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경제]위플래쉬-혼신의 힘을 쏟은 ‘노력 정당화 효과’

“세상에서 가장 쓸데없는 말이 ‘그만하면 잘했어(Good Job)’야.”

플레처 교수가 제자인 앤드류를 몰아친다. 플레처 교수의 광기 어린 눈매에 기가 질린 신입생 앤드류는 훌쩍인다. 그렇다고 마음이 약해질 스승이 아니다. “여기 계집애가 있다”며 독설을 쏟아낸다. 참 모질다. 그에게는 당근이 없다. 오직 채찍(Whiplash)만 있을 뿐이다. 후려쳐서 한계를 넘도록 하는 것, 그것이 절대적인 경지에 오를 수 있는 길이라고 믿는다.

다미엔 차젤레 감독의 <위플래쉬>는 최고의 드러머를 만들려는 폭군 스승과 그에게 지지 않으려는 제자의 대결을 그린 영화다. 미국 최고의 재즈학교 셰이퍼에 입학한 앤드류. 최고가 되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각오가 돼 있다. 플레처 교수는 앤드류의 열정과 가능성을 보고 자신의 ‘스튜디오 밴드’에 발탁한다. 플레처 교수는 시종일관 앤드류를 밀어붙인다. 박자가 틀리거나 음을 따라가지 못하면 분을 참지 못하고 심벌즈를 던진다. 2명의 드러머를 더 발탁해 무한경쟁을 시킨다. 재즈곡 ‘카라반’의 핵심인 ‘더블 타임 스윙 주법’을 완성하는 제자에게 밴드 수석 드러머 자리를 맡길 심산이다. 앤드류는 드럼이 피로 물들 정도로 연습에 매달린다.

3명의 예비 드러머가 수석 드러머로 발탁되기 위해 9시간 동안 경쟁을 벌인다. 승자는 앤드류다. 하지만 앤드류는 발표회 당일 교통사고로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한다. 플레처 교수가 수석 드러머를 교체하려 하자 피범벅이 돼 뒤늦게 도착한 앤드류가 항의한다. “내가 그 자리를 땄잖아요. 당신이 나한테 그럴 순 없어.”

앤드류는 피를 흘리면서도 무대에 서겠다고 고집을 부렸지만 결국 연주를 망치고 학교에서 퇴출된다.

정상적인 몸이 아니었는데도 앤드류는 왜 수석 드러머 자리를 포기하지 못했을까. 사람은 자신이 큰 고생을 했거나 엄청난 노력을 퍼부어서 성취한 것에 대해서는 더 가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노력 정당화 효과(Effort Justification Effect)’라고 부른다. 한마디로 “어떻게 해서 얻은 자리인데…” 하는 생각인데 자칫 잘못하면 집착이나 성취에 대한 과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

과거 대학 동아리에서 신입생들은 혹독한 신고식을 거쳐야 했다. 혹독한 신고식을 통과하고 올수록 동아리에 대한 자부심이 강해지는 심리를 이용한 것이다. 해병대 출신들의 자부심이 큰 것도 같은 이유다.

1959년 심리학자 엘리엇 애런슨과 저드슨 밀스는 연구를 통해 “엄청난 어려움과 고통을 이겨내고 성취한 사람은 최소한의 노력으로 같은 것을 얻은 사람보다 그것을 더 가치가 높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발표했다. 실제 54개의 부족을 연구해보니 가혹한 입회 의식을 치르는 부족들일수록 내부 결속력도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1970년대 한국의 산업화를 이룬 6070세대가 갖는 자부심에도 ‘노력 정당화 효과’가 있다. “독일 광부로, 중동 건설인부로, 원양어선 선원으로 벌어들인 돈으로 우리가 일군 경제”라는 생각을 하면 현재 경제의 긍정적인 부분만 보기 쉽다. 그래야 자신들의 노력을 정당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재벌중심 경제체제와 심각한 빈부격차, 빈곤한 복지 등의 부족한 면엔 눈을 감아버리는 것이다.

영화 속 경제

마찬가지로 10년이나 20년 동안 알뜰살뜰 모아서 산 내 집은 타인의 어떤 집보다도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자동차를 타고 편안히 다녀온 여행보다 자전거나 도보로 돌아본 여행이 더 특출난 것도 ‘노력 정당화 효과’와 관련이 있다. 앤드류는 손이 찢어지는 연습 끝에 수석 드러머의 자리를 따냈다. 수석 드러머 자리가 ‘엄청난 노력의 대가’라고 생각하는 그로서는 ‘지각’이라는 이유로 그 자리를 빼앗기는 것을 이해하기 힘들었던 것이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