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미의 공감 스토리텔링]황현산·정산, 한국에서 유일한 ‘평론가 형제’

형 황현산은 후배 문인들의 존경과 일반인 독자들의 사랑을 그야말로 ‘듬뿍’ 받고 있는 지금 우리 문단을 대표하는 평론가다. 아우 황정산의 글은 단순하고 명확하다. 독자가 이해할 수 없는 문장들을 나열해서 지적 우월을 과시하지 않는다. 그의 말과 글은 주인을 닮아 친절하고 따뜻하다.

평론가 황현산. 그의 산문집 <밤이 선생이다>는 현재 4만부가 나갔다. 요즘 평론가의 산문집 4만부는 아이돌 그룹의 앨범 400만장과 맞먹는다고 말해도 되지 않을까. 그는 2013년, 한 남성잡지에서 뽑은 ‘MEN OF THE YEAR’에 여진구, 엑소, 추신수, 조용필 등과 함께 선정되어 화보 촬영을 하기도 했다.

2014년 가을, 한 신문에 <잃어버린 장갑>이라는 동화가 연재되기 시작했다. 작가는 황현산이었다. 낯설기보다 참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어 반가웠다. 이야기가 무르익어 갈 때쯤, 연재는 중단되었고 그의 트위터에 일상의 변화가 느껴지는 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3월 9일-개인사정으로 잠시 트윗을 중단합니다. 두세 주 후에 돌아올 수 있을 것입니다.

4월 15일-지루하고 고통스러운 일이 일단 끝났습니다. 그동안 저를 염려하며 기다려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사랑이 물이라면 강물이 되어 굽이치고 싶습니다.

그의 아우 평론가 황정산 선생을 통해서 현산 선생이 담도암 수술을 받고 요양 중이라는 것을 알았다. 함께 정릉 현산 선생 댁을 찾았다. 많이 야윈 모습이었지만, 갑자기 찾아든 밤의 시간을 책과 함께 고요히 보내고 계셨다. 모습도 삶도 무척 닮은 형제의 대화를 들으며, 한국에서 유일한 ‘평론가 형제’ 이야기를 쓰고 싶어졌다.

황현산(왼쪽), 정산 형제. | 박상미

형 이야기
신문사나 문학 계간지의 등단제도를 통해서 데뷔하거나, 이른 나이에 천재성을 뽐내며 문단의 주목을 받은 사람이 아니다. 예상보다 늦은 나이, 45세에 평론가로 불리기 시작했다. 문예진흥원이 펴내는 잡지 ‘문화예술’에 번역론을 써서 발표했는데, 문학인들 사이에서는 꼭 읽어보아야 할 글로 소문나기 시작했다. 그는 후에 <얼굴 없는 희망>이라는 책으로 출간되어 세간에 알려진, 초현실주의 시인 아폴리네르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도교수는 불문학자 강성욱 교수였다. 그 후 지금까지 실로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글 청탁이 줄을 잇는, 그리고 후배 문인들의 존경과 일반인 독자들의 사랑을 그야말로 ‘듬뿍’ 받고 있는 지금 우리 문단을 대표하는 평론가다.

<밤이 선생이다>는 한국 문인들, 문인이 아니어도 한국 사회에서 지식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 대부분에게 읽힌 책이다. 선생의 문체는 쉽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중독성이 강하다. 선생의 책을 한 권 정독한 독자라면, 저자의 이름을 가리더라도 한 페이지만 읽으면 ‘황현산의 문체’를 알아볼 수 있다. 이 글을 쓰는 나도, 읽는 당신도 다 옳거나 다 틀린 것은 아니지 않겠는가, 하고 독자가 생각하여 자기 것으로 받아 안을 기회를 준다. ‘아닐지 모른다’,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일 것도 같다’, ‘반드시 ~만은 아니다’로 끝나는 종결어법이 그 예다. 훈계하고 가르치려 드는 학자와 지식인들이 너무 많아서 피곤한 시대에, 지적이면서도 다정한 언어로 다층적 사고를 하도록 우리를 유도한다. 이것이 바로 평론가 황현산의 글을 곱씹고 싶은 이유가 아닐까 한다.

그의 문장을 빌려 표현하자면, ‘진실을 꿰뚫으면서도 해석의 여지와 반성의 겨를을 누리는 새로운 문체’를 구사하는 사람이 바로 황현산이다.

아우 이야기
평론가 황정산. 1994년 <창작과 비평> 봄호에 ‘시와 현실주의’를 발표하며 평론을 시작했다. 2002년부터는 시도 쓰고 있다. 그의 시 ‘사라지다’는 독일 교포 독문학자가 번역하여 독일에 소개되기도 했다. 형과 마찬가지로 신문사나 문학 계간지의 등단제도를 통해서 데뷔하지 않았다. 현산 선생과 문태중학교, 문태고등학교, 고려대학교 불문학과 동문이기도 하다. 대학 4학년 때 현산 선생이 프랑스 유학을 권유했지만, 국문과 대학원에 가기로 결심했다. 광주민주화항쟁이 일어났던 시기, 민주·민족운동이 꽃을 피우던 시기였기에 민족문학을 공부해서 우리 민족의 민주화에 기여해야겠다는 ‘약간은 유치한’(본인의 표현) 생각을 했고, 그 당시 국문학계의 떠오르는 신성이기도 한 김흥규, 김인환 선생님 밑에서 공부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형 덕을 보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한국 현대시의 운율론적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대시의 운율에 대한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평론가 황정산의 글은 단순하고 명확하다. 독자가 이해할 수 없는 문장들을 나열해서 지적 우월을 과시하지 않는다. 그의 말과 글은 주인을 닮아 친절하고 따뜻하다.

부모님은 2남 2녀를 목포에서 낳아 길렀다. 장사를 해서 나름 큰돈을 벌었는데 6·25전쟁 통에 고향인 비금으로 피난 가서 살다가, 장남이 중학교에 입학할 무렵 다시 목포로 나오셨다. 막내 정산 선생은 갓난아기 때였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그리 많지 않다. 무학인 아버지는 평생 힘든 노동만 하고 사셨다. 1979년, 65세의 나이에 돌아가신 아버지. 형제는 지금도 아버지만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아버지의 삶은 돌아보면 이 땅의 기층민중의 삶 그 자체였다. 일제시대에는 공장노동자였고 그 후 농민, 부두노동자, 건설노동자… 마지막에는 양계장을 하시다 망했다. 자본이 농촌을 착취해서 농업이 몰락하고, 농민들이 일용직 노동자가 되어 가는 과정을 아버지의 삶을 통해 보았다. 이런 아버지의 삶은 형제의 삶과 생각에 영향을 미쳤다. 부와 권력을 추구하며 가진 자와 권력자의 편에 서기보다는, 항상 가난하고 소외받는 사람들을 먼저 생각하고 그들 편에서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그것이 아버지에 대한 효도라고 그들은 믿었기 때문이다.

어머니 역시 교육을 받지 못한 분이었지만 현명하고 지적이며 감성이 풍부했다. 동네 아주머니들은 집안 문제나 동네 문제를 어머니와 상의했고, 가난했음에도 불구하고 동네에서 항상 어른으로 대접받았던 분이셨다.

한국에서 형제 평론가는 두 분이 유일한 걸로 알아요. 성장 환경이 영향을 끼쳤을 것 같은데요. 문학을 공부하게 된 계기도 궁금합니다.

현산 “제가 초등학교에 다닐 땐 학생을 위해 비치된 책이 없었어요. 교무실에 학생들을 위한 백과사전이 있어서 그걸 읽으면서 상식을 많이 익혔죠. 그리고 국문학 논문집이 한 권 있었는데, 한자가 너무 많아서 어린아이는 읽을 수 없는 책이었지만, 중간중간에 인용한 소설을 골라 읽었습니다. 저는 다른 애들이랑 잘 어울리지 못했어요. 무엇이든 읽고 싶어서, 동네에 돌아다니는 성인 잡지까지 다 읽었어요.(웃음) 4~5학년 때에는 동네 사람들 모인 자리에서 옛 소설을 읽었습니다. 예전에 시골에 가면 사람들이 농한기에 사랑방에 모여 새끼를 꼬며 고전소설을 읽어요. 어느 날 저보고 읽어보라고 해서 또박또박 교과서 읽듯이 읽으니까 어른들이 아주 좋아했어요. 그날부터 저녁마다 불려나갔죠. 춘향전엔 야한 얘기가 많이 나왔는데, ‘그건 너 읽으면 안 된다’ 했다가 ‘너는 뭔 얘긴지 모를 것이니 그냥 읽어라’ 그랬어요. 그런데 그땐 이미 뭔 얘긴지 다 아는 나이였어요.(웃음) 고전소설, 군담소설들을 읽으면서 깊은 인상을 받았는데, 제 문학 생애에 깊은 영향을 끼쳤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정산 “형과 저는 외모도 성격도 어머니를 많이 닮은 것 같아요. 어머니는 책읽기를 좋아하시고 예술적 감수성이 풍부하셨어요.”

현산 “고등학교 때는 도서실에 책이 5000~ 6000권이 있었어요. 학교 공부는 거의 때려치우고 책만 읽었죠. 우연히 랭보 시집을 읽었는데,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어떤 특별한 세계, 마술의 주문과 같은 말이 있다는 사실을 그때 알았죠. 불문학을 전공하는 데 영향을 끼친 것 같아요.”

정산 “서울로 유학 간 형이 방학 때 집에 오면 여러 가지 얘기들을 많이 해주었어요. 자신이 생각하는 문학에 대한 것, 세상에 대한 것을 알아듣지도 못하는 초등학생인 저에게 얘기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형이 가져온 프랑스 소설들이 제게 영향을 미쳤어요. 알퐁스 도데의 낭만적인 이야기들이 어린 저의 가슴을 요동치게 만들곤 했죠. 그리고 언젠가 형이 <어린왕자>를 이야기로 들려주었어요. 마지막에 어린왕자가 뱀에 물려 죽는 것으로 고향에 돌아가는 부분에서는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해요.”

형이 동생의 문학적 감수성에 자극을 주셨네요. 형제가 걸은 길이 이렇게 일치하기도 힘든데요, 자랑스러움과 동시에 불편함도 있을 것 같습니다.

현산 “문단에서도 늘 황현산 동생이라 불리니까 동생의 스트레스가 많았을 거라 생각합니다. 같은 재능을 타고났는데, 내가 12년 먼저 써버린 것 같은 미안함이 있어요.”

정산 “제 이름 앞엔 황현산 동생이라는 수식어가 늘 붙어요. 참 불편하고 자존심도 상하지요. 좋은 건 별로 없어요. 갑자기 필요한 책이 있을 때 형에게서 빌릴 수 있다는 것 빼고는요. 그래서 가끔은 황정산의 형이 황현산이지 하고 농담도 하지요.(웃음) 또 문학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형 이야기를 먼저 꺼내죠. 항상 형과 비교해서 나를 평가한다는 것이 부당하게 느껴지지요. 사람들은 더러 훌륭한 형을 두어 내가 형으로부터 문학활동에 큰 도움을 받았으리라 말들을 해요. 하지만 도움받은 것은 하나도 없어요. 어렸을 때부터 형과 함께 살아본 적이 없어 ‘우리 형아에게 이를 거야’ 이런 말로 친구들에게 가오를 잡아본 적도 없어요. 언젠가 내가 쓴 글에 대해 형이 한 말은 ‘그런대로 괜찮더라’는 아주 어정쩡한 평가가 전부예요.”

/박상미

뛰어난 형과 같은 길을 걷는 동생이 감당해야 하는 희생이 있군요. 형은 왜 어정쩡한 칭찬만 하셨나요.(웃음)

정산 “제가 때로 이런 점을 지적하면 형은 ‘내 존재 자체가 너에게 힘이지’ 하는 말도 안 되는 너스레를 떠세요.(웃음) 그런데 형이 아프고 나니 그 말이 전혀 거짓말은 아닌 것 같아요. 조만간 회복하셔서 그런 말도 안 되는 힘을 다시 보여주실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아요.”

현산 “믿고 자유를 준 것이지요. 스스로 성장하도록 지켜보았어요. 저는 제자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식들에게도 똑같이 했어요.”

정산 “믿고 자유를 주니 인성도 더 좋아진 것 같아요. 저와 조카들을 보면.(웃음) 사실 저는 형의 혜택을 많이 받았어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형과 형수 덕에 공부했습니다. 더 이상 바라면 나쁜 사람입니다.”

현산 “동생은 외모도 저보다 뛰어납니다.”(웃음)

정산 “그게 제겐 큰 위안이지요.”(웃음)

두 분이 쓰신 평론을 읽으면, 작가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는 공통점을 느껴요. 그래서 따뜻하고 아름다운 평론이라는 생각이 들지요. 두 분의 문학세계와 문장은 어떻게 다를까요.

정산 “형이 프랑스 상징주의자와 초현실주의를 전공해서 문학세계나 문장이 상당히 모던하다고 할 수 있어요. 그래서인지 문학적인 글에서 형의 문장은 좀 난해한 편이에요. 원래 저는 단순 명쾌하고 논리적 정합성을 가진 글을 좋아해서 형의 문장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언제인가 형의 글을 아주 꼼꼼히 읽고 공부한 적이 있었어요. 상당히 다층적인 문장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 문장이 여러 생각을 함축하고 있었고, 하나의 주장 속에 또 다른 주장을 생각하게 만들었어요. 그리고 비로소 좋은 문장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어쩌면 문학적인 글의 정수는 저런 문장에 있겠구나. 세상을 단순 명확하게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추상화 속에서 남아 있는 잉여들을 다시 구체적 세계로 불러내는 것이 문학이라면 바로 형의 문장들이 그것을 실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현산 “저도 동생의 글을 다 읽어봅니다. 저는 동생의 문장이 참 좋아요. 추구하는 길이 다를 뿐이죠.”

<밤이 선생이다>를 독자들이 좋아하는 이유가 뭘까요.
현산 “글이 짤막짤막해서 읽기 좋은 게 아닐까요. 제 문체 속에 내가 생각하는 과정,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하는 과정이 다 담겨 있기 때문에 좋아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정산 “새로운 생각, 대단한 사유보다 품위 있게 말하는 방식이 좋았어요. 진보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을 상당히 공격적이고 자극적으로 쓰는 경향이 많은데, 그것도 나름 의미는 있지만, 형이 쓴 글은 감성을 자극하면서도 편안하게 해주죠. 분명한 정치적 입장을 말할 때도 거부감을 주지 않는 품위 있는 방식으로 말하는 문체를 지적인 대중들이 좋아하는 거 같아요.”

동생은 시, 형은 동화를 쓰기 시작하셨어요. 시와 동화, 비슷하면서도 다른 장르인데요.

정산 “사실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시를 썼어요. 그런데 대학에 와서 진보적 문학 공부와 학술 운동을 하면서 문학적 감수성을 잃어버렸어요. 그런데 평론가로 활동을 시작한 후에도 어떤 갈증 같은 게 항상 있었죠. 뭔가 정작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못하고 살고 있는 것 같은…. 그래서 다시 시를 쓰게 되었어요.”

현산 “저도 오래전에 시를 썼었지요. 그런데 학자가 쓰는 시는 좋기가 참 어려워요. 시는 속에 있는 타자가 나와서 말을 해야 하는데, 학자들은 초자아가 강해서 타자가 나와서 시를 쓰기 어려워요. 잘 쓰다가도 교수라는 타이틀이 붙으면 쓰기 힘들어집니다.”

정산 “시인은 미치다 만 사람들이 하는 거죠. 그래야 내면의 욕망이 나옵니다. 그런데 학자들은 객관적 검증을 하려 드니까 좋은 시를 쓰기 어렵지요.”

두 분 다 언어의 갈증을 해소할 또 다른 장르를 찾으신 거군요. 동화 <잃어버린 장갑>은 어린 시절을 비금도에서 보낸 소년의 이야기지요? 비금도라는 이름 자체가 환상적이에요.

현산 “꿈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했어요. 잃어버린 장갑을 꿈속에서 계속 보는 얘기입니다. 환상 세계와 현실 세계를 교차로 분리시켜 놓았어요. 한 회는 현실, 한 회는 꿈 이야기인데, 현실 이야기는 에피소드이고, 꿈속 이야기가 일관성 있게 서술됩니다. 비금도에서 보낸 어린 시절 이야기인데, 막내인 정산과 공유되는 추억이 없는 게 아쉬워요. 환상 세계와 현실 세계가 붙어 있다가 나중에 갈라지는 게 보통의 서사구조죠. 그런데 이 동화에서는 갈라져 있다가 혼합되는 방식으로 끝을 맺을 겁니다. 처음이자 마지막 동화가 될 거예요. 나는 남은 삶을 번역에 매진해야 합니다. 시간이 부족해요.”

두 분은 작가들의 서평을 많이 쓰십니다. 글 쓰는 젊은이들이 두 분께 듣고 싶은 얘기가 많습니다. 어떤 마음자세로 창작을 해야 할까요.

정산 “많은 이들이 소통되는 시를 써야 한다, 안 읽히는 건 시인의 탓이라고 하는데, 시가 원래 일상어로 소통할 수 없는 새로운 언어를 쓰는 것이죠. 소통이 안 될 수밖에 없는 것이죠. 권력자의 언어는 소통되는 거 같지만 일방적 소통을 강요하는 거 잖아요. 소통을 거부하는 게 시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쉬운 시를 써서 독자를 배려하라는 건 시를 죽이는 것입니다.”

현산 “독자들을 생각해서 쉽게 쓰라고 할 수는 없어요. 그러면 결국 낡은 시로 되돌아갈 수도 있어요. 젊은 시인들의 시를 잘 읽어보면 재미있어요. 그 언어가 아니면 표현되지 않는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글 쓰는 사람 전반이 자기가 뭘 쓰고 있는지에 대한 자각이 좀 있어야 합니다. 늙은 비평가나 시인들 가운데는 요즘 젊은 시인들의 시가 옛날의 시, 다시 말해서 자기들이 젊었을 때 감동적으로 읽었던 시와 다르다고 마구 화를 내는 사람들이 있어요. 우리는 도스를 썼는데 왜 너희들은 윈도를 쓰느냐고 화를 내는 사람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정산 “문제는 흉내내는 언어들이 난무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나이 든 사람은 나이 든 감성이 있죠. 그런데 젊은이들 언어를 흉내내서 쓰는 건 문제죠. 자기만의 언어가 있어야 해요. 누가 뜨면 그의 언어를 흉내내느라 진정성을 찾지 못하는 게 문제입니다.”

현산 “열심히 써야 합니다. 더 중요한 건 왜 쓰는지 자각해야 합니다. 자각이 없으면 남 흉내만 내게 됩니다. 내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자신에게 끊임없이 물어야 합니다.”

현산 선생님, 올해 칠순이신데요, 선생님의 글을 읽으면 제 자신을 반성하게 될 만큼 사유가 젊으십니다. 선생님처럼 현명한 어른으로 나이 먹고 싶은 게 제 소원인데요, 어떤 생각을 하고 실천하며 살아야 할까요.
“얼마 전, 광화문에서 택시를 탔는데 기사가 나보다 나이 많았어요. 어버이연합 집회 현장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기사분이 말씀하시기를, 나이가 들면 몸도 머리도 젊었을 때만 못한데 고집이 세어져서 문제라고…. 몸과 정신이 쇠하면 그걸 자각해야 합니다. 늘 책을 읽고 다른 사람 말을 듣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결국은 삶의 태도가 민주적이어야 합니다. 나이라는 권력으로 쇠한 것을 메우려고 하면 안 됩니다. 나이가 들수록 듣는 연습을 해야 하고, 토론을 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그게 바로 노망든 것이겠지요. 세월호 이야기가 지겹다고 말한 사람이 60대 이상에서 65%였다고 합니다. 늙으면 모든 것이 지겨워지는 법이지요. 이어서 치매가 오고 저 자신이 지겨운 인간이 되게 마련입니다. 사실 60대 이상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불행했던 사람들입니다. 어린 날을 전후의 굶주림 속에서, 젊은 날을 군사독재의 억압 속에서 보냈지요. 사는 것이 상처였어요. 노인층의 보수화는 이 상처에 대한 자기치유법인지도 모릅니다. ‘사는 게 다 그렇지’라는… 좀 다르게 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배우기를 그치지 말고 참신하게 생각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형제는 오랜 시간 삶과 문학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 것도, 나란히 앉아 사진을 찍는 것도 처음이라고 했다. 형과 아우는 삶과 모습, 생각과 목소리마저 닮았다. 렌즈를 통해서 웃고 있는 형제의 모습을 본다. 형은 아우에게 미안한 눈빛을, 아우는 형에게 고마운 눈빛을 서로에게 건네고 있었다.

박상미의 공감 스토리텔링

<다다음 호에 황현산 선생 인터뷰 <다르게 사는 법>이 이어집니다>

<박상미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