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경제]보이후드-폐쇄적인 아이라고 단정짓는 ‘귀인 오류’

손톱에 네일아트를 한 메이슨에게 세 번째 아빠는 힐난한다. “여름에는 귀고리를 달고 다니더니 이젠 매니큐어냐.” 주변 사람들도 메이슨을 이상한 아이로 생각한다. 메이슨은 답답함을 토로한다. “주변 사람들이 내 인생을 간섭하는 게 너무 화가 나는데, 정작 그들은 그것을 알지 못한다”고.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보이후드>는 시간으로 영화를 만드는 그의 재능을 십분 발휘한 영화다. 여섯 살 꼬마 메이슨(엘라 콜트레인 분)이 열일곱 살 대학 새내기가 될 때까지의 성장 과정을 담았다. 엄마 올리비아는 세 번 결혼하고 이혼한다. 첫 번째 남자는 음악을 사랑하지만 무능력했고, 다음 두 남자는 능력은 있지만 주정뱅이였다. 그녀가 첫 번째 결혼에서 낳은 남자아이가 메이슨, 여자아이가 사만다다. 메이슨과 사만다는 친부와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지만 같이 살 수는 없다. 고교 시절 메이슨은 여자친구를 사귀지만 그녀는 곧 ‘재미없는’ 메이슨을 떠난다. 사진에 재능을 보이던 메이슨은 텍사스 주립대에 합격한다.

<보이후드>는 12년간 매 15분씩 찍어 완성한 영화다. 메이슨의 성장이 그대로 화면에 담겨 있다.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대표작은 ‘비포’ 시리즈다. <비포 선라이즈> <비포 선셋> <비포 미드나잇> 등 3편을 매 9년마다 27년간 찍으면서 같은 주인공을 썼다. 비포 시리즈의 남자 주인공인 에단 호크가 <보이후드>에서는 메이슨의 아빠로 출연했다. 메이슨은 내성적이고, 폐쇄적이다. 주변 사람들은 이를 메이슨의 타고난 성격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메이슨의 성향을 ‘원래 그렇다’고 단정지어 버린다면 ‘근본적인 귀인 오류’(fundamental attribution error)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 근본적인 귀인 오류란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발생한 원인을 개인적인 성향이나 기질 등 개인적인 문제로 돌리는 것을 말한다. 외부상황이나 환경은 고려하지 않는다. 귀인(歸因)이란 ‘원인을 무엇의 탓으로 돌린다’는 뜻이다. ‘근본적인’이라는 형용사가 붙은 것은 이런 심리가 매우 보편적이고 너무나 쉽게 발생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근본적 귀인 오류는 문제를 설명하기 쉽다. 그냥 개인 탓으로 돌려버리면 복잡할 수 있는 여러 환경요인들을 따로 분석하지 않아도 된다. 예를 들어 한 여학생의 수학 성적이 나쁘다면 “여자는 원래 수학을 못해”라고 말하면 그만이다. 한국에서는 동남아계 외국인 노동자의 범죄에 대해 “그럴 줄 알았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한 여학생의 수학 성적이 나쁜 이유가 학교 수학 선생님이 맘에 들지 않아서 공부를 게을리했을 수도 있고, 외국인 노동자가 범죄를 저지른 이면에는 사회적 편견이나 멸시가 배경이 됐을 수도 있다.

언젠가 인터넷에 이런 글이 올라왔다. 한 할아버지가 버스에 탔는데, 노약자 자리에 앉은 청년이 일어나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청년에게 “어른이 앞에 있는데 일어나지 않다니 넌 애미애비도 없느냐”고 야단을 쳤다. 꿈쩍도 않던 청년은 버스에 탄 사람들이 수군거리자 마지못해 일어났다. 그런데 그 청년은 다리를 심하게 저는 장애인이었다. 근본적 귀인 오류의 전형적인 사례다.

근본적 귀인 오류는 여론조작에 활용되기 쉽다. 과거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증거도 없이 이라크를 악의 축으로 몰았다. 투자자나 최고경영자라면 근본적인 귀인 오류에 빠지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 ‘그 주식은 무조건 좋다’든가 ‘그 상품은 원래 안 팔린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면 극적인 성과를 얻기 어렵다.

영화 속 경제

어머니가 세 번 이혼을 했고, 그 중 두 번은 주정뱅이 의붓아버지였다. 수차례 이사를 다니면서 친구도 없다. 이런 메이슨의 상황을 이해했다면 그의 내성적이면서 염세적인 성격도 이해가 됐을지 모른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