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박근혜와 유승민 ‘닮은꼴 정치인’

‘좁고 깊은’ 정치인들과 대인관계… 원칙주의자·만기친람 스타일도 비슷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의 의원실인 916호에는 한동안 보좌관이 없었다. 2013년 대구테크노파크 간부가 새누리당의 대구지역 보좌관들에게 금품을 제공했다는 의혹이 불거지자, 유 원내대표는 이 의혹에 연루된 보좌관의 사표를 수리한 후 즉각 ‘깊이 사과드립니다’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돌렸다. 이후 유 원내대표는 보좌관을 채용하지 않았다.

원내대표에 출마하기 전 “왜 보좌관을 채용하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유 원내대표는 그때 그 사건을 언급했다. 정치적 비리의혹에 대해서는 결벽증을 갖고 있을 만큼 단호한 유 원내대표의 일면을 보여준다. 유 원내대표는 직접 질의 원고를 작성하고, 자료를 챙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좌관의 ‘특별한 보좌’가 필요하지 않다는 이야기다.

정치인 아버지에 TK지역 뿌리도 같아
하지만 의원의 활동과 여당 원내대표의 활동은 그 폭과 규모가 다르다. 한동안 공석이었던 보좌관은 원내대표에 선출된 후 일간지 정치부 기자 출신 인사로 채워졌다. 여당 일각에서는 보좌관 채용을 둘러싸고 유 원내대표가 ‘유승민의 정치’를 표방하는 출발점이 아닌가 하는 ‘확대해석’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당 내부에서는 대부분 지난 4월 유 원내대표의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이 ‘유승민의 정치’가 시작된 출발점으로 보고 있다. 이날 연설에서 유 원내대표는 경제민주화에 대한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피력했다.

통상 원내대표에 선출되면 보좌진들은 국회 본관으로 이동해 원내대표실이나 당연직인 국회 운영위원장 사무실에서 근무한다. 하지만 유 원내대표의 보좌진들은 의원회관 916호실에서 그대로 업무를 보고 있다. 유 원내대표가 국회 본관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다가 저녁 무렵 의원회관으로 한 번씩 건너와 보고를 받는다고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월 청와대에서 새로 원내대표에 선출된 유승민 원내대표(오른쪽)와 악수하고 있다. / 청와대사진기자단

유 원내대표의 이런 정치 스타일은 박근혜 대통령의 의원 시절 스타일과 많이 닮아 있다. 박 대통령 역시 의원 시절 ‘문고리 3인방’(이재만 청와대 총무비서관, 정호성 부속비서관, 안봉근 국정홍보비서관)의 사무실은 국회 본관이 아니라 의원회관 545호였다.

박 대통령은 6월 25일 국무회의에서 “여당의 원내사령탑도 정부·여당의 경제살리기에 어떤 국회의 협조를 구했는지 의문이 가는 부분”이라면서 “국민들의 대변자이지, 자기의 정치철학과 정치적 논리에 이용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한때는 친박으로 자신의 밑에 있었던 유 원내대표의 ‘자기 정치’에 직격탄을 날린 것이다.

박 대통령과 유 원내대표는 아버지가 정치인이라는 점에서 비슷한 출발점을 갖고 있다. 박 대통령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장녀이며, 유 원내대표는 유수호 전 국회의원의 차남이다. 1971년 사법부 파동으로 1973년 많은 판사들이 재임용에서 탈락되었는데, 유수호 당시 판사가 그 대상자였던 ‘악연’이 있다. 새누리당의 한 인사는 “유력 정치인을 부친으로 둔 덕분에 두 정치인은 어릴 적부터 경제적 어려움 없이 공부를 했고, 대학을 졸업한 후 유학을 간 유학파라는 점 등 비슷한 환경에서 자랐다”고 말했다. 두 정치인이 TK(대구·경북)에서 정치의 뿌리를 내린 점도 비슷하다.

두 정치인이 부친에 대해서는 각별한 효심을 갖고 있다는 것도 비슷하다면 비슷한 특징으로 볼 수 있다. 유 원내대표는 친박의 사퇴 촉구가 이어지는 동안에도 지난 6월 27일 대구로 내려가 한 병원에서 요양 중인 부친을 병문안했다.

여의도연구소장으로 발탁돼 정치에 입문한 유 원내대표는 2005년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의 비서실장으로 ‘원조친박’이 됐다. 두 정치인은 ‘깔끔한’ 성격을 갖고 있지만 이 때문에 주위 정치인들과는 친화력이 거의 없다는 점도 비슷하다. 때문에 주위 인사와는 좁고 깊은 관계를 가지고, 한 번 가까이 한 인사는 오래도록 옆에 둔다는 것이 주위 인사들의 한결같은 평가다. 박 대통령의 문고리 3인방이 대표적인 예다.

비주류에서 자리 쟁취 궤적도 닮아
하지만 작은 흠결이라도 있다면 바로 내칠 정도로 도덕적 결벽증을 갖고 있다는 점도 비슷하다. 2013년 대구테크노파크 간부의 보좌관 금품 제공 의혹이 일자마자 유 원내대표는 보좌관의 사표를 수리하고 직접 사과문을 돌릴 정도로 도덕적 결벽증을 갖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박 대통령 역시 자신의 주변에서 조금이라도 비리의혹이 제기된 의원들이 있다면 멀리하거나 단칼에 내쳤다.

이런 점에서 두 정치인은 원칙주의를 앞세우고 있다. 자신이 세운 원칙에서 벗어나면 절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박 대통령은 한 번 자신과 등진 인사는 절대로 가까이 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다. 유 원내대표도 처음 자신이 정치를 하면서 내세운 원칙에서 한 걸음도 비켜나지 않을 만큼 원칙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측근이나 보좌진들이 있지만 두 정치인이 직접 모든 일을 챙긴다는 점에서 두 사람은 또 다른 공통점을 갖고 있다. 박 대통령의 만기친람(萬機親覽) 스타일이 대표적이다. 유 원내대표 역시 보좌진 없이도 자신의 일을 모두 스스로 챙기는 스타일이다.

두 정치인이 당에서 비주류일 때 스스로 자기의 자리를 쟁취한 과정도 비슷한 궤적을 밟았다. 박 대통령은 2004년 당대표로 오를 때 비주류였고, 유 원내대표는 주류인 친박의 지원을 받은 이주영 의원을 물리치고 원내대표에 선출됐다. 두 정치인은 연설을 할 때 여느 정치인과는 달리 선동적인 문구를 쓰지 않고 차분하게 연설을 하는 편이다. 당내 한 인사는 “연설 스타일은 비슷하지만 유 원내대표는 자신이 연설 내용을 충분히 숙지하고 있는 데다 그만한 콘텐츠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박 대통령과 대비된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2012년 대선에서 경제민주화라는 화두를 꺼내면서 유 원내대표의 경제철학과 교집합이 커졌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당선 후 경제민주화 공약을 대부분 실현하지 않았고, 유 원내대표는 경제민주화 실천을 자신의 정치적 과제로 꺼내놓았다. 박 대통령·유 원내대표와 함께 일했던 한 정치인은 “두 정치인이 다른 점은 한 정치인은 국민에게 경제민주화를 약속하며 표를 얻었지만 지키지 않았고, 다른 정치인은 경제민주화를 정치적 신념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라면서 “과연 누가 누구를 배신했다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 정치인은 “한 정치인은 한 시간을 사귀어도 진솔한 대화를 나누지만, 다른 한 정치인은 10년을 같이 만나도 마음을 터놓고 대화하는 경우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박 대통령과 유 원내대표의 ‘일대 격돌’에 대해 이들 주변에 있었던 한 인사는 ‘여자 박근혜’ 대 ‘남자 박근혜’의 격돌이라고 비유했다. ‘남자 박근혜’는 유 원내대표를 비유한 말로, 두 정치인의 스타일이 역설적이게도 닮아 있다는 것이 이 인사의 분석이다. 이 인사는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이 없듯이 두 정치인이 비슷한 스타일이기 때문에 서로 한치의 양보도 하지 않은 채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국면”이라고 현 상황을 평가했다.

<윤호우 선임기자 hou@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