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로 본 세상]<모두에게 완자가>-성소수자에 대한 시선이 바뀔 수 있을까

완자는 일기와 편지와 회고록의 형식을 넘나들며 시시콜콜한 ‘자기’의 이야기를 아기자기하게 써나간다. 하지만 ‘자기’가 동성애자이기 때문에, 그 이야기는 아기자기할 수만은 없다. 아직 우리 사회에서 동성애는 말할 수 없는 것의 영역에 있기 때문이다.

나는 왜 쓰는가. <1984>와 <동물농장>의 작가 조지 오웰은 네 가지 동기를 든다. 똑똑해 보이려는, 명성을 쌓으려는 ‘순전한 이기심’이 그 중 하나다. 세계와 언어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려는 ‘미학적 열정’도 있다. 르포 작가나 기자, 혹은 역사가라면 ‘역사적 충동’이 동기가 될 수 있다. 마지막, 오웰이 가장 힘주어 논하는 동기는 ‘정치적 목적’이다. 이때 ‘정치적’의 의미는 굉장히 넓은 것으로, “세계를 특정 방향으로 밀고 가려는 욕망, 성취하고자 하는 사회가 어떤 사회여야 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놓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바꿔보려는 욕망”이다. <카탈로니아 찬가>에서부터 이어진 오웰의 대표작들은 분명 마지막 동기의 결과물들이다.

예전에 읽고선 잊고 있던 이 통찰을 한 중견 만화가의 강연에서 다시 듣고 생각해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만화 역시도 오웰이 말한 바 산문을 쓰는 이유와 닿아 있다는 걸 새삼 되새겼던 것도 있지만, 역시나 가장 큰 것은 나 스스로를 향한 질문이었다. 나는 왜 만화 평론을 쓰는가. <만화로 본 세상>에 기고하는 칼럼은 어떤 동기에서 비롯한 것인가. 답은 당장 나오지 않았다. 아무래도 정치적 목적이 가장 가까운 듯하면서도, 그 말로만은 담을 수 없는 구석이 있다는 생각을 버리기 어려웠다.

답은 갑작스레 찾아왔다. 강고한 현실과 한 만화가 그 답을 찾는 여정에 도움을 주었다. 만화 이야기부터 하자.

작가 완자의 만화 <모두에게 완자가>. / 네이버 웹툰

전적인 다름도 같음도 아닌 적절한 혼합
<모두에게 완자가>(네이버 웹툰, 이하 <모완>으로 줄여 씀)는 성소수자 여성들의 일상과 사랑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실제 동성애자인 작가 완자는 프롤로그에서부터 호기롭게 ‘왜 쓰는가’를 드러낸다. “나 만화로 세상을 바꿔볼 거야”라는 그녀의 거창한 창작 목표는 작품 소개에 더 명확히 기술되어 있다. “아무도 눈치 보지 않고 사랑할 수 있는 그날이 오기를!” 이처럼 ‘그날’을 앞당기기 위해 시작된 초보 만화가의 작품 <모완>의 구체적인 결을 들여다보면 ‘왜 쓰는가’에 얽힌 생각도 더 명확해진다.

“만약 동성애를 잘 모르던 독자와 마주친다면 내가 가장 듣고 싶은 말은…, 닮았다는 말. 그리고 두 번째로는 다르다는 말.”

<모완>의 이야기 전략을 욕망으로 환치한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모완>의 베스트댓글 독자들은 이 두 가지를 모두 기분 좋게 받아들인다. 전적인 다름도 전적인 같음도 아닌, 다름과 같음의 적절한 혼합을 감각하며 독자들은 이 작품을 읽어나간다. ‘이런저런 점은 동성애자의 연애도 이성애자의 연애와 다르지 않구나. 그들도 알콩달콩 사랑하는 이들이야.’ 하지만 ‘이런저런 점은 동성애자의 연애가 이성애자의 연애와 다를 수밖에 없구나. 그들은 참 색다르게, 때로는 그래서 힘들게 사랑하는 이들이야’ 하며.

익숙한 것과 낯선 것을 잇닿게 하는 비유라는 설명법이 호의 섞인 반응을 이끌어낸 동력이라는 점은 명백하다. 하나를 덧붙인다면, “중요한 정보만 강조되고 당연한 정보는 없었던” 이전 미디어의 동성애 재현에 대한 완자의 문제의식을 꼽을 수 있다. 늘 강조되던 ‘중요한 정보’는 주로 ‘다름’에 대한 것이었다. ‘이상해’와 ‘독특해’의 사이를 진동할 수밖에 없는, 그래서 멀어지게 만드는 선정적인 다름이다. 하지만 ‘당연한 정보’는 ‘같음’과 ‘다름’ 모두에 대한 것이다. 동성애자나 이성애자나 대동소이하여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되던 부분과 상당히 다르지만 선정적으로 흥미롭지 않아 무시되었던 부분을 동시에 아우르는 것이 ‘당연한 정보’다. <모완>의 미덕과 성취는 상당 부분 ‘당연한 정보’를 전달하는 데 힘을 쏟았다는 데 있다.

이는 <모완>이 소설보다는 수필에 가까운 ‘일상툰’이라는 형식을 채택했다는 점과 뗄 수 없다. 완자는 일기와 편지와 회고록의 형식을 넘나들며 시시콜콜한 ‘자기’의 이야기를 아기자기하게 써나간다. 하지만 ‘자기’가 동성애자이기 때문에, 그 이야기는 아기자기할 수만은 없다. 아직 우리 사회에서 동성애는 말할 수 없는 것의 영역에 있기 때문이다. ‘커밍아웃’이라는 말이 쓰이는 것도 그래서다. 이성애자 친구들이 자신의 연애사를 자연스레 드러낼 수 있는 것과 달리, 완자는 연인을 없는 사람 취급해야 하거나 주류의 문법에 맞춰 여성인 연인 야부를 ‘남자친구’라고 말해야만 한다. 생활 이곳저곳에서 경험되는 성소수자로서의 애환을 ‘자기’의 이야기로 ‘당연한 정보’로 풀어낼 때, 이 시시콜콜하며 아기자기한 이야기는 까랑까랑해진다.

작가 완자의 만화 <모두에게 완자가>. / 네이버 웹툰

지키고 싶은 ‘따뜻하고 이성적인 인간성’
그러면서도 완자는 ‘자기’의 이야기가 성소수자 모두의 이야기는 아니라는 것을 명확히 한다. 완자는 그녀가 자신의 연인 야부뿐만 아니라 어떤 동성애자들의 삶도 대표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한 채로, 떨면서 대표한다. 독자들도 이를 지각할 수 있도록 조심스럽게, 지루할 정도로 다양한 결을 자아내면서. 모든 ‘사람’이 비슷하면서도 제각각의 삶을 살듯, ‘동성애자’도 마찬가지라는 같음과 다름의 변주 앞에서, 이성애자 독자 일부는 동성애자와 사람을 분리하던 편견을 수정하고 동성애자를 일반화해 바라보던 편견도 수정한다. 보편성과 특수성을 가로지르며 이어간 <모완>은 그렇게 동성애에 대한 인식을 조금이나마 바꾸었다.

“‘<모두에게 완자가>를 이성애자 친구들이 보니까 적어도 그 친구에게는 커밍아웃을 해도 될 거 같아’라는 말을 들을 때 기분이 가장 좋아요.”(웹진 <친구사이> 인터뷰)

하지만 안타깝게도 세상 역시 단일하지 않아서, 바뀐 이들과 바뀌지 않은 이들이 그 안에 어우러져 살고 있다. 이 ‘당연한 정보’를 직면해야 하는 건 여고생 간의 키스신을 담았다는 이유로 드라마 <선암여고 탐정단>이 규제당하는 현실, 동성애자 성 정체성으로 인한 우울로 자살한 이가 존재하는 현실 때문이다. 완자가 <모완>을 시작하던 무렵에는 더했던 현실을 떠올려보면, 이제 ‘왜 쓰는가’가 명확해진다. 동어반복 같지만 ‘쓰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쓴다. “세상을 바꾸는” 거창한 일 없이는 소소한 ‘나의 삶이 무너지기 때문에’ 쓰지 않을 수 없다. 살기 위해, 완자는 <모완>을 가지고 나오지 않을 수 없었던 거다.

이렇게 보면 오웰의 ‘정치적 목적’이라는 말이 환기하는 공공적이고 계몽적인 성격이 탈각된다. <모완> 덕분에 알았다. 나도 완자처럼 ‘살기 위해서’ 글을 쓴다. 내가 지키고 싶은 것을 지키지 못하면 사는 것이 고되고 아프므로, 지키고 살기 위해 글을 쓴다.

만화로 본 세상

마지막 질문이 남았다. 내가 지키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동성애자? 소수자? 아니다. 오히려 가장 지키고 싶은 것은 모두의 ‘따뜻하고도 이성적인 인간성’이다. 그것이 없는 곳에서 살고 싶지는 않다. 아니, 살 수가 없다. 세상을 ‘누군가가 혐오당하고 규제당하고 결국에는 죽어 사라져야만 하는 곳’으로 만드는 인간들의 틈바구니에서, 나는 살 수 없다. 그래서 쓴다.

<조익상 만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