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에서]닭들이 사냥하고 용꿈 꾸는 나라

김형, 이완구 총리가 결국 총리직을 내려놓았습니다. 사필귀정이 아닌가 합니다. “수사를 받겠다고 했으면 당연히 총리직에서 물러나야 하는 것 아니냐”며 핏대를 올리던 김형이 생각납니다. 김형 말대로 성완종 리스트 의혹이 불거졌을 때 깨끗이 사퇴했으면 동정이라도 샀을 텐데, 괜히 버티다 더 망신창이가 된 듯합니다.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이 총리의 어리석음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김형, 이 총리의 낙마를 지켜보면서 새삼스럽게 안목이라는 단어를 떠올립니다. 사전에 보면 ‘사물을 보고 분별하는 견식’이라고 나와 있더군요. 그냥 좋고 나쁜 것을 판단하여 골라낼 줄 아는 능력이라고 정의하는 것이 더 쉽지 않을까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 안목이 없는 것 같습니다. 안목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어찌 그리 사람 보는 눈이 없는지 절망스럽습니다.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만 해도 그랬지요. 기자들 사이에서도 내놓은 인물이었던 윤창중을 박 대통령은 청와대 대변인으로 임명합니다. 얼마나 반대가 많았습니까. 청와대 대변인을 맡을 그런 깜냥이 아니라고. 그래도 박 대통령은 윤창중 임명을 강행했지요. 그 결과가 어땠습니까. 윤창중 대변인은 대통령의 방미 수행 중 인턴 성추행이라는 전대미문의 사고를 치고 경질됩니다. 국가적으로 이런 망신도 없었습니다.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장관감이 아니라고 했는데도 밀어붙이더니 결국 10개월 만에 스스로 목을 치고 말았지요. 이완구 총리도 임명 전에 그렇게 “구리다”고 했는데 귀를 막고 눈을 감더니 결국 요모양 요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김형, ‘군주의 이로움은 능력 있는 자를 얻어 벼슬 자리에 등용하는 데 있고, 신하의 이로움은 무능하면서도 임무를 얻어내는 데에 있다’고 한 한비자의 말이 떠오릅니다. 윤창중이나 윤진숙, 이완구를 요직에 기용한 것은 모두 신하만 이롭게 해주고 군주의 이로움은 살리지 못한 꼴이니 어찌 나라가 편안할 리가 있겠습니까. 조선 중기 이지함은 적재적소에 사람을 써야 한다며 왕에게 상소를 올립니다. 그가 비유로 든 게 해동청과 한혈구입니다. 해동청은 용맹하고 사냥도 잘해 중국의 황제들까지 갖고 싶어하는 매입니다. 한혈구는 하루에 천 리를 달린다는 천하의 명마입니다. 해동청을 새벽을 알리는 데 쓰고, 한혈구로 쥐를 잡게 합니다. 대신 닭에게 사냥을 시키고 고양이에게 수레를 끌게 하면 제대로 사냥하고 달릴 수 있겠습니까. 한 가문에서 닭이 사냥을 하겠다고 설치면 가문이 흔들립니다. 기업이라면 기업이 흔들리고, 국가라면 국가가 엉망이 되는 게 세상의 이치입니다. 김형, 이 나라에 어찌 해동청과 한혈구가 없겠습니까. 다만 쓰는 사람이 알아보지 못하니 어디선가 쥐만 잡고 있는 것이겠지요.

김형도 알다시피 제왕학의 기본은 용인술입니다. 용인술의 기본은 인재를 알아보는 안목입니다. 하룻밤에 천 리를 달리는 적토마도 그것을 알아보는 백락이 없다면 무용지물일 것입니다. 용이 누워 있어도 유비가 알아보지 못했다면 제갈공명도 없었을 것입니다. 대통령의 안목이 없으니 닭들이 사냥을 하겠다고 설치고, 고양이가 천 리를 달리겠다고 용꿈을 꿉니다. 뜻 있는 사람이라면 어찌 개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김형도 춘추시대 제환공의 최후를 알고 있을 것입니다. 제환공을 춘추의 첫 패자로 만든 명재상 관중이 환공에게 죽기 전 마지막 유언을 남깁니다. 역아와 개방, 수도 세 간신을 멀리하라고. 환공은 관중의 유언을 따르지 않고 세 간신을 중용합니다. 그 대가는 컸습니다. 제환공은 이들의 농간으로 굶어죽습니다. 시신이 67일간이나 방치되면서 시신에 구더기가 우글거렸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것이죠. 사람을 잘 쓰고 못 쓰고가 어떤 결과를 낳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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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 다음 인사 때는 대통령의 사람 보는 안목이 뛰어나다는 칭찬을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정말 믿음은 안 가지만 어쩌겠습니까. 기우제를 지내는 심정으로 기대라도 할 수밖에요. 그래야 국민이 편안해질 테니까요.

<류형열 편집장 rh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