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내시경]무비컬로 환생한 <파리넬리>

영화를 무대용 뮤지컬로 재활용하는 콘텐츠들이 있다. 바로 무비컬이다. 왕년의 인기 대중음악을 활용해 무대화하는 주크박스 뮤지컬과 함께 요즘 세계 공연가에서 가장 인기 있는 형식이다. <보디가드>, <찰리의 초콜릿 공장>, <록키>, <마틸다> 등 일일이 열거하기조차 힘들다. ‘스파이더맨’이 공연장을 날아다니고, <사랑과 영혼>의 남자주인공이 홀로그램을 통해 관객의 눈으로 직접 보는 영혼으로 묘사될 때 관객들은 환호하지 않을 수 없다. 무비컬은 소비자들 입장에서도 나쁠 게 없다. 과거의 흥행 영화가 원작이니 스토리의 호불호에 대한 걱정 자체가 이미 존재할 수 없다. 게다가 기억 속 콘텐츠가 2차원 평면 영상물이었던 것에 비해 뮤지컬은 무대에서 그것도 라이브 엔터테인먼트로 실감나게 재연이 된다. 그야말로 날것 그대로의 현장감이 더해지니 결과적으로 일석이조의 재미가 담겨지게 되는 셈이다.

이미 원작 영화가 무대에 적합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면, 무비컬의 파급효과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바로 안무나 음악에 큰 방점이 있는 콘텐츠들이다. 아무리 돌비 스테레오 시스템에 초대형 화면으로 꾸며진다 하더라도, 춤이나 노래를 즐기기에 공연만큼 실감나는 장르는 따로 없다. <빌리 엘리어트>의 어린 주인공이 보여주는 춤사위가 무대를 통해 훨씬 더 감동적으로 표현되고, <원스>의 남녀주인공이 ‘폴링 슬롤리’나 ‘이프 유 원트 미’를 직접 노래할 때 알면서도 눈물을 떨구게 되는 이치다.

<파리넬리>가 창작 뮤지컬로 만들어진다는 소식이 알려졌을 때, 큰 기대를 모았던 것도 엇비슷한 배경 때문이다. <가면 속의 아리아>를 만들었던 벨기에 감독 제라르 코르비오가 1994년 발표했던 이 영화는 국내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켰던 ‘음악이 매력적인 영화’였고, 자연스레 무대에 대한 기대치는 한껏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관건은 영화에서 보여졌던 음악적 감동이 무대에서 얼마나 실감나게 재연될 것인가의 여부였다. 더군다나 스크린에서는 전설의 카스트라토였던 주인공의 비현실적인 목소리를 재연하기 위해 컴퓨터로 합성한 절대 고음의, ‘현실에 없는 소리’를 만들어냈던 까닭에 무대가 그에 필적하는 음악을 구현할 수 있는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무대의 실험은 꽤 만족스럽다. 주연을 맡은 루이스 초이는 안정적인 카운터 테너의 역량을 선보이며 무대를 효과적으로 장악했고, 카를로의 형 리카르도 역의 이준혁도 다양한 뮤지컬 무대 경험을 잘 살린 노련한 연기와 노래로 안정적인 무대를 선보였다. 이탈리아 실존인물이 벨기에 출신 영화감독의 손을 거쳐 이역만리 떨어진 대한민국에서 뮤지컬로 다시 환생한 셈이다. 문화산업의 글로벌한 행보가 여간 흥미로운 것이 아니다. 영화와 차별화되는 무대만의 묘미도 있다. 파리넬리와 정반대로 자신의 성정체성을 감추고 살고 있는 안젤로의 등장이나 오페라 대결을 조장하며 약방의 감초처럼 악역을 표현하는 래리 펀치의 존재감이 그렇다. 모두 극적 긴장감을 효과적으로 이끌어가는 좋은 등장인물이다. 특히 음악적인 배려에 대한 제작진의 노력은 가히 박수받을 만하다. 전체 극의 앞과 뒤를 꾸며주는 합창의 활용도 인상적이고, 뮤지컬 오케스트라의 구성면에서도 효율적인 악기의 배열이 돋보인다. 극의 클라이맥스에서 등장하는 헨델의 ‘울게 하소서’는 그래서 더욱 감동적으로 구현되는 이 작품의 재미다. 아쉬움이 있다면 짧은 공연기간이다. 쉽지 않은 뮤지컬의 창작 과정을 효과적으로 극복한 제작진에게 격려와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원종원 순천향대 신문방송과 교수/뮤지컬 평론가 jwon@sch.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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