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규의 미스터리 산책]추리는 독자의 몫으로 남는 ‘미완성 추리극’

미완성으로 끝나는 첫 번째 이유는 집필 도중에 작가가 세상을 떠나는 경우이다. 두 번째 이유는 연재하던 신문이나 잡지가 폐간되거나 검열 때문에 작품이 중단되는 것이다. 마지막이자 가장 흔한 이유는 작가가 벽에 부딪쳐 이야기를 더 이어가지 못하는 것이다.

소설이건 영화건 드라마건, 모든 이야기에는 결말이 있다. 초반에는 밋밋하게 느껴지다가도 훌륭한 마무리 덕택에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어떻게 이런 기발한 발상을 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끝에 가서는 ‘모두 꿈속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식의 용두사미 결말로 허탈함을 주는 작품도 있다. 이처럼 작품을 멋지게 끝내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추리소설의 결말은 비슷하다. 대개 범인이 밝혀지고 잡히는 것에서 끝나며, 스릴러라면 주인공이 위기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종료된다. 이렇게 단순해 보이지만, 앞부분에서 뿌려놓은 기발한 발상이나 단서를 그럴 듯하게 엮는 것이 쉬운 듯하면서도 어려운 점이다. 그래서 미국 추리소설가 존 딕슨 카는 ‘마지막 부분부터 쓰라’고 조언할 정도였다. 이렇게 작가들은 고심을 하지만. 때로는 마무리가 되지 않은 채 미완성으로 끝나는 경우도 있다. 첫 번째는 불가항력적인 이유인데, 집필 도중에 작가가 세상을 떠나는 경우이다.
이런 류의 대표적인 작품이 19세기 영국을 대표하는 작가 찰스 디킨스의 유작 <에드윈 드루드의 비밀>(1870)이다. 에드윈 드루드와 약혼녀 로자 버드,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애정관계가 복잡하게 얽힌다.

찰스 디킨스 <에드윈 드루드의 수수께끼>, 에도가와 란포

새로운 잡지에 다시 연재 완성하기도
에드윈이 갑작스럽게 실종되고, 정체불명의 인물이 나타나며 분위기가 고조되는 가운데 디킨스가 세상을 떠나면서 소설은 중단된다. 11장으로 이루어질 예정이었으나, 6장에서 끝나는 바람에 에드윈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그렇다면 누가 그를 죽였는지 등의 의문은 그대로 남게 되었다. 얼마나 해결이 궁금했던지 19세기 말에는 강령술(降靈術)로 디킨스의 영혼을 불러내는 시도까지 벌일 정도였다. 이야기 속에 남겨진 단서를 근거로 지금까지 수많은 연구자들이 그 답을 제시했으나 디킨스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는 영원히 알 수 없는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한국 초창기의 추리소설가 김내성에게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하지만 결과는 많이 달랐다. 김내성은 1957년 경향신문에 <실락원의 별>을 연재하던 도중, 갑작스러운 뇌일혈로 작고했다. 한 달 정도 연재가 중단되었던 이 작품은 작가의 기획 노트가 남아 있었던 덕택에 그의 장녀 김문혜가 나머지 부분을 집필하여 완성될 수 있었다.

미완성으로 끝나는 두 번째 이유는 작품 지면이 사라져버리는 것, 즉 연재하던 신문이나 잡지가 폐간되거나 검열 때문에 작품이 중단되는 것이다. 수많은 추리소설 관련 잡지가 발간되었던 일본에 이런 경우가 많았다. 유명한 작가라면 다른 지면을 얻을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무명작가라면 안타깝게도 기회가 날아가 버려서,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다시 한 번 김내성을 언급하게 되는데, 그의 마지막 추리소설이었던 <사상의 장미>(유작 <실락원의 별>은 추리소설이 아니다)는 1953년 <신시대>라는 잡지의 창간과 함께 연재가 시작되었으나, 3호 만에 폐간과 함께 중단된다. 그러나 이듬해 <신태양>을 통해 처음부터 다시 시작, 완성될 수 있었다.

마지막이자 가장 흔한 이유는 작가가 벽에 부딪쳐 이야기를 더 이어가지 못하는 것이다. 유명 작가들도 플롯을 짜다가 포기하는 경우가 있으니 반드시 작가의 역량 탓이라고 할 수는 없고, 예측 못한 불운이 덮쳤다고나 할까. 에도가와 란포는 1933년 <악령>을 잡지에 연재했다. 수록 잡지가 재판을 찍을 정도로 반응은 폭발적이었지만, 연재 3회 만에 발단 부분을 끝으로 갑자기 멈추었다. 확실한 속사정은 알 수 없으나, 동료 작가인 요코미조 세이시의 회상에 의하면, 란포는 서술자가 범인이라는 구상을 했는데 마침 비슷한 소재의 외국 작품이 번역되는 바람에 더 쓸 힘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조광>에 연재된 신경순의 <제2의 밀실>, TV용 영화로 제작된 <푸들 스프링스>

작가 유품 속에서 원고 발견되기도
1953년, 일본의 중견 추리소설가 기기 다카타로는 잡지에 <아름다움의 비극>이라는 장편 추리소설 연재를 시작했다. “변호사 사무실 안에서 권총을 쥔 두 남자가 총에 맞아 쓰러져 있는데, 두 사람 모두 각각 자신이 쏜 총알에 맞아 숨진 것으로 밝혀진다. 자살은 분명 아니며, 경찰은 ‘각자가 쏜 총알이 허공에서 충돌하여 다시 서로에게 맞은 것’으로 추정한다.” 이러한 기발한 도입부와 함께 작가는 예술적인 추리소설을 쓰겠다고 다짐했으나, 10회 만에 연재가 중단되었다. 당시 건강 상태도 괜찮았으며(그로부터 15년 후에 작고한다), 같은 해 일본 탐정작가클럽의 회장도 맡을 정도로 왕성하게 활동했던 그가 왜 작품을 중단했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하게 중단된 작품이 있다. 언론인으로 활동하면서 추리소설을 썼던 신경순은 1935년 <조광>에 <제2의 밀실>을 연재했다. ‘완전 밀실 상태의 은행 금고 안에서 시체가 발견된다’는 당시로서는 흥미진진한 이 작품은 3회 만에 예고 없이 연재가 중단되었다. 아마도 이 거창한 수수께끼를 감당하기에는 어렵지 않았나 여겨지며, 이후 그가 발표한 추리소설은 찾아볼 수가 없다.

잡지 연재가 드문 서구 쪽에서는 작가가 세상을 떠난 후 유품 속에서 원고가 발견되기도 한다. 완성작이면 ‘유작 발견’이라는 광고를 내걸고 출간하지만, 미완성 상태라면 유족의 허락을 얻어 마무리를 시도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레이먼드 챈들러의 <푸들 스프링스>는 후배 하드보일드 작가 로버트 B. 파커가 완성시켰으며, 여성 작가 크레이그 라이스가 남겼던 <에이프릴 로빈 살인>은 87분서 시리즈로 유명한 작가 에드 맥베인이 끝맺어 출간되었다.

작가가 아예 결말을 결정하지 않는 작품도 있다. 서구에서는 ‘리들 스토리(riddle story)’라고 하는데, 이야기 속에서 제시한 문제에 명확한 답을 밝히지 않은 채 물음표를 던지며 독자의 상상에 맡겨버리는 형식의 작품이다. 프랭크 스톡튼의 <미녀인가 호랑이인가>(1884), 클리블랜드 모펫의 <수수께끼의 카드>(1896), 스탠리 엘린의 <결단의 순간>(1956), 아쿠타카와 류노스케의 <덤불 속>(1922) 등의 단편이 대표적이다. 번역도 되어 있어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작품이다.

박광규의 미스터리 산책

마지막으로 별난 사건 한 가지를 소개한다. 1946년 찰스 스크리브너스 손즈 출판사는 매저리 보너의 <칼의 마지막 뒤틀림>을 출판한 후 커다란 실수를 저지른 것을 깨달았다. 작품의 마지막 장(章)이 빠져 있고, 원고는 편집실 책상 서랍에 들어 있었던 것이다. 당황한 출판사는 급히 개정판을 내는 한편 마지막 장을 소책자로 만들어 이미 구입한 독자들이 신청하면 무료로 보낸다는 대책을 세웠다. 그러나 출판사 측에 의하면 놀랍게도 소책자를 신청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고 한다. 과연 이 작품은 결말이 없어도 될 정도의 뛰어난 작품이었을까, 아니면 제대로 읽은 독자가 한 명도 없었을까. 궁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박광규 추리소설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