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가항공 10년, 국내시장 안착

제주항공, 진에어, 에어부산, 이스타항공, 티웨이항공 등 5개사 여객 수송분담률 절반 넘어

자영업자 김모씨(34)는 이달 중순 부모님을 모시고 말레이시아 휴양지 코타키나발루에 다녀왔다. 김씨가 예정에 없던 휴가를 갑자기 다녀온 건 지난 1일 저가항공사 진에어가 만우절을 맞아 항공권을 최대 73% 할인하는 ‘깜짝 이벤트’를 열었기 때문이다. 김씨는 1인당 26만원대의 가격에 코타키나발루 왕복 항공권을 구입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등 대형항공사와 비교하면 거의 절반 수준이다.

김씨는 해외 호텔 예약사이트에서 방을 예약하고 일정도 직접 짰다. 현지에서 사용한 돈을 합쳐 김씨 부부와 부모님까지 네 사람의 여행경비는 총 200만원이 조금 넘게 들었다. 한 사람당 50만원 정도 쓴 셈이다. 이는 같은 3박5일 일정의 일반 여행사 상품과 비교하면 비슷하거나 오히려 10만원 이상 저렴한 것이다. 김씨는 “저가항공사는 프로모션 등을 잘 활용하기만 하면 시가보다 절반 이상 싼 가격에 비행기 티켓을 사는 것도 어렵지 않다”며 “일정이 급하게 잡히는 출장은 어쩔 수 없지만 개인적으로 여행을 갈 때는 항상 저가항공사를 이용한다”고 말했다.

제주항공의 신입승무원들이 서비스 교육을 받고 있다. | 제주항공 제공

대형항공사에 비해 20~30% 저렴
저가항공업계는 출범 10년 만에 국내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사업 초기 안전 문제 등으로 많이 나왔던 ‘불안해서 어떻게 타냐’는 식의 반응은 이제 찾아보기 힘들다. 가격 경쟁력을 내세운 전략은 패키지 상품 위주에서 자유여행으로 넘어가는 국내 여행 트렌드와도 맞물리며 시너지 효과를 냈다. 한 여행업계 관계자는 “젊은층을 중심으로 한 자유여행객들은 대부분 실속파라서 저가항공사를 선호하는 경향이 높다”고 설명했다.

항공권 요금은 같은 노선, 같은 좌석이라도 구매 시점과 환불 조건 등에 따라 가격이 크게 달라진다. 때문에 일률적인 비교는 어렵지만 일반적으로 저가항공사가 대형항공사에 비해 평균 20~30% 저렴하다는 게 정설이다.

저가항공사들이 운임을 낮출 수 있는 것은 꼭 필요한 것만 빼고 서비스를 최소화해 투입 비용을 줄였기 때문이다. 기내식을 제공하지 않는 것이 대표적이다. 공간을 많이 차지하는 비즈니스·퍼스트 클래스를 없애는 대신 일반석 승객 수를 늘리는 것도 운항원가를 낮추는 방법이다. 온라인 기반의 직접 판매로 티켓 판매 수수료 등 부대비용을 줄이고, 되도록 단일 기종의 항공기를 운항해 정비에 드는 부품과 교육비용을 줄이는 것도 저가항공사의 일반적 정책이다.

현재 국내에는 제주항공, 진에어, 에어부산, 이스타항공, 티웨이항공 등 5개 저가항공사가 영업 중이다. 5사 체제가 정착된 2010년 이후 국내 저가항공사들이 실어나른 승객 숫자는 매년 평균 10% 이상씩 늘었다. 올해의 경우 저가항공사 이용 승객은 2000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추산된다. 이 같은 추세라면 취항 10년 만에 누적 탑승객 1억명을 돌파할 가능성이 높다.

저가항공사의 돌풍은 국내 항공업계 지형을 바꾸고 있다. 한국공항공사 자료를 보면 지난해 국내선 전체여객 2437만명 가운데 5개 저가항공사가 수송한 여객은 1249만명으로 전체의 51.2%를 차지했다. 저가항공사의 국내선 여객 수송분담률이 연간 단위로는 처음으로 절반을 넘어선 것이다. 2006년 이 수치가 2.2%에 불과했던 것에 비하면 그야말로 상전벽해다. 저가항공사의 국내선 수송분담률은 2010년 34.7%, 2011년 41.4%, 2012년 43.8% 등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올해는 60%를 넘보고 있다.

국제선 시장점유율도 제주항공이 처음 운항을 시작한 2008년 0.05%에 불과했던 것이 지난해 말 기준 11.5%까지 커졌다. 덩치를 키운 저가항공사들이 앞다투어 중장거리 노선 확대를 전략으로 내세우고 있기 때문에 대형항공사들의 국제선 시장점유율은 지금보다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진에어 여객기와 승무원들. | 진에어 제공

‘불안해서 어떻게 타냐’는 이제 기우
점유율 확대는 매출 증가로 이어진다. 개별 업체로 봐도 저가항공사들의 실적 호조세는 뚜렷하다. 업계 1위인 제주항공은 지난해 매출액 5106억원으로 저가항공사 가운데 최초로 5000억원을 돌파했다. 영업이익(295억원)과 당기순이익(320억원)도 전년보다 큰 폭으로 늘었다. 제주항공 매출은 2010년 1575억원에서 5년 만에 3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여타 산업들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성장 정체를 보이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에어부산은 지난해 205억원의 영업이익을 내며 전년보다 294% 성장했다. 매출액도 26% 늘었다. 진에어와 이스타항공, 티웨이항공도 각각 지난해 영업이익이 전년보다 2~3배씩 증가했다.

저가항공이 시장의 ‘대세’로 자리 잡으면서 경쟁도 날로 치열해지고 있다. 해외 업체들의 도전도 거세다. 아시아 대표 저가항공사인 에어아시아그룹을 포함해 일본 스타플라이어, 중국 춘추항공 등 아시아 각국 업체들이 한국 시장을 공략 중이다. 2008년 3개사에 불과했던 국내 진출 해외 저가항공사는 지난해 말 기준 20개까지 늘었다.

이런 와중에 에어부산을 보유한 아시아나항공은 최근 인천공항을 거점으로 하는 두 번째 저가항공사 ‘서울에어’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에어부산은 국내선 노선에, 서울에어는 일본과 동남아 등 단거리 국제선에 집중한다는 전략이다. 지난 2월 류광희 부사장을 서울에어 대표이사로 선임한 데 이어 3월에는 아시아나항공의 전문인력 20여명으로 구성된 태스크포스(TF)를 출범해 항공사업 면허 신청을 준비 중이다.

이에 대해 제주항공 등 기존 저가항공사들은 경쟁 과열 등 부작용을 우려하고 있다. 자본력을 앞세운 해외 업체들에 맞서 글로벌 경쟁력을 키워야 할 때 오히려 불필요한 내부 출혈만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들은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에 설립 반대의 뜻을 담은 건의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반면 서울에어 측은 기존 아시아나항공의 중단거리 국제선 노선을 물려받아 운항하기 때문에 새로운 공급 증가나 내부 경쟁으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오히려 전체 시장의 파이를 키울 수 있는 기회라는 게 서울에어의 주장이다.

각 업체들은 올해 국제선 노선 확장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 진에어는 미주와 유럽 등 장거리 노선 운항이 가능한 보잉777 항공기를 지난해 12월 도입하고 올해 2대를 추가로 들여올 예정이다. 제주항공은 최근 홍콩, 대만, 태국 등지의 자유여행객 유치를 위해 중국어 번체 및 태국어 홈페이지를 신설하고 대만달러 결제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스타항공은 국내 저가항공사 중 가장 많은 중국 노선을 꾸준히 유지한다는 방침이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항공 선진국들의 경우 저가항공사의 국제선 점유율이 평균 25%에 이른다”며 “국내의 경우 동북아 기준 저가항공사 점유율이 10%대에 불과해 성장 여력이 아직 많다”고 말했다.

<김형규 경향신문 산업부 기자 fidelio@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