어갔음을 확인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김창룡은 남로당 간첩들을 신문하는 과정에서 정일권이 북한의 남일과 내통하고 있다는 첩보를 접한 적이 있기에 그에 대해 의심을 했지만 이승만이 정일권을 신임했기 때문에 상황은 단순하지 않았다.

이승만(왼쪽)과 김창룡

박정희와 김창룡(오른쪽부터)

철저한 반공주의자이자 청렴한 군인?
함경북도에서 태어나서 만주에서 학교를 다닌 정일권은 봉천군관학교를 나온 후 일본군 장교가 됐는데, 소련군이 북한에 진주하자 평양에서 김일성을 몇 차례 만났다고 한다. 김일성이 정일권의 친일 경력을 거론하자 그는 남한으로 내려와서 자신을 따르는 세력과 함께 국군경비대 장교가 돼 이후 한국군 내의 최대 파벌을 이끌었다. 6·25가 발발하자 정일권은 전방에 위치한 2사단장이 됐는데, 그런 과정에서 2사단 방첩대장이던 허태영 소령을 알게 됐다. 허태영은 일본군 경력이 있으며 뇌물에 약한 정일권을 적절히 이용해서 자신의 지위를 구축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국민방위군 사건으로 정일권이 참모총장직에서 물러나자 일본 육사 출신인 이종찬 대장이 후임으로 총장에 임명됐다. 현역 대령으로 군에 복귀한 박정희는 육본 작전국 차장이 됐다. 김창룡은 발췌개헌안이 야기한 부산 정치파동을 수습해서 이승만 대통령이 재선되는 데 기여했다. 이 책은 이종찬 참모총장 등이 미국의 지원으로 이승만 대통령을 밀어내려는 음모에 가담했다고 주장한다. 이승만은 직선제 개헌안이 국회를 통과하자 이종찬 참모총장을 경질하고 백선엽 장군을 후임으로 임명했다.

전쟁이 끝난 후 김창룡은 군대 내 부패군인 척결에 나섰는데, 그러던 중 국방부 원면(原綿) 사건이 터졌다. 군용 고급원면을 저급원면으로 바꾸어 들여오면서 군 고위장교들이 거액의 뇌물을 받은 사건이다. 수사에 나선 김창룡은 이 사건의 정점에 정일권 참모총장이 있다고 믿었다고 이 책은 말한다. 하지만 정일권은 한국군 내 최대 파벌인 함경도파의 수장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었다.

1956년 1월 30일 오전 7시, 지프로 출근 중이던 김창룡은 괴한들의 총탄을 맞고 사망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특무부대에 안치된 김창룡의 시신을 보고 오열하면서 철저한 수사를 지시했다. 특무대 수사관들은 허태영 대령과 그의 하수인 2명을 체포했다. 군법회의는 허 대령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그의 부인이 배후에 강문봉 중장이 있다고 주장해서 강문봉을 추가로 구속, 재판에 회부했다. 백선엽 대장이 재판장으로 주관한 군법회의는 강문봉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배후에 4성 장군이 있다고 대통령에게 수사를 품의했다. 하지만 이승만은 더 이상의 수사를 거부하고 사형선고를 받은 강문봉을 무기징역으로 감형했다.

오늘날 김창룡은 일본군 출신으로 이승만 독재에 적극적으로 기여한 ‘정치군인’으로 평가되고 있다. 하지만 저자는 김창룡은 일본군 첩보원으로서 중국인 공산주의자를 상대했을 뿐이라고 강변한다. 저자는 김창룡 같은 철저한 반공주의자가 방첩을 담당했기 때문에 대한민국이 버틸 수 있었다고 본다. 저자는 또한 김창룡이 보기 드문 청렴한 군인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김창룡이 추진했던 숙군 과정에서 무고한 희생자가 많았다고 보는 것이 보통이다. 이승만이 부산 정치파동을 극복하고 개헌을 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김창룡의 행동은 ‘정치군인’이라는 평가를 피할 수 없다. 그가 간첩과 좌익을 조작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상돈의 책을 통해 세상읽기

4·19 후에 강문봉은 민정당 소속으로 국회의원을 지냈다. 박정희 대통령은 강문봉을 유럽국가 주재 대사로 임명했고 유정회 국회의원을 지내도록 했다. 박정희는 김창룡이 부패군인으로 지목한 정일권을 국무총리로 임명해서 오랫동안 있도록 했고, 나중에는 국회의장을 지내도록 했다. 하지만 박정희는 자신의 생명을 구해준 김창룡의 ‘명예’를 회복시키는 일은 하지 않았다. 이 책이 출간되자 김창룡의 미망인은 “60년 인고(忍苦)의 세월 끝에 남편에 대한 오해가 풀어졌다”고 말했다. 김창룡은 물론이고 그와 박정희, 그리고 그와 정일권의 관계에 대해서는 보다 많은 실증적 연구가 있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