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문제 제기하면 ‘너넨 떠들어라’ 반응합니다”

저자와 대학생에게 듣는 오찬호 박사 저서 ‘진격의 대학교’

오찬호 사회학 박사(37·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 선임연구원)의 저서 <진격의 대학교>는 제목과 다르게 청와대에서 시작한다.

2045년, 유엔은 한국 정부에 자살률을 낮추지 않으면 유엔에서 강제탈퇴시킬 것이라고 통보하고, 한국 정부는 긴급 국무회의를 연다. 대통령은 ‘자살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말을 평생 들어본 적이 없다고 발언하고, 차기 대권주자인 경제부총리는 자살은 개인의 의지 부족 문제이며, “복지를 늘리면 기업이 다 죽는다”고 일갈한다. 대통령은 사회학 전문가의 의견을 들으려 하지만 교육부 장관은 “사회학과는 2022년 서울대를 끝으로 완전 폐지됐다”고 답한다. 결국 국무회의는 “유엔도 빨갱이 소굴이 다 됐다”며 교회에 가서 기도를 열심히 올리자는 대통령의 말로 마무리된다.

왜 저자는 뜬금없이 청와대에서 이야기를 시작했을까? 오 박사는 2015년 현재 ‘진격대’(책에 등장하는 가상의 대학교 이름)에 다니는 학생들이 30년 뒤에는 청와대에 앉을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학부생 시절부터 오 박사의 10여년 경험으로 볼 때 청와대 에피소드는 실현 가능성이 꽤 있는 시나리오다. 진격대는 학생들에게 취직을 위한 헤어스타일과 넥타이 매는 법을 가르친다. 저명한 철학교수가 공자와 맹자를 영어로 가르치고, 학생들은 교수의 영어 발음을 지적한다. 실존하지는 않지만 어디에나 존재하는 진격대학교의 이야기를 오 박사와 대학생 김준식씨(22·가명)로부터 들어봤다.

오찬호 박사(오른쪽)와 대학생 김준식씨 / 백철 기자

이 책에서 보여주고 싶은 것은 무엇이었나.

오찬호 “2007년부터 겪었던 여러 대학의 사례를 하나로 묶어서 진격대를 만들었다. 일부의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진격대가 점점 많아지는 추세를 보여주고 싶었다. 10여년 전에도 경영학과는 많았고 취업은 어려웠지만 나도 자료를 찾으면서 ‘이 정도인 줄은 몰랐다’는 혼잣말을 수도 없이 했다. 취업 ‘3종’ 세트나 스펙이란 말이 나온 게 벌써 10년 전 이야기다. 인문계열 학과장이 학생들에게 취업을 위해서는 경영학과 이중전공을 하라고 직접 권하는 모습은 ‘평범한 모습’에 불과하다. 현재 대학생들은 매일 겪는 이야기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40대 이상에서는 정말 시대가 변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지 않겠나.”

김준식 “이 책이 현실을 크게 과장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영어과목을 2과목 듣고 있는데 수업시간 내내 교수나 듣는 학생들이나 어색하다. 어려운 대목이 나오면 교수도 설명하기가 어렵고 학생도 잘 알아듣지 못하니 결국 영어로 한 번 하고 한국어로 또 설명하는 일도 있다. 수업 내용이 먼저인지 영어 공부가 먼저인지 수업을 들으면서도 헷갈린다.”

대학의 영어 숭배나 기업화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부분도 인상 깊었지만, 대학이 시민의식을 가르치지 못한다는 지적이 눈에 들어왔다.

오 “학내나 사회 현안에 문제제기를 하는 학생들도 점점 줄고 있지만 그들을 보는 다른 학생들의 시선도 변하고 있다. 이젠 ‘너네는 떠들어라. 우리는 우리 길을 간다’는 무관심을 넘어 ‘쟤들 때문에 취직이 안 된다’며 공개적으로 억압하는 단계다. 학생들이 집회, 시위를 하는 행동 자체가 무슨 비윤리적인 것처럼 설명을 하는 분위기도 있다. 이건 시민의식의 실종이 아니라 시민이 되는 것 자체에 대한 거부감으로 볼 수 있다.”

김 “이젠 운동권 총학생회가 대세도 아닐 뿐더러, 운동권 후보가 총학 선거에 나오면 일단 신상털기에 들어간다. 그게 격해지면 특정 후보는 운동권이니까 뽑지 말아야 한다는 글이 올라오고 그게 추천을 많이 받는다.”

대학생들의 공감능력이 많이 떨어진 게 문제일까.

오 “공감능력 자체가 없어졌다고 보지는 않는다. 학내 비정규직이 차별받고 있으면 그들의 처우에 안타까워하는 목소리가 더 많다. 문제는 거기서 멈춘다는 것이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면 ‘안됐지만 그건 좀 아니네요’라는 반응이 나온다. 전반적인 보수화, 무관심이라기보다는 대학에서 학생들을 기업의 입장에 공감하는 사람으로 만드는 쪽으로 진격하고 있다고 본다. 기업의 논리만 가르치고 민주주의를 가르치지 않으니 시위나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는 것 자체를 불편해하고, 정치 관련한 글은 자유게시판에 오르면 안 되는 것처럼 분위기가 형성된다.”

준식씨는 학보사 경험이 있다고 하는데, 학교나 총학생회에서 시민의식을 가르치지 못하면 학보사가 그 역할을 할 수도 있지 않나.

김 “2학기 동안 학생기자를 하면서 기사를 잘리는 경험도 했다. 지난해 7월 재·보궐선거에 출마한 쌍용차 해고노동자를 인터뷰했는데 이유도 제대로 듣지 못하고 잘렸다. 총학 선거 때는 학교 측에서 각 후보자들의 당적을 명시하라고 하고 우리는 못한다고 버텼다. 그런데 아예 신문 발행을 못하게 하더라. 지금은 ‘찌라시’라는 독립언론이 학보사가 하지 못한 말을 대신하고 있다.”

오 “여러 대학에 강의를 다닐 때마다 나오는 학보는 다 읽어본다. 막상 보면 등록금 문제, 학벌주의나 집단주의 등 대학과 관련된 사회문제가 다뤄지긴 한다. 그런데 수박 겉핥기만 하고 끝나니까 대학 내에서 토론과 논쟁이 일어나지 않는다. 조금만 깊이 있는 해석과 논조가 들어가면 왜 중립성을 지키지 않느냐는 지적이 들어온다.”

대학이 비판정신을 상실한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오 “책에는 빠진 에피소드인데 이런 일이 있었다. 기업 관계자를 초청하는 특강 시간인데 교수가 기업인을 무슨 대통령 대하듯 의전을 하는 거다. 강의가 끝나자 앞장서서 박수를 유도하고, 기업인에게 허리를 굽히며 ‘우리 학생들 잘 부탁드린다’며 인사를 한다. 그런데 이게 일부 대학 이사장이나 교수들의 문제가 아니다. 이 사회가 이건희를 존경하고, 자본에 치우친 시대정신을 갖고 있기 때문에 대학이 이런 모습이 된 것이다. 몇 년간 자본주의를 비판적으로 바라보자는 강의를 해 왔는데, 시간이 갈수록 내 강의가 낯설게만 느껴진다.”

김 “대학평가가 시작되면서 경쟁이 더욱 치열해졌다. 평가 결과가 나오면 학교는 현수막을 걸고 학생들은 SNS에서 우리보다 낮은 대학을 무시하는 글을 올리고 즐거워한다. 그리고 많은 학생들이 최대한 ‘합리적’으로 대학생활을 하려 노력한다. 방학 때 스펙도 쌓고, 수강신청도 잘해보려고 노력하지만 사실 정해진 선택지 중에서 고르는 것뿐이다. 아무리 취업이 잘된다는 공대생도 20% 정도는 취직이 안 되고, 취직이 된 사람 중 좋은 일자리는 별로 없다. 개개인은 합리적으로 움직인다고 믿는데, 그 결과도 합리적인지는 의문이다.”

이 책은 대안이 아니라 모순된 현실을 보여주는 게 목적이다. 그래도 저자가 독자들에게 원하는 바가 있다면.
오 “진격대는 최근 몇 년 사이 갑자기 생겨난 게 아니다. 김대중 정부부터 박근혜 정부까지 큰 틀에서 보면 자본의 대세는 점점 확고해졌다. 이런 시대와 대학이 만든 분위기에서 나 역시 자유롭지 않다. 초등학교 1학년 딸이 있는데 영어, 수학보다 역사책을 훨씬 좋아한다. 대견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이 애가 커서 사학과를 전공하겠다고 말하지 않을까, 또래들은 5살부터 문제집을 푼다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을 한다. 우리 시대의 대학이 만들어놓은 공기가 결국 내 자식과 후손들의 의식을 결정한다는 점은 생각해야 한다. 지금도 대학은 민주주의 훼손에는 둔감하고 ‘너 살쪘어’라는 말엔 깜짝 놀라는 학생, 기업은 마음대로 해도 되니 취직을 잘하려면 알아서 SNS를 검열해야 한다는 학생을 양산하고 있지 않나.”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