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郵政)이야기]‘늑대 다시보기’ 특별우표

‘작은 빨간 모자’, ‘피터와 늑대’ ‘아기 돼지 삼형제’, ‘늑대와 7마리 아기염소’….

이들 동화에는 공통점이 있다. 늑대가 ‘악역의 끝판왕’으로 등장한다. 동화 속 늑대의 캐릭터는 늘 포악하다. 마치 밀림의 왕 사자보다, 숲속의 제왕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존재 같다. 동화만이 아니다. 동서양의 속담도 마찬가지다. ‘양의 탈을 쓴 늑대’, ‘늑대 새끼는 방에서 키워도 늑대가 된다’와 같은 속담을 보면, 늑대의 이미지는 부정 일색이다. 심지어 낭탐(狼貪·늑대의 탐욕), 낭자야심(狼子野心·늑대 새끼는 작아도 흉포한 성질이 있어 길들이기 어렵다)과 같이 늑대를 빗대 거칠고 사나운 성질을 표현한 낱말도 있다. 늑대는 인간에겐 혐오와 공포의 대상인 셈이다.

우정사업본부는 지난달 26일 늑대를 소재로 한 특별우표 2종 100만장(소형 시트 1종 20만장 별도)을 발행했다. | 우정사업봅부 제공

살기 돋은 눈빛, 송곳 같은 이빨, 밤하늘을 가르는 울부짖음이 위협적인 이미지를 만든 것인지 모른다. 하지만 늑대는 생각만큼 잔혹하지 않다. 생태계 최상위의 포식자 중 하나일 뿐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오히려 늑대의 습성이 사람을 닮아 있다는 게 흥미롭다. 보통 2~8마리가 하나의 무리를 짓는다. 동물 중에서 드물게 일부일처제를 유지한다. 새끼는 새끼를 낳은 암수컷이 함께 돌본다. 암컷이 혼자서 키우는 다른 동물과는 차이가 난다. 근친교배도 ‘금기시’한다. 무리의 우두머리 수컷(알파 메일)은 회임기에 들어선 새끼를 무리에서 방출, ‘불의의 사고’를 막는다. 독립된 무리를 이룬 새끼가 부모를 찾아오는 동물도 늑대뿐이다.

뿐만 아니라 사냥 과정에서 ‘전략적 사고’를 하는 것도 인간과 닮았다. 사슴 등 몸집이 큰 사냥감을 만났을 때 여러 마리가 척후·매복·교란·기습 등으로 역할을 분담한다. 사람처럼 목마를 태워 높은 담을 넘어 사냥을 하기도 한다. 죽인 양을 층층이 쌓아 계단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매우 지능적이다. 거기다가 날씨와 지형까지도 활용할 줄 안다. 알파 메일을 중심으로 일사불란한 조직력을 갖추지 않는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늑대는 무엇보다 기다림에 능한 동물이다. 초원에서 가젤을 먹잇감으로 점찍었다면 한자리에서 그만을 주시한다. 가젤이 오줌을 누려고 일어나는 새벽까지 한자리에서 꼼짝도 않고 기다린다. 오줌통이 찬 상태의 가젤을 잡는 게 훨씬 수월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늑대는 또한 생태계 보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중국이 문화혁명 때 내몽고 지역으로 중국 사람을 이주시키면서 무차별적으로 늑대를 제거했다. 늑대가 사라진 뒤 내몽고는 사막화됐다. 초원의 주인이 된 순록, 쥐 등이 풀뿌리까지 몽땅 먹어치웠기 때문이다. 반대로 생태계 교란으로 황폐화되어 가던 미국 옐로스톤 국립공원에서는 늑대를 자연으로 돌려보낸 뒤 생태계가 살아났다. 먹이사슬의 교정이 생태계를 회생시킨 것이다.

늑대의 생존방식과 가치를 알고 나면 늑대를 다시 보게 된다. 우정사업본부에서 지난달 26일 늑대를 소재로 발행한 특별우표는 ‘늑대 다시보기’의 계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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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 김소정씨는 “철저한 준비와 심의를 거쳐 멸종위기 동물로 늑대를 선택했다”면서 “따뜻하고 배려심이 깊은 늑대의 가족 생활이 알려지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문수 우편정책과 사무관도 “늑대우표의 통신판매 실적이 100% 이상 신장됐다”면서 “내년 특별우표를 선정할 때 멸종위기 동물 시리즈를 심의에 올려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늑대는 1998년 멸종위기 종으로 지정됐으며, 현재는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으로 지정·관리하고 있다. 1997년 서울대공원 늑대가 숨진 뒤 남한에서는 토종 늑대가 절멸된 것으로 보고 있다. 환경부는 늑대 복원사업을 검토 중이다.

<김경은 편집위원 jjj@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