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TV]사극, 광해군에 끌리다

최근 TV 드라마 속 사극의 주인공은 모조리 ‘광해군’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2010년 이후 드라마든 영화든 이렇게 다양한 사극이 한 군주를 집요하게 다룬 적은 일찍이 없었습니다.

현재 사극에서 광해군이 등장하는 작품은 둘입니다. 공교롭게도 두 작품이 지상파 사극의 전부입니다. MBC 월화극 <화정>(극본 김이영, 연출 김상호 외)에서는 배우 차승원이 광해를 연기합니다. 선조의 둘째 아들이지만 후궁의 아들이라는 입지 때문에 왕이 된 이후에도 끊임없이 불안감에 시달리는 군주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드라마 화정 차승원. | MBC, 드라마 왕의 얼굴 서인국. | KBS

<화정> 속 광해는 온화하고 따뜻하기도 하지만 생존을 위해 결국 형제마저도 비정하게 제거하는 냉혹함이 배어납니다.

또 한 작품은 KBS1 대하사극 <징비록>(극본 정형수 외, 연출 김상휘 외)입니다. 이 드라마는 이순신 장군에 가려져 있던 <징비록>의 저자 류성룡을 다루는 작품입니다. 여기서는 선조(김태우)의 아들로 배우 노영학이 광해로 출연하고 있습니다. 광해의 유년시절이 그려지고 있는데 그는 선친의 실정을 보고 전장을 누비면서 진짜 군주가 되는 과정을 겪는 인물로 나옵니다.

드라마 징비록 노영학. | KBS

조금만 더 시선을 근래로 넓히면 광해가 등장하는 작품은 더욱 많아집니다. <징비록>과 비슷한 시기 그리고 왕으로 올라가는 그 이후의 과정을 지난 2월에 종방한 KBS2 <왕의 얼굴>에서 다뤘습니다. 여기서는 배우 서인국이 광해를 연기했습니다.

2012년에는 광해를 다룬 두 작품이 있었습니다. 가짜 광해로 배우 이병헌이 분했던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가 있었으며, 같은 해 MBC <불의 여신 정이>에서 사기장 유정과 신분을 초월한 사랑에 빠지는 광해를 배우 이상엽이 연기했습니다.

극적인 재미를 줘야 하는 드라마는 평탄한 인생을 산 사람보다는 우여곡절이 많은 사람의 이야기에 매력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이 사람의 성장배경이 온갖 암투의 중심에 있는 궁의 내부라면 그 긴장감은 더욱 높아집니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이병헌. | CJ엔터테인먼트

광해는 여기다 몇 가지 요소를 첨가할 수 있습니다. 임해군과 영창대군 등 자신의 배다른 형제들을 자신의 왕권 강화를 위해 비정하게 제거했으며, 유년시절 조선에서 손꼽히는 고난의 시기인 임진왜란을 겪었습니다. 그리고 왕에 있을 당시 상궁 김개시와 정치적 동반자 이상의 감정을 나눴다는 점도 많은 드라마 작가의 구미를 당기게 합니다. 이처럼 다채로운 면을 한몸에 지닌 광해의 존재는 사극에서 안 다루기가 힘들 정도의 매력을 갖습니다.

또한 그가 명나라와의 관계에 있어서 실리외교 노선을 취했다는 것도 시사하는 점이 큽니다. 광해는 신하들 모두가 맹목적으로 따르던 명의 쇠락을 예감하고 여진족의 국가 후금과도 손을 잡는 등 실리를 추구했습니다. 그의 정치력도 극화하기에 따라 해석의 여지가 많았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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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법 등 빼어난 법제를 만들어 성군이라는 평가도 있지만, ‘인조반정’으로 폐위된 비운의 군주로 알려진 그에게 대중이 매력을 느끼는 것은 그만큼 지금의 카리스마나 결단력 등 리더십에 기대하는 부분이 많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 인기의 원인은 광해처럼 고난을 헤쳐가는 데 실패하는 우리 현실정치에 대한 실망감 때문이기도 할 겁니다.

<하경헌 경향신문 엔터·비즈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