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박 대통령도 만만치 않지만 유승민도 이에 못지않다”

유승민 원내대표 진퇴 논란이 정치권의 핫 이슈다. 박근혜 대통령에 맞선 그는 어떤 결정을 할 것인가. 지금 국민의 시선이 그의 ‘마이 웨이’를 주목하고 있다.

최근 여의도 국회에서 나오는 질문은 딱 하나다.

“유승민 원내대표가 과연 물러날 것인가?”

새누리당 내 친박은 유 원내대표의 퇴진을 아예 못 박아놓고 날짜를 저울질했다. 대부분 7월 6일 국회법 재의 표결 이후 유 원내대표가 ‘명예롭게 물러날 것’이라고 장담했다.

하지만 정작 결정을 내리는 유 원내대표 측 인사들의 반응은 친박의 호언장담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한때 같은 친박으로 오랫동안 유 원내대표와 발을 맞춘 이혜훈 전 의원은 “유승민 원내대표 본인이 사퇴하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6월 26일 유 원내대표가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진심으로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인 후 보수언론에서는 연일 유 원내대표의 사퇴를 기정사실화하는 보도를 했다. 이 같은 보도에 대해 유 원내대표 측의 반응은 “유 원내대표의 성격을 모르기 때문에 첫 단추부터 잘못 꿰었다”는 것이었다. 유 원내대표는 어느 누가 물러나라고 해서 순순히 물러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2002년 대선 당시 여의도연구소에서 유 원내대표(당시 여의도연구소장)와 함께 일했던 허병기 전 여의도연구소 부소장은 “당시 유 소장은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이회창 후보 앞에서 ‘노’라고 직언했다”며 “7월 2일 최고위원 회의에서 욕설이 나오고 난장판이 벌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표정 없이 앉아 있는 것처럼 상당한 내공을 갖고 있는 정치인”이라고 평가했다.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가 7월 1일 국회 대표최고위원실에서 열린 최고중진연석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 강윤중 기자

“본인이 사퇴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
6월 26일 국회에서 발표된 사과문은 당초 유 원내대표의 측근이 작성한 수준보다 청와대에 더 고개를 숙인 것으로 알려졌다. 손을 앞으로 하고 90도 숙이는 인사법은 유 원내대표의 평소 인사습관이라고 한다. 하지만 ‘송구’라는 표현 등은 원칙주의자인 유 원내대표가 평소 사용하는 언어표현을 넘어선 것이었다.

이 사과에도 불구하고 친박에게서 ‘퇴진론’이 다시 불거지자, 유 원내대표 측에서는 “너무 고개를 숙인 것이 아닌가”라는 말이 나왔다. 한 번의 ‘공손한 사과’로 끝날 일이 아니었다면 굳이 그렇게까지 고개를 숙여야 했느냐는 이야기다. 유 원내대표 쪽에서도 오산한 것이 있다. 그 정도의 사과라면 청와대에서 사과를 받아들일 줄 알았지만 상황은 그렇지 못했다.

이때부터 특유의 유 원내대표 진면목이 기자들과의 짧은 문답에서 하나둘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드릴 말씀이 없다”는 말에서 “물러나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 “전혀 압박을 느끼지 않는다”는 말까지 등장했다. 유 원내대표의 결기가 느껴지는 표현이다.

2012년 총선에서 박근혜 당시 비대위원장이 새누리당의 상징색을 빨간색으로 바꾸자, 유 원내대표는 이를 비판했다. 당내 친박 의원들 중 누구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지만 유 원내대표는 달랐다. ‘할 말은 한다’는 유 원내대표의 성격이 그대로 드러난 대목이다. 친박 의원들이 눈치를 보는 ‘문고리 3인방’(이재만 청와대 총무비서관, 정호성 부속비서관, 안봉근 국정홍보비서관)에 대해서도 공식석상에서 ‘얼라(어린애)’라고 표현한 것도 유 원내대표의 성격을 볼 수 있는 한 단면이다. 유 원내대표는 원내대표 선거에 출마하기 전 ‘얼라’라고 표현한 이유를 묻는 기자에게 “2005년 박근혜 당시 대표의 비서실장으로 일하다보니 당시 4인방(대선 당시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이춘상 보좌관 포함)이 국회의원회관에서 따로 일하고 있어, 대표에게 직접 이야기해 4인방이 내 밑에서 일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4인방이 자신과 상하관계에 있었다는 설명이다.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6월 29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긴급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회의실로 들어서고 있다. / 권호욱 선임기자

유 대표가 물러날 수 없는 세 가지 이유
유 원내대표의 성격을 잘 아는 한 인사는 유 원내대표가 물러날 수 없는 이유를 의회주의를 표방하는 유 원내대표의 원칙에 맞지 않는다는 점, 물러나야 하는 이유를 모른다는 점, 퇴로가 없다는 점 등 세 가지를 들었다. TK(대구·경북)의 한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도 만만치 않지만 유 원내대표의 고집 또한 이에 못지않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유 원내대표의 퇴진에 대한 입장은 주위 인사들 사이에서 약간의 온도차가 느껴지기도 한다. 유 원내대표 측 TK의원들은 절대로 물러날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보인다. 유 원내대표의 지역구인 대구 동구을에서 ‘배신자’라는 플래카드가 걸리고, 경쟁 후보자가 등장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마당에 유 원내대표가 물러나는 순간 자신들의 지역구에도 친박을 자처하는 경쟁 후보자들이 ‘배신’을 키워드로 등장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한 TK의원 측은 “유 원내대표 측 TK의원들은 모두 물러나서는 안 된다고 하지만 오히려 유 원내대표가 혹시 흔들릴까 우려하고 있다”며 “유 원내대표도 자신이 물러나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유 원내대표의 또 다른 지지축인 경실모(경제민주화실천모임)나 원내대표단에 속한 의원들 사이에서는 TK의원들과 약간 느낌이 다른 분석이 나오고 있다. 친박이 원하는 시기가 아니라 유 원내대표가 원하는 시기에 명예로운 퇴진이 이뤄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친이계로 지난 총선에서 박빙의 차로 서울에서 배지를 단 의원들이 오히려 몸이 단 상태다. 이들은 현직 대통령의 프리미엄보다 유 원내대표의 원내대표직 유지가 여당 표 획득에 유리하다고 계산하고 있다.

유 원내대표 측 TK의원과 비TK의원 사이의 미묘한 계산차에 대해 한 인사는 “어떻게 보면 오히려 수도권 의원들이 유 원내대표의 퇴진에 대해 민감해질 수 있다”면서 “유 원내대표가 물러날 경우 내년 총선에 TK에서는 친유(친유승민)와 친박이 경쟁하게 되지만, 수도권에서는 새정치민주연합과 대결하는 구도에서 친유와 친박 후보들이 함께 등장하면 결국 친유 후보들이 피해를 입게 된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중요한 것은 유 원내대표의 정치적 뿌리인 TK의 정서다. TK에서는 유교적인 문화가 아직까지도 남아 있어 정치 상황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유 원내대표의 사퇴에 대해 전국적인 여론은 반대가 많으나 유독 TK지역에서는 찬성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여론조사 전문가인 허병기 전 여의도연구소 부소장은 “지금 여론조사의 샘플로는 전국적인 여론은 짚을 수 있으나, 1000명도 되지 않는 전국 샘플 중에 일부분인 TK지역 샘플만을 놓고 TK 민심이 이렇다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면서 “정확하게 TK 민심이 이렇다고 분석을 하려면 TK지역에서만 500명 이상의 샘플로 여론조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국 조사에서 나타난 TK 민심을 이야기하면 여론조사 결과가 왜곡된다는 이야기다.

TK의원과 비TK의원 간 미묘한 차이
한 TK의원은 지역구 경로당에서 대뜸 “당신은 누구 편이냐?”는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다른 한 TK의원은 “지금 우리는 누구 편을 들어야 할지 입장이 난처하다”면서 “대통령이 김무성 대표를 불러 원만하게 해결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금 TK지역의 대부분 정서는 현재 권력인 박 대통령과 향후 미래 권력이 될 유 원내대표가 화해를 하면 좋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둘은 이미 운명의 강을 건너섰다.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지금 두 정치인의 대결국면에서는 박 대통령이 바보가 되느냐, 유 원내대표가 자빠지느냐는 문제만 남아 있기 때문에 결국 유 원내대표가 물러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TK 정서뿐만 아니라 새누리당 내부 정서도 물론 중요한 요소로 부각된다. 여론조사에서도 새누리당 지지자들은 전체 여론조사 결과와는 달리 유 원내대표의 사퇴 쪽에 방점을 찍고 있다. 새누리당의 한 인사는 “새누리당 정서로 봤을 때, 그리고 유 원내대표의 성격을 고려해 봤을 때 유 원내대표가 친박이 정한 시점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시기를 골라 명예롭게 사퇴하는 상황이 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새누리당 내부에서는 7월 2일 최고위원 회의에서 욕설이 나온 진흙탕 장면을 주목하고 있다. 진흙탕 내전을 통해 결국 화살은 유 원내대표에게 돌아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 원내대표는 3일 국회 운영위에서 사회를 보고, 추경 예산 처리를 지휘하는 등 담담히 원내대표 직무를 처리하고 있다. 게다가 유 원내대표의 퇴진에 관한 한 주변 인사들은 절대로 물러날 수 없다는 강경한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국민 여론은 사퇴 반대가 사퇴 찬성보다 더 많다. 야당 정치인과 진보성향의 논객까지 ‘유승민 지키기’를 엄호하고 나섰다.

뜨거운 7월의 하늘 아래 현직 대통령에 맞선 유 원내대표의 홀로서기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한 여론조사에서 그는 어느새 여권 대권 후보 4위로 뛰어올랐다. 간발의 차이를 극복한다면 김무성 대표에 이어 2위로 뛰어오를 기세다. 그의 ‘마이 웨이’가 모든 사람의 주목을 받고 있다.

<윤호우 선임기자 hou@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