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TV]‘을’의 슈퍼 히어로

지난주 수요일 케이블채널 tvN의 새 금요극 <초인시대>의 제작발표회에 다녀왔습니다. 요즘 방송사에서 여는 행사는 취재진도 많고 딱히 좋은 말을 건질 기회도 많지 않아 발걸음이 잘 옮겨지지 않았지만 <초인시대>에는 왠지 모르게 관심이 갔습니다. 바로 이 드라마의 작가이자 주연배우 유병재(27)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10일 첫 방송된 <초인시대>의 모든 세계관을 작가로서 손에 쥐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연배우로서 직접 표현도 해냅니다. 대략적인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온라인에서 흔히 하는 농담으로 ‘남자가 30살까지 동정(童貞)을 유지하면 마법사가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초현실적인 사람’이라는 말인데, 이 드라마에서는 대학 졸업반이 됐고 동정도 유지한 3명의 주인공이 있습니다. 이들은 취업과 학점으로 고민하고 있던 찰나 갑자기 초능력을 얻습니다. 한 명은 부끄러운 일을 겪으면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이 있고, 한 명은 성적욕구가 차오르면 힘이 비정상적으로 세집니다. 한 명은 동물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초능력자가 된 이들은 금방이라도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 같이 자신만만해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녹록지 않습니다. 초능력 때문에 더 꼬이는 일이 <초인시대>의 줄거리입니다.

유병재는 지난해 tvN의 코너 ‘극한직업’으로 처음 이름을 알렸습니다. 노랗게 탈색한 파마머리, 덥수룩하게 기른 수염에 팔이 없는 패딩점퍼를 입고 그 주마다 출연하던 스타들의 매니저 역을 하던 그는 독특한 개그코드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는 5분 정도의 짧은 코너였지만 직접 대본을 쓰고, 섭외하고, 연기를 합니다. 아이한테 놀림을 당하기도 하고, 스타들에게 뺨을 맞는 일도 부지기수입니다. 심지어 겁을 먹으면 오줌을 지리고, 속옷만 입은 채 쓰레기통 옆에서 우는 연기도 합니다. 그는 개그맨 지망생이었지만 과장된 무대 연기를 해야 하는 방송사 개그맨 공채시험을 포기했습니다. 대신에 친구들과 모여 영상을 기획하고 만들고 편집하는 데 시간을 보냈습니다. ‘재야의 고수’로 이름을 알리다 케이블채널 엠넷 <유세윤의 아트 비디오>에 캐스팅됐고, 그 인연으로 작가가 됐습니다. 최근에는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의 여섯 번째 멤버를 뽑는 ‘식스맨’ 특집에 출연해 특유의 개그감각을 뽐냈습니다. 지금 예능계에서 가장 독특한 입지를 가진 스타가 된 셈입니다.

유병재는 키가 162㎝로 최근 남성의 평균신장에 못 미칠 정도로 작습니다. 그의 좁은 어깨와 조금은 큰 머리가 그의 불쌍함을 더욱 부각시킵니다. 유난히 큰 눈망울은 불쌍한 감정연기를 할 때 가장 부각됩니다. 하지만 그의 장기는 대본에 숨어 있습니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갑을논쟁’이 생기기 전부터 스타라는 ‘갑’의 위치와 매니저라는 ‘을’의 위치가 충돌하는 지점을 정확하게 측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사랑에 있어서 짝사랑을 주로 하는 ‘을’의 위치로 스스로를 묘사합니다. 그가 이번에 대본을 쓰는 드라마 <초인시대>에도 역시 좁아지는 취업문 앞에서 취직을 위해 스스로 ‘을’로 급전직하하는 지금 청춘들의 안타까운 모습이 있습니다.

유병재는 드라마에 대해 “초능력과 영웅물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어려운 시대를 사는 청춘들의 모습을 가감 없이 그리고 싶었다”고 말합니다. 겉으로 보이는 허술함에 비해 옹골찬 생각입니다. 그는 또한 최근 세월호 사고 1주기를 맞아 어떤 식으로든 도움을 주고 싶어 기자에게 직접 방법을 묻는 면모도 갖고 있습니다. ‘을’의 시대를 사는 ‘을’의 슈퍼히어로, 잘난 사람들 속에서 작가 겸 배우 유병재가 각광받는 이유인 듯합니다.

<하경헌 경향신문 엔터·비즈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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