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당신이 못나서 일을 못하는 게 아니다

청년 직장인-청년 구직자 능력 차이 1% 이하… OECD 평균은 6%대

스물일곱 청년 안병일씨는 지난달 지게차 면허증을 땄다. 안씨가 딴 자격증은 이제 7개로 늘었다. 하지만 이번 지게차 면허증은 대학 졸업 전후로 취직을 준비하며 수집하듯 땄던 자격증들과는 조금 다르다. 이력서 빈 칸을 채우기 위해 마구잡이로 모았던 자격증은 일자리를 구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머리에 남는 것도 없었다. 하지만 몇 번의 낙방 끝에 손에 넣은 지게차 면허는 다르다. 아버지가 경영하는 작은 물류창고에서 일을 시작했기 때문에 교육만 이수하면 받을 수 있는 소형 지게차 면허를 따도 됐지만, 일부러 따기 힘든 정식 지게차운전기능사 자격을 땄다. 아버지 그늘을 벗어나게 되더라도 최소한의 밥벌이 능력은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해서였다.

“심리학이 뭔가 그럴 듯해 보여서 전공했죠. 막상 취업할 시기가 되니까 전공 살리기가 어렵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지만요. 뭐, 그렇다고 급하게 복전(복수전공)한 경영학이 (취업에) 도움된 것도 없었고요.” 안씨는 올해 초 수도권의 4년제 대학을 졸업했다. 졸업 전 원하던 회사에 들어가는 데는 실패했다. 구직활동을 더 해볼까 하는 생각을 일찌감치 접었다. 마침 아버지 창고에서 지게차를 운전할 자리가 비었다. 흔히 말하는 ‘금수저’는 아니지만 숟가락 하나 정도 물려받을 수 있는 집안이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심리학 전공지식은 물론 영어성적, 봉사활동 경력 등 쌓아온 ‘스펙’들과는 전혀 무관한 일이지만 별로 상관없었다. “대학에서 배운 게 언젠가는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는 생각해요.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재미있는 공부를 했다는 걸로 만족해야죠.”

안씨의 모습에서 한국 청년층의 현실이 비친다. 한국 청년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지적 능력과 경력을 겸비한 우수한 인력이다. 자화자찬이 아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OECD 직업능력 개발 전망 2015(OECD Skills Outlook 2015)’ 보고서에 따르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및 직업교육을 이수한 25∼34세 청년 비율은 한국이 67.1%로 조사 대상국 가운데 1위였다. 2위인 일본(58.4%)보다 10%포인트, OECD 평균(42.7%)보다는 25%포인트가량 높았다.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도 한국 학생은 수리능력 1위, 읽기 등 문장 이해능력에서는 2위를 차지했다.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청년 일자리 박람회를 찾은 학생들이 채용공고게시판을 살펴보고 있다. / 김창길 기자

한국 청년 ‘역대 가장 스펙 높은 세대’
하지만 듣기 좋은 소식은 여기까지다. 청년층의 우수한 능력이 가장 허비되고 있는 나라도 한국이다. 한국의 15세에서 29세까지 청년층 중 ‘직업이 있는 집단’과 ‘구직·직업훈련·교육에 참여하지 않는 집단(NEET·니트)’ 간 능력치의 차이는 1% 이하로 가장 낮았다. OECD 평균은 6%대로 직업이 있는 집단의 능력이 니트 집단에 비해 높았다. 바꿔 말하면 한국 청년은 일자리를 잡는 데 성공했건 실패했건 능력은 거의 차이가 나지 않을 정도로 뛰어나다는 말이 된다. 한국에서는 취직에 실패하는 것이 적어도 능력이 모자라서가 아니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아슬아슬한 차이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더라도 그 규모가 크지 않다면 위안이 될 터이다. 하지만 OECD 보고서는 그런 기대도 무너뜨린다. 30세에서 54세까지의 핵심 생산인구 실업률에 대비해 청년층 실업률은 3.51배나 높았다. 조사 대상국 가운데 한국이 가장 높았다. OECD 평균은 2.29배였는데, 이 비율이 3배 이상인 회원국은 한국을 비롯해 스웨덴(3.16), 노르웨이(3.05), 이탈리아(3.00)까지 4개국에 불과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한국의 실업률 집계방식에서는 구직 단념이라는 이유로 실업에 집계되지 않는 니트 집단을 더하면 한국의 청년 실업률은 걷잡을 수 없는 수준이다. 한국의 니트 집단이 청년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8.5%로 조사 대상국 중 5위였다. 스페인·이탈리아·아일랜드 등 금융위기를 겪었던 유럽 국가를 제외하면 거의 최고 수준이다. 특히 니트 집단 가운데 구직활동을 아예 포기했다는 청년의 비율도 한국이 84.6%로 가장 높았다. OECD 평균 55.8%에 비해 30%포인트 가까이 높은 수치다.

그나마 시간이 지나면서 나아지고 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지난달의 전체 취업자 수는 전년 동기 대비 37만9000명 증가해 가장 큰 폭으로 늘었지만 이러한 추세도 청년층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다. 통계청의 ‘5월 고용동향’을 보면 청년 실업률은 9.3%로 계절의 영향을 받아 한 자릿수대를 기록하긴 했지만, 역대 5월 청년 실업률로 따지면 1999년 이후 최고치였다. 대학 졸업자의 취업률도 2012년 56.8%, 2013년 56.4%, 지난해 55.3%으로 지속적으로 떨어지는 추세다.

단순히 청년층 인구의 인구학적 분포만을 고려하면 이러한 ‘취업 보릿고개’가 앞으로도 5년 가까이 더 지속될 것이라는 점은 청년들에게는 악몽의 정점과도 같다. 장래인구 추이를 보면 대졸자가 본격적으로 노동시장에 진출하는 나이대인 25~30세 인구는 2020년이 돼서야 국지적인 정점을 지나기 때문이다. 현재 청년세대 안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경쟁을 피할 수 있을 정도로 청년인구가 감소해야 실업문제가 개선되기를 기대할 수 있을 만큼 상황은 심각하다.

대학생단체 소속 회원들이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앞에서 정부의 청년실업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 김기남 기자

우수한 능력 가장 허비되고 있는 나라
‘역대 가장 스펙 높은 세대’들에게는 이런 현실이 더 이상 놀랍지도 않다. 일자리를 잡기 힘든 현실을 매일 피부로 체감하기 때문이다. 이미 자신들의 상황을 파악할 정도로 머리가 굵은 청년세대에게 초점이 빗나간 정부의 대책은 우스갯소리로도 들리지 않는다. “대통령이 젊은 사람들 중동 가서 나라가 텅 비게 하라잖아요. 나 참, 그게 말인지 막걸린지….” 청년 구직자 박서영씨(28)는 대학 졸업 후 첫 직장에서 2년 동안 계약직으로 일했다. 계약기간이 끝난 뒤 회사는 박씨와 재계약을 하지 않았다. 일자리를 잃은 박씨는 2년간의 경력을 더 늘리고 싶어 업계의 경력직 채용을 알아봤지만 대부분의 업체에서 3년 이상의 경력을 요구했다.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옮겨가는 길은 완전히 막혔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계약직으로 경력 3년 채운다고 해도 경력직 입사하는 건 하늘의 별 따기고, 대부분은 그냥 계속 계약직으로 옮겨다니며 일하는 수밖에 없죠.”

일이 손에 익으면 계약이 끝나고 다른 업체로 옮겨가야 한다. 아예 다른 업종으로 신입 지원을 하기도 쉽지 않다. 이미 먹은 나이 탓에 새롭게 쏟아져나오는 더 젊은 구직자들과 경쟁하는 것이 버겁기 때문이다. “다음달에 받는 실업급여가 마지막인데 그때까지 재취업이 될지 모르겠어요. 무슨 일이든 일이야 하려면 할 수는 있지만 대학 4년 더하기 직장 2년 해서 6년 동안 나름 공들이며 쌓은 경력을 그냥 포기하는 게 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낭비인 것 같아서 쉽게 포기를 못하겠어요.” 박씨는 아직 대학시절 빚진 학자금대출도 다 갚지 못했다. 능력을 갖추는 데 들인 돈은 적지 않지만 그만큼의 투자액을 회수할 기회마저도 주어지지 않는 게 현실이다.

청년 실업의 사회적 비용을 계산해 보면 얼마나 될까. 우선 소득과 세수가 줄어드는 문제를 들 수 있다. 여기에 더해 일하면서 해당 업무 분야에 관해 배우고 숙련도를 높이는 기회를 잃어버리는 것을 포함해 인적자본을 늘리는 길이 막혀 사회 전체의 성장잠재력도 함께 떨어지는 문제까지 계산하면 비용은 천문학적인 액수가 된다. 한국은행 금융경제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청년 실업이 집중되는 연령대인 25~29세 청년 실업자의 10%만 1년 동안 실업상태에 놓이더라도 장기적으로는 5조6000억원의 소득 손실과 함께 4000억원의 세수 감소가 발생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청년 개인이 1년 동안 실업상태에 있을 경우 그 기간의 단기 소득 손실을 약 4000만원, 세수 감소가 약 1300만원으로 보면 장기 손실액은 각각 7배와 18배로 늘어 소득 손실 2억8000만원에 세수 감소는 2200만원까지 불어난다.

일 손에 익으면 계약 끝나고 이직해야
장기적인 사회적 비용의 증가폭이 훨씬 크기 때문에 전문가들은 정부가 적극적으로 노동시장에 개입해 일자리를 늘리는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실업자에 대한 보조와 지원 등으로 한정되는 소극적 정책을 넘어 공공 일자리 사업을 확대하는 등의 정책이 더 늘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향후 최소 5년간은 지속될 청년 실업문제 해결을 위해 청년층에 집중된 일자리 사업 및 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적극적·소극적 정책을 망라해 OECD 회원국들의 노동시장 정책 지출은 GDP의 1.42%에 달하는 수준이다. 그러나 한국의 노동시장 정책 지출은 GDP의 0.62%에 불과하다. 정부가 일자리 마련에 손을 놓고 있는 동안 청년들의 실업은 악화되고 그 손실은 다시 정부의 세수 감소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는 형편이다.

OECD는 보고서에서 인적자본의 잠재력이 낭비되고 있는 현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기업들이 청년 고용에 비용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신규 채용을 기피하는 데 대해 정부와 사회는 청년 고용의 제도적 장애를 제거하는 한편, 제도적으로 포착되지 않는 니트 집단의 실업상태를 파악하고 경제활동 재참여를 지원해야 한다.” 본의 아니게 자신의 능력을 허비하고 있는 청년들에게 맞는 정책이 시급하다.

대학 진학률 70% 선 곧 붕괴… ‘무조건 대학’ 환상 깨졌나

대학 진학률 70% 선이 곧 붕괴될 듯하다. 전문가들은 특성화고, 마이스터고 등 이명박 정부 때부터 시작된 고졸 취업 활성화 방안과 대학 진학률 감소가 관련이 있다고 분석한다.

2000년대 초부터 급격히 올라간 대학 진학률은 2004년부터 80%를 넘겼다. 일반계 고등학교만 따졌을 때, 2003년부터 대학 진학률은 90% 이상이었다. 하지만 2009년부터 추세가 역전됐고, 지난해 대학 진학률은 70.9%를 기록했다. 대학 진학률이 떨어지던 시기 고졸 취업률이 올랐다. 20% 초·중반을 오르내리던 고졸 취업률은 2011년부터 매해 3%씩 이상 상승해 2014년에는 33.5%까지 올랐다.

통계상으로는 ‘무조건 대학’ 현상이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학력에 매달리는 사회적 분위기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있다.

박상현 한국고용정보원 직업연구센터 연구위원은 “여러 가지 고졸 취업 지원정책으로 무조건 대학을 가야 한다는 생각이 조금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현 정부의 고용정책이 고졸자보다는 경력단절녀, 노인 등에게 맞춰져 있기 때문에 대학을 안 가는 추세가 계속될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대학에 가더라도 취업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인식도 확산되고 있다. 공식 통계상으로도 청년 실업률은 10%를 넘어섰다. IMF 외환위기 이후 최악의 고용한파라는 말이 나오는 반면, 대학 등록금은 내릴 기미가 없다.

김지애 학벌없는사회 사무처장은 “대학생이 될 때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비용이 높은 반면, 노동시장은 워낙 막혀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대학 진학률이 내려가는 건 당연하지만, 이것과 학벌사회가 완화되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이야기”라고 말했다.

김 사무처장은 “여전히 고졸 일자리의 상당수는 최저임금 수준의 불안한 일자리다. 청소년들에게 꼭 대학에 진학하고, 좋은 학벌을 획득하라고 경쟁을 강요하는 사회 풍토가 근본적으로 바뀐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이강은 서울인덕공업고등학교 부장교사는 대학 진학률이 내려가는 추세 자체는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 교사는 대학 진학률을 낮추는 것만큼이나 대학과 ‘공부’에 대한 인식이 변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성화고에는 흔히 말하는 국영수 공부에 흥미가 없어서 오는 아이들이 꽤 있다. 그런 학생들 중 기술을 익히고 자격증을 취득하는 과정도 ‘공부’로 여기고 열심히 하는 아이들도 많은데 사회적으로 인정을 못 받고 있다.”

이 교사는 “학생마다 학습욕구가 다 다르다. 아예 대학 진학 생각이 없는 아이들도 있고, 직장을 다니다 보니 대학에서 한 차원 더 높은 공부를 하고자 하는 이들도 있다. 그런데 처음부터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지 않은 고졸들에겐 대입의 문이 너무 좁다. 한쪽에서는 학생들에게 대학 진학을 강요하는 반면, 이쪽에선 ‘고졸로만 행복히 살아라’는 잘못된 분위기가 있다”고 말했다.

고졸에 대한 사회적인 편견도 여전하다. 고졸 취업자 오지영씨의 경우 다니던 공장에서 수개월간 품질관리 업무를 도맡았다. 그런데 신입사원으로 대졸자가 채용되면서 오씨는 하루아침에 단순노동을 반복하는 자리로 갈 수밖에 없었다. 오씨는 “회사에서 대놓고 말을 한 건 아니지만 내가 고졸자이기에 밀려났다는 건 알고 있다”고 말했다.

박상현 연구위원은 “대학에 대한 인식의 큰 물줄기가 바뀌고 있다고는 하나 여전히 직장에서 고졸자라고 하면 대졸자보다 모자라다고 인식하는 경우가 있다. 과거 남아선호 사상이 없어지거나 임산부를 배려하는 문화가 정착되기까지 최소 30년이 걸렸다. 국가 정책으로 지표가 잠시 바뀌었다고 사회적 편견이 금방 없어지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