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폭력에 맞서는 여자들의 당당함

나오미와 가나코
오쿠다 히데오 지음·김해용 옮김·예담·1만3500원

사람이 사람을 죽인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도 있고, 사람 죽이기를 파리 잡듯 생각하는 악인도 세상에는 있다. 그래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를 죽인다는 것은 아무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사람을 죽인 보통 사람들이 있다. 우발적으로 죽인 것이 아니라 의도를 가지고 누군가를 죽였지만, 평범하고 나약하고 심지어 착하기까지 한 사람들.

절친한 대학 동창인 나오미와 가나코는 사람을 죽였다. 살인을 한 그들은 착하고 평범한 29살의 여인들이다. 나오미는 미술 큐레이터가 되고 싶어 백화점에 입사했지만 외판 부서에서 VIP 고객을 담당하는 일을 하고 있다. 가나코는 은행을 다니는 남자를 만나 결혼을 했다. 뜻대로 안 되고, 힘든 일도 있기는 하지만 보통의 삶이었다. 아니 비교적 쾌적한 생활이라고 볼 수 있었다. 가나코의 얼굴이 남편의 폭력으로 망가진 것을 보기 전까지는.

나오미와 가나코가 선뜻 살인을 결심한 것은 아니다. 가나코가 이혼할 생각이 있었다면 합리적으로 진행되었을 것이다. 합의를 하고, 위자료를 받고, 이혼을 해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하지만 심한 폭력에 길들여진 가나코는 마음의 도피처를 만들고 숨어버렸다. ‘매 맞는 아내’의 체념이다. 이혼을 요구하면 자신을 죽일 수도 있고, 가족에게 복수를 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과 공포는 가나코를 굴복하게 만들었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폭행한다는 사실을 알았고, 도망치듯 도쿄의 대학으로 왔던 나오미는 알고 있다. 폭력은 ‘그냥’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나오미는 이케부쿠로 차이나타운의 여사장 아케미를 알게 된다. 처음에는 야비한 악당으로 생각했지만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는 중국인의 모습에 점점 끌려들어간다. ‘분명 중국인에게 산다는 건 전쟁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생활을 지키기 위한 거짓말이나 책략은 모두 정당방위가 된다.’ 나오미는 그녀에게 배웠다.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당당해질 필요가 있다는 것을. 그래서 나오미는 가나코의 남편을 살해할 것을 밀어붙이고, 망설이던 가나코도 점점 담대해진다.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먼저 앞서가면 수월해진다. 가나코는 나오미의 뒤를 따르면서 점점 닮아간다. 오히려 순간 나오미가 가나코에게 의지할 정도로.

북리뷰

오쿠다 히데오의 필력은 위풍당당하고, 나오미와 가나코도 점점 강건해지며 앞으로 나아간다. 물론 사람을 죽이는 일이 그렇게 쉬울 리가 없다. 죽이고 나서도 그들은 여전히 벼랑 끝에 서 있다. 나오미가 아니고는 누구도 가나코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그녀들은 끝까지 달려가야만 한다. 멈출 수가 없다. 그런 그녀들의 의지와 마음이 <나오미와 가나코>에는 진솔하게 담겨 있다. 읽다 보면 그녀들을 마구 응원하게 된다. 세상에 반드시 죽여도 될 사람은 없지만, 누군가를 죽여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경우는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니까 <나오미와 가나코>는 여성들을 위한 찬가다. 그녀들이 사람을 죽였기 때문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당당해졌으니까.

<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