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독일 청년 “일 안 해도 생활은 가능”

직무·학습 병행제로 훈련수당 월 120만원 받아… 청년 실업률 낮아

“직업학교 다니는 동안은 1000유로까지 받을 수 있죠. 첫 직장 들어가기 전에도 실업수당 받을 수 있고요.”

한국에서 연수 중인 독일 출신 대학생 필립 뮐러(23)는 자국에서 나오는 ‘아동수당’을 모아 아시아를 돌 계획을 세웠다. 매달 나오는 184유로(약 23만원)의 수당은 25세까지 받을 수 있다.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직업학교 연수 후 일자리를 잡은 뮐러의 남동생은 직업학교 재학 기간에 약 120만원의 훈련수당을, 뮐러는 대학 재학 중 지원되는 약 80만원의 생활비 지원 대출을 받아 왔다. 일을 하지 않으면 여유가 줄어들 뿐 생활이 불가능해지는 것은 아니다. 뮐러는 “독일도 고령화가 빨리 진행돼서 줄어드는 청년인력 지원에 일찌감치 초점을 맞춘 것”이라며 “일을 하는 것도, 하지 않는 것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뮐러의 말을 통역해준 대학생 신미소씨(24)의 얼굴에는 부러움이 역력했다. 신씨는 “반도(한국)에서는 꿈도 못 꿀 얘기”라는 말에 이어 “외국인이 들어가서 일하기가 점점 힘들어지긴 해도 우리나라 현실을 보면 볼수록 독일 가서 일해야겠다는 생각이 더 강해져요”라고 덧붙였다. 스페인·이탈리아·그리스 등 특히 청년층을 덮친 실업위기가 유럽 전반으로 확산되는 와중에서도 독일은 풍부한 청년 지원 정책을 바탕으로 청년 실업률을 7~8% 선으로 유지하는 데 성공한 몇 안 되는 나라다. 뮐러는 “독일에선 대학이나 고등학교나 직업학교 어디에서도 한국처럼 젊은이들이 머리 싸매고 경쟁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고 말했다.

독일의 앞선 직업교육제도를 알리러 한국을 찾은 직업교육 교사들이 산본공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 김창길 기자

프랑스, 공공영역 일자리 8만7000여개
신씨와 같은 대학생을 위한 취업 지원금은 없지만, 한국에서도 직업훈련을 신청하면 교육비용 외에 훈련장려금과 지원수당을 합해 최대 40만원까지 수당을 받을 수는 있다. 그러나 직업 경력을 시작해 고용보험에 들지 않은 상태에서 실업수당을 지원하는 등의 지원은 전무하다. 경력도 없고 숙련도도 낮은 청년층 구직인력을 위한 생산성 제고방안도 뚜렷한 것이 없다. 반면 독일의 ‘두알레 시스템(직무·학습 병행제)’은 사회생활에 필요한 기초지식을 중등교육기관에서 가르치면서 노동현장에서 당장 필요한 직무교육과 훈련을 동시에 진행해 생산성을 높인다. 싼 임금의 외국인 노동자와 경쟁해야 하는 청년층의 임금을 낮추는 대신 생산성을 높이는 방식으로 임금수준을 유지하는 방식이다.

노동시장에 진출해야 하는 시점 이전에 앞서서 직업대책을 마련하는 방식이다. 독일을 비롯해 직무와 학습을 병행하는 제도를 운용하는 오스트리아와 덴마크, 네덜란드 등의 나라에서는 청년 실업률도 상대적으로 낮은 경향을 보인다. 유럽재단(EF)의 2012년 연구 결과에 따르면 병행 학습제도에 참여하는 학생 수가 1% 늘어날수록 니트(NEET) 비율은 0.04~0.09%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단순히 청년 실업률을 낮추는 것뿐만 아니라 니트족으로 대표되는 장기 무직 상태의 인적자본 저하 현상을 막는 데도 유효하다는 지적이다.

이웃 독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청년층 실업문제가 심각했던 프랑스에서는 공공영역에서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쪽의 정책에 집중했다. 청년신서비스직종정책(NSEJ)은 공익성은 높지만 기업 참여도가 낮은 부문의 일자리를 개발해 청년층을 대상으로 제공하는 사업이다. 실업상태이면서도 실업급여 혜택의 사각지대에 놓인 청년들이 이 정책에 따라 만들어진 일자리에 취직하면 최저임금의 80% 수준의 교부금을 정부에서 5년까지 지원한다. 이 정책에 따라 공공영역에 가까운 교육과 경찰행정 분야에서 신규 창출된 일자리는 8만7000여개에 달한다.

일본의 경우는 청년층의 교육수준은 높으면서도 청년 실업자 가운데 니트족 비율이 높다는 점이 한국과 공통적이다. 특히 프리터로 불리는 저임금 단기간 일자리 노동자들의 비율이 높아지는 문제가 일본 청년 일자리 분야의 대표적인 문제였다. 사토 슈오(25) 역시 한국에서 요리사로 일하기 전에는 편의점이나 지역 공공기관의 단기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프리터족이었다. “한국도 좋고, 가고 싶은 나라에 가서 원하는 기간만큼 자리 잡아 살고 싶은데 어떤 기술이 있어야 괜찮을까 고민을 하다가 요리학교에 들어갔습니다.” 사토가 입학한 요리교육 직업훈련기관은 독일식의 직무·학습 병행제도를 도입해 만들어진 만큼 최대 월 15만엔(약 135만원)까지 정부 지원금이 지급됐다.

일본, 인턴 후 정규직 채용시스템
일본의 청년 일자리 대책은 ‘잃어버린 10년’이라 불리는 장기 경기침체기 동안 유명무실해졌던 평생고용 관행을 회복하는 방향에 초점을 맞췄다. 직업훈련 과정에서 훈련기관과 연계된 사업장에 인턴으로 입사하면 일정 기간이 지난 후 정규직 채용으로 연결시키는 채용시스템을 마련한 것이다. 사토는 대형 전통식당의 주방과 훈련기관 양쪽에서 요리를 배우면서 도제식 훈련과 매뉴얼화된 교육체계를 동시에 경험했다고 말했다. “숙련도가 높은 지도 선배한테서 1대 1로 배우면 더 깊이 있는 이해가 가능하죠. 게다가 자기가 그만두기 전까지는 평생 그 식당에서 일하는 사람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고용에 대해선 걱정이 없어요.” 사토는 청년인력이 부족한 분야일수록 임금이나 복지와 같은 대우는 좋다는 점을 장점으로 꼽았다. 흔히 3D로 불리는 기피 직종일수록 임금수준이 낮아 외국인 노동자가 대체하는 경향이 높은 한국과 대비되는 점이다.

각국이 청년을 위한 일자리 대책 마련에 앞장서는 이유는 청년 실업이 사회적 차원의 비용 낭비와 생산성 저하의 문제 외에도 개인의 일생 동안 행복권을 침해하는 결과를 보인다는 연구 결과가 속속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귄터 슈미트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 명예교수는 ‘한국의 청년 실업’이라는 보고서에서 “초기의 실업이 추후의 인생에 유의미한 낙인효과를 초래하는데, 초기에 실업을 경험했던 청년은 30년 후에도 원만하게 노동시장으로 이행한 청년보다 임금과 행복 수준이 낮았다”고 밝혔다. 게다가 경기침체 시 청년층이 가장 먼저 해고되며 신규인력 채용 감소가 일어나는 반면 경기회복 시에는 가장 늦게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특성에 맞는 대책이 필요하다는 진단이다. 슈미트 교수는 “한국의 청년 실업은 제조업 감소 및 수출 가능한 고품질 서비스의 결여와 어느 정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측면에서 정부는 교육, 건강, 아동 보육 및 노인 부양과 같은 공공재와 관련된 일자리를 창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