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에서]김성근 리더십의 비밀

김성근 감독이 작년 말 한화 지휘봉을 잡았을 때 두 가지 걱정거리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김 감독의 나이였습니다. 김 감독은 올해 73살입니다. 아무리 인생은 70부터라고 해도 극심한 승부세계의 스트레스를 노장이 이겨낼 수 있을지 불안했습니다. 전임 김응용 감독이 그랬던 것처럼 약해지지 않을까…. 또 하나는 한화라는 팀 자체였습니다.

한화는 최근 6년간 5번 꼴찌를 도맡아 한 팀입니다. 성적도 성적이지만 내용은 더 형편없었습니다. 한화 팬은 부처의 경지에 오르지 않으면 암 걸린다고 할 정도로 경기 내용이 수준 이하였습니다. ‘야신’으로 불리는 천하의 김성근도 한화는 살리기 힘들지 않을까….

시즌 초반이긴 하지만 기우였습니다. 한화는 더 이상 만년 꼴찌였던 그 한화가 아니었습니다. 4월 승률이 5할을 넘었고, 상위권 경쟁에 가세하고 있습니다. 경기 내용도 알차졌습니다. 팬들은 “나무아미타불”을 외며 솟구치는 화를 가라앉히지 않습니다. 열정과 감격에 겨워 “나는 행복합니다”를 외칩니다. 수년간 한화에 절망했던 사람들은 알 것입니다. 김 감독이 얼마나 기적 같은 일을 해내고 있는지를.

제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도저히 바꿀 수 없을 것만 같았던 팀을 변화시킨 김 감독 리더십의 비밀입니다. 첫 번째는 매경기를 한국시리즈 7차전처럼 올인하는 것입니다. 프로야구 시즌은 깁니다. 올해는 10구단 KT의 가세로 팀당 144경기를 치릅니다. 잡아야 할 경기는 꼭 잡되 버릴 경기는 버려야 한다는 게 야구판의 상식입니다. 김 감독은 이 상식을 깨뜨립니다. 약간의 가능성만 보여도 총력전을 펼칩니다. 오늘 경기는 힘들지 않을까 생각할 때 필승조를 올립니다. 선수들을 벼랑 끝으로 밀어붙입니다. 답을 찾으라고, 찾지 못하면 떨어진다고. 오직 오늘 이 순간, 볼 하나에 승리를 위해 모든 걸 쏟아붓습니다. 마치 내일이 없는 것처럼. 김 감독의 좌우명 ‘일구이무(一球二無)’(공 하나에 다음은 없다) 그대로입니다. 공 하나에 자신의 전 존재를 거는 장인의 혼이 느껴집니다.

두 번째는 선수를 쓸 줄 안다는 것입니다. 10을 가진 선수는 많지 않습니다. 5밖에 안 되는 선수도 많습니다. 김 감독은 5밖에 안 된다고 버리지 않습니다. 없는 5를 한탄하지 않고, 갖고 있는 5를 어떻게 극대화하고, 살리고, 필요한 순간에 활용할지를 고민합니다. 김 감독은 말합니다. “리더는 사람을 버리지 않는다”고. 외야수 송주호가 대표적입니다. 송주호는 지난 4월 28일 현재 20타수 1안타로 타율이 5푼에 불과합니다. 공격만 보면 쓸모가 없습니다. 하지만 송주호는 22경기 중 21경기에 나섰습니다. 안 되는 공격이 아니라 수비에서 쓸모를 찾습니다. 송주호는 4월 26일 SK전에서 잇단 호수비로 승리의 주역이 됩니다. 능력이 5밖에 안 되지만 그 5만이라도 최대한 발휘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김성근 용병술입니다. 세 번째는 동기부여입니다. 김 감독은 선수들이 하나의 팀으로,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붓게 하는 데 남다른 노하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역전승이 많아지고, 끝내기 승부도 세 번이나 기록한 것에서도 선수들의 집중력을 엿볼 수 있습니다.

시즌은 길고, 한화가 위기를 맞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한화에 뿌리깊게 박혀 있던 패배의식을 떨쳐낸 것 자체만으로도 김 감독의 리더십은 찬사를 보낼 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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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놀라운 것은 김 감독이 한계를 너무도 쉽게 넘어버린다는 사실입니다. 조직이나 개인이나 한계가 있게 마련입니다. 한계에 도전하는 건 쉽지 않습니다. 넘기 힘든 벽을 넘으려고 하기보다는 변명이나 핑곗거리로 삼는 게 인지상정입니다. 김 감독은 ‘도저히 안 돼’라고 하는 사람들의 통념을 깨뜨립니다. 한계도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넘어설 수 있다며 행동으로, 성적으로 보여줍니다. 리더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한화의 대변신이 유쾌합니다.

<류형열 편집장 rh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