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창선의 눈]아픈 4월, 대통령은 없다

생시몽의 <회고록>은 루이 14세 시대 궁정의 모습을 생생하게 기술한 역사적 증거물로 남아 있다. 생시몽 자신이 들어가 생활했던 궁정은 그의 눈에는 허영과 위선, 그리고 시기와 거짓이 판치는 권력 암투의 장소였다. 태양왕으로 불렸던 루이 14세는 뛰어난 통치력을 가진 인물로 평가받아 왔지만, 생시몽의 눈에 비친 왕은 허울뿐인 무기력한 존재였다. 그래서 생시몽은 “루이 14세의 긴 치세는 그의 것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서양사학자 이영림 교수도 역작 <루이 14세는 없다>에서 절대권력의 상징인 루이 14세가 결코 절대군주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루이 14세는 자신을 둘러싼 귀족들의 먹이사슬에 갇힌 포로에 불과했고, 그럴수록 절대군주로서의 이미지에 집착해서 베르사유라는 화려한 세계를 만들고 귀족에게 굴욕적인 의례를 강조했다는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절대군주 루이 14세는 없었다는 것이 이 교수의 설명이다.

박근혜 대통령 또한 절대권력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집권 이후 권력의 집중을 도모해 왔던 통치자이다. 정부 각 부처는 물론이고 여당, 검찰, 방송 등 나라 곳곳이 청와대의 뜻대로 움직였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다. 적어도 외형적으로는 절대권력이 구축되는 듯했다. 그러나 정작 푸르른 하늘조차 아프게 느껴졌던 4월, 이 땅에서 대통령은 보이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아무도 없는 팽목항에 가서 영혼 없는 담화문 하나 읽고는 하필이면 4월 16일에 해외순방을 떠났다. 대통령이 없는 동안 광화문에서는 세월호 유족들과 시민, 그리고 경찰병력이 뒤엉킨 채 충돌하고 있었다. 유족들의 절규는 대통령의 귀로 들어갈 길을 잃은 채 밤하늘로 날아갔고, 그 상대역은 경찰로 넘어갔다. 그런가 하면 대통령을 대신해야 할 국무총리는 ‘양치기 소년’이 된 채 사의를 표명하기에 이르렀다. 정권의 핵심 실세들이 연루되었다는 의혹이 나라를 뒤흔들고 있건만, 그 위기를 수습할 사람은 아무도 없는 상황이었다. 갈등과 혼돈의 4월, 대통령은 없었다.

대통령이 없다는 얘기는 단지 그의 소재에 국한된 의미가 아니다. 설혹 박 대통령이 청와대를 지키고 있었던들 과연 이 난국을 해결하는 대통령으로서의 리더십을 보일 수 있었을까. “매우 안타깝고 총리의 고뇌를 느낀다”는 대통령의 한마디는 그 질문에 대한 절망적인 답이었다. 대통령은 국민을 상대로 거짓을 일삼은 총리와는 그토록 공감하면서도 정작 국민과는 공감하려는 생각이 없었다. 매사가 그러했다. 세월호 1주기를 맞으며 ‘안전한 대한민국’을 위해 대통령이 꺼낸 얘기는 간첩을 국민이 신고했듯이 안전도 국민이 신고하라는 것이었다. 부부싸움을 하다가 애국가가 나오니까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던 영화의 장면을 갖고 애국심을 말하던 해프닝의 재판이다. 참으로 뜬금없는 얘기를 그토록 태연하고 진지하게 말하는 박 대통령의 재주는 놀랍기만 하다. 공감능력의 결여는 자기 주변 사람들의 비리의혹 사건을 놓고도 엉뚱하게도 정치권의 정치개혁을 거론하는 모습으로 이어지고 있다. 앞이 안 보인다.

유창선의 눈

이명박 대통령은 촛불시위 때 청와대 캄캄한 산 중턱에 홀로 앉아 자책을 했다고 말이라도 그렇게 했지만, 광화문의 외침이 차벽을 넘어 박 대통령에게 전해지는 것은 너무도 먼 일이다. 이 땅에 대통령이 있다면, 그래서 나라를 책임지는 리더십이 있다면, 이토록 슬픈 사연과 부조리한 상황이 방치되어 갈등으로 치닫고 나라가 길을 잃지는 않았을 것이다. 미련보다 단념이 현명할 때가 있다. 대통령이 없다. 대한민국의 불행이다.

<시사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