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나는 일을 못한다]유니폼 규정, 왜 ‘여직원’에게만 엄격한가

두 달 전에 사측에서 유니폼을 입기 싫으면 안 입어도 된다는 이야기가 먼저 나온 이후로, 나는 내내 노동조합 투쟁 조끼를 입고 근무한다. 앞으로도 이 직장에서 유니폼을 입을 생각은 없다.

처음 면접을 보러 갔을 때 전임자는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나는 별 생각 없이 여기는 유니폼이 있는 직장인가보다, 생각했다.

유니폼을 입는 사무직은 오로지 여성뿐이라는 데에 문제의식이 생기기 시작한 건 출근 후 한두 달가량이 지나서였다. 남성들은 유니폼을 입지 않는데, 오직 여성들만 유니폼을 입고 앉아 있다는 것은 미묘한 열등감을 불러일으켰다. 더욱이, 나는 노동조합에 취직했는데 유니폼을 제공한 것은 사측이었다. 매일 아침 옷을 갈아입으면서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유니폼은 ‘소속’을 드러내는 측면이 있다. 아침마다 이 유니폼을 입음으로써 ‘소속’을 사측이라고 선언하는 것만 같았다.

새로 선거를 해서 위원장이 바뀌었지만 나는 다행히 채용직으로 연임할 수 있었다. 이전 집행부보다는 투쟁적인 집행부가 들어왔다는 데에 기대를 걸고, 나는 조금씩 유니폼을 입지 않기 위한 시도를 했다. 조끼를 안 입거나 블라우스 대신 니트를 입어보기도 하다가, 상사가 “입기 싫으면 안 입어도 된다” 고 술 취해서 한 말에 기대어 하루는 그냥 유니폼을 입지 않았다. 바로 사측의 누군가가 왜 유니폼을 안 입느냐고 물었다. 나는 머뭇거리다가 상사의 말을 전하자 그는 불같이 화를 냈다.

“자기가 뭔데 여직원 옷차림에 이래라 저래라야?”

나는 소속이 어디건 간에 ‘여직원’이었다. 다음 날 사측에서 괜한 걸로 분란 일으키지 말자는 이야기를 들은 상사는 좀 귀찮지만 한동안은 입어주라고 말했고, 하는 수 없이 나는 다시 유니폼을 입었다. 상사 핑계를 댔을 뿐, 나 자신이 이걸 입는 게 모욕적이라고 말하지 못한 것이 부끄러웠다. 다행히 내가 유니폼을 껄끄러워 하는 게 보였던 건지, 노조의 발언권이 세진 것 때문인지, 두 달 전에 사측에서 입기 싫으면 안 입어도 된다는 이야기가 먼저 나왔다. 더위를 많이 타는 편이냐는 질문이었고, 나는 냉큼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 이후로 나는 내내 노동조합 투쟁 조끼를 입고 근무한다. 마음이 편하다. 앞으로도 이 직장에서 유니폼을 입을 생각은 없다.

구청에서 일하는 친구와 남성 ‘과장’과 여성 ‘동장’의 차이에 대해서 이야기하다가, 민원창구에는 여성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그 여성들은 하나같이 유니폼을 입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남성도 유니폼을 착용하는 직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경우 그럴 때도 남성에게 요구되는 복장의 엄격함과 여성에게 요구되는 엄격함에는 현저한 차이가 있다.

대법원에서 코레일 근로자로 인정할 수 없다는 판결을 받은 KTX ‘여’승무원들의 파기환송심이 7월 24일에 열린다는 기사를 읽었다. 기사에는 2006년 9월에 해고된 KTX 여승무원들이 KTX 여승무원 유니폼을 입고 몸을 묶은 채 국회로 진입하려다가 경찰에게 저지당하는 사진이 실려 있었다. 오래전 집회에서 머리를 민 KTX 열차승무지부장 민세원씨의 삭발한 모습을 기억해냈다. 나는 머리를 밀고도 사람이 저렇게 예쁘구나, 하고 감탄했었다. 그녀들은 ‘철도의 꽃’이라고 불렸다고 했다. 철도공사는 계약 기간 2년이 지나고 남자 승무원들만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머리를 단정하게 하나로 묶어서 말아 올리고, 예쁘게 옷을 입은 채 사람들에게 미소를 지어야 하는 여성들은 무슨 일을 하고 있건 정규직까지 시켜줘야 할 필요는 없는 인력이었다. 7월 24일에 열린 첫 공판에서 김승하 지부장은 대법원 판결에서 이긴 이후에서야 코레일은 승무원들에게 안전업무를 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 나는 일을 못한다

앞으로는 다시 입지 않으리라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어쨌든 유니폼 조끼를 회사벽에 걸어두고 치마는 대충 서랍에 쑤셔 넣어두었다. 이 파기환송심이 확정될 경우, KTX 여승무원들은 1심과 2심 재판에서 이겨서 받은 돈들을 모두 갚아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실제로 무슨 일을 하건 그녀들은 안전과 관련한 업무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유니폼을 입어야 하는 삶이란 그만큼의 위치에 있다고 대법원이 말했다.

<이서영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