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내시경]한국에서 예술가로 산다는 것

그 어느 때보다 풍족하고 부유한 시대에 살고 있는 듯싶지만 예술인들의 삶은 극빈함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회의 무관심과 배고픔, 질병과 외로움을 견디지 못한 나머지 스스로 목숨을 내려놓거나 고독사하는 예술인들이 잇따르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3월, 생활고를 이기지 못한 배우 우봉식씨가 자살했고, 올해 5월에는 강원도의 한 미술인이 같은 이유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난 6월 19일에는 연극배우 김운하씨가 자신이 거주하던 고시원에서 죽은 채 발견됐으며, 그로부터 사흘 뒤 배우 판영진씨가 집 앞에 주차된 차 안에서 숨을 거뒀다. 이 둘 역시 경제적 궁핍함과 사회적 소외 속에서 위기의 삶을 살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미술을 비롯해 연극, 문학 등 장르를 불문하고 도탄의 늪에 빠져 있는 예술인들을 돕기 위해 정부는 2012년 이른바 ‘최고은법’이라 불리는 ‘예술인복지법’을 만들었다. 민생고를 겪다 사망한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씨 사건을 계기로 문화예술인들의 권리를 보호하고 복지지원을 통해 예술인의 창작활동을 증진시키려는 목적으로 제정된 것이 바로 예술인복지법이었다. 하지만 예술인복지법은 본래 예술인들의 특수성을 헤아리지 못하는 태생적 한계를 지닌 채 출발했다. 까다로운 예술인 증명과 심사기준, 너무 많은 준비서류, 비현실적인 예술활동 수입액 증명, 지나치게 긴 실행 탓에 선별적 복지법이라는 지적을 피해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심하게 말하면 예술의 ‘예’자도 모르는 기획재정부에 휘둘리는 모양새를 하고 있는 데다, 턱없이 부족한 예산, 장기적인 플랜 없이 그때그때 이뤄지는 땜질식 정책은 예술인 복지의 원칙과 방향이 무엇인지 의아하게 만들고 있다.

장지아, 작가가 되기 위한 신체적 조건. | 영상캡처

제정된 지 3년차에 접어들었지만 80~90%에 달하는 예술인의 절대다수가 여전히 실체적 빈곤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은 결국 예술인복지법의 효력이 매우 미미함을 증명한다. 이처럼 생계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 앞에 자유롭지 못한 현실에서 최소한의 안전장치라 할 수 있는 법마저 유명무실하고, 그 어떤 분야보다 심각한 빈부격차와 무임금에 가까울 만큼 턱없이 낮은 단가에도 일할 수밖에 없는 현상이 만연한 한국에서 예술가로 산다는 건 꽤나 무모하다. 아니, 전체 국가예산에서 1% 내외에 불과할 정도로 쥐꼬리만한 문화예술분야 예산, 생색내기용 아니면 언 발에 오줌누기 식의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 만약 예술가의 존재가치와 역할을 알고 있다면 정당한 예술노동의 대가 대신 재능기부와 열정노동만 요구하는 행태가 예술계 안팎에 안착됐을 리 없다. 생계지원이니 창작준비금이니 하며 “돈 줄 테니 선착순으로 모이라”는 식의 동냥질하라는 듯한 양태가 등장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백수 수준에 멈춰 있는 예술가에 대한 국민 인식이 생성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물론 예술가의 존재 의미와 가치가 올바르게 자리 잡았다면 생활고와 사회적 외면으로 죽어나가는 일은 더욱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예술판에서 목도할 수 있는 것들은 빈곤, 위기, 생존, 자살과 같은 단어들이 난무하는 슬픈 초상들 뿐이다. 그 절박한 심정과 절규를 이용해 잇속을 챙기려는 무리들뿐이다. 그리고 싫든 좋든 이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하는 말이지만, 한국은 절대 예술가를 위한 나라가 아니다. 죽든 살든 예술과 예술가는 언제나 무관심의 영역일 따름이다. 그러니 예술하지 마라.

<홍경한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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