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나는 일을 못한다]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 순 없을까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 수는 없어.” 언제 처음 이 말을 들었는지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엄마에게서였던 것도 같고, 선생님에게서였던 것도 같다. 아무튼 내가 아주 어릴 적부터 어른들은 나에게 그렇게 말해왔다.

어제 조합원 한 명이 사용자에게 사과문을 썼다. 아니, 정확히는 내가 썼다.

그는 사용자가 자신에게 부당한 노동행위를 강요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사무실에서 소리도 질러 보았고 회장에게 화도 내 보았지만 아무것도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분하고 억울함을 견딜 수 없게 된 그는 그냥 분풀이라도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청와대에 장문의 투고를 했다. 그 글은 “그냥 말이라도 해 보고 싶었습니다”라는 문장으로 끝을 맺는다. 사용자는 그 조합원이 ‘일을 못해’ 실수를 하자, 해고 협박과 함께 청와대에 글을 올린 것에 대한 사과문을 요구했다.

그는 사과문을 잘 쓸 자신이 없다며 내게 사과문을 써 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이 사과문이 너무 쓰기 싫었다. 그는 사과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쓰는 것보다는 내가 쓰는 것이 그의 자존감을 그나마 지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나는 그 사과문을 써주겠다고 약속했다. 내가 완성해서 내민 사과문은 그가 화가 났던 이유를 정확하게 명시하고 있었다. 내 사과문을 받아본 그는 고맙다는 표정으로, 그러나 멋쩍은 얼굴을 하고 “회장이 싫어할 것 같은데”라고 말했다.

결국 그 사과문은 ‘빠꾸’를 먹었다. 나는 사과문을 다시 고쳤지만 그래도 빠꾸를 먹었다.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에 대한 모든 문장이 날아가고 ‘깊이 반성하고 있다’는 문구를 끼워넣은 상태로 겨우 통과가 되었다. 내용이 사과인데 제목을 사과문이라고 붙여야 할 이유가 뭐가 있느냐고 아득바득 우겨보았지만, 결국에는 휴먼명조체 32포인트로 ‘사과문’이라는 제목까지 붙였다.

그 사과문을 모든 조합원이 볼 수 있는 사내 게시판에 붙이고 나서 그는 휴게실에 들어가질 못하고 노동조합 사무실에 오래 머물렀다. 나는 그에게 여기 계속 있어도 괜찮다고 말했다. 그는 또 멋쩍은 표정으로 웃었고, 나는 그 웃는 얼굴 때문에 슬퍼졌다.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 수는 없어.”

언제 처음 이 말을 들었는지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엄마에게서였던 것도 같고, 선생님에게서였던 것도 같다. 아무튼 내가 아주 어릴 적부터 어른들은 나에게 그렇게 말해왔다.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 수는 없다고. 어린 시절에는 어차피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도 아닌데, 기를 쓰고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살겠다고 결심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만만한 곳이 아니었고, 엄마와 선생님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나는 천천히 오랫동안, 그러나 확실히 그걸 깨달아갔다. 혀에서 피어스를 빼고, 망사스타킹을 버리고, 토익시험을 보고, 직장에 이력서를 냈다.

이것은 분명 어른들이 말하는 어른이 되는 과정이었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이 안에서 더 아이가 된 것만 같았다. 분명 그도 나도 이 사과문이 옳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시키는 대로 사과문을 써 냈다. 우리의 생각 따위는 아무 의미도 없는 것처럼. 그때 어른들이 내게 말했던 게 이런 의미였는지 나이를 서른 가까이 먹고서도 모르겠다. 다만 세상은 복잡다단하며 그 안에서는 절대적으로 어떤 말이 우위를 점하기 어렵다는 것은 어렴풋이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래, 나는 일을 못한다

인터넷에서 농담으로 흔히 ‘덕업일치’라는 말을 한다. 오타쿠(お宅)를 장난스럽게 부르는 말인 오덕에서 ‘덕’자를 따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부르는 말이다. 노동조합에 오면 노동자들을 위해 일하며 정치 오타쿠로서 덕업일치를 할 수 있을 거라는 순진한 생각. 비단 덕업일치까지 나아가지 않더라도 대체 얼마나 하기 싫은 일들을 참아야만 하는 걸까. 나는 사내 게시판이 있는 휴게실에 들어가지 않고 곧장 사무실을 나서 집으로 돌아왔다. 일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까 하는 생각을 오늘 아침까지 계속했다. 그래도 아침은 돌아오고 출근시간이 되었다. 출근길 버스에서 평소처럼 이어폰을 꼈는데, 타카피의 ‘MBC 청룡’이 흘러나왔다. ‘우승 한 번 못해보고 사라진 청룡, 우리 청룡을 찾아주세요, 청룡은 어디로, 우린 어디로 가고 있을까’. 버스 앞자리에 묵묵히 앉아서 나는 자꾸 울었다. 싫어요, 선생님. 전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래요.

<이서영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