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수의 길 위에서 듣는 음악]시대의 광기가 집약된 말러의 교양곡

두다멜의 현은 벼랑 끝으로 거침없이 질주하고 관악기들은 울부짖으며 천상의 장막을 찢고 타악기들은 비극적 행렬을 끝없이 부추기는데, 돌연 해머의 거대한 강타가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을 쓰나미처럼 휩쓸어버린다.

길 위에서 음악을 들을 때, 특히 먼 길을 오랫동안 가야 할 때, 나는 단 하나의 앨범을 지겨워서 창밖으로 내다버리고 싶을 만큼 듣고 또 듣는다. 물론 실제로 창밖으로 무단투기한 적은 없지만 말이다. 좋든 싫든 오로지 그 음반 말고는 들을 게 없는 상황에 며칠이고 놓여 있다 보면, 이윽고 귀가할 때 그 음악의 극히 미시적인 디테일까지 몸속에 각인된다.

벌써 9년 전 일이다. 2006년 독일 월드컵 때 나는 영국, 프랑스, 스위스를 거쳐 독일로 들어가서 그 나라의 주요 도시를 순회하는 장장 한 달가량의 월드컵 취재를 한 적이 있다. 그때는 스마트폰이 아니라 그 옛날의 휴대폰이었던 시절이었고, 그래서 오래전의 폴더폰은 그리 음질이 좋지 않았다. 따로 MP3 플레이어를 가져갈 만큼 한가로운 여행도 아니었다. 그래도 CD 한 장을 들고 갔는데 왜냐하면 프랑스에서부터 차를 렌트해서 장거리 운전을 감행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들고 간 음반은? 구스타프 말러의 가곡집 <대지의 노래>였다. 극단적인 조울증과 염세주의, 그리고 한 줌의 사랑이 겨우 배어 있는 이 음반을 프랑스 리옹에서부터 들었다. 나는 리옹역에서 차를 렌트하자마자 CD부터 밀어넣고 운전을 했다. 말러의 가곡 말고는 달리 선택의 여지가 전혀 없는 상황이 되었고, 그래서 나는 한 달 가까이 <대지의 노래>를 듣고 또 들었으며, 결국 사랑하게 되었다.

말러의 이 가곡집뿐만 아니라 특히 교향곡의 경우 그 장대한 횡설수설과 복잡한 다성악과 밑도 끝도 없는 장광설과 무시무시한 공포와 원인 모를 불안과 갑작스러운 조울증과 혼란한 듯 정교하게 펼쳐지는 고통스러운 교향악의 스펙터클은 일부러라도 극단적인 상황을 조성해서 듣지 않으면 안 된다. 귀로 듣는 게 아니라 몸이 기억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의 교향곡 2번, 5번, 9번도 이 산하의 국도 위에서 내 음악으로 만들었다. 영남의 어느 국도를 달리다가 교향곡 2번의 5악장을 제대로 마무리하기 위해 국도변에 차를 세운 채 세상의 모든 죽은 자들이 벌벌 떨면서 무덤에서 일어나 초월의 세계로 상승하는 5악장 피날레를 한참이나 듣기도 했다.

3월 25일, 예술의 전당 공연을 마치고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과 LA필하모닉이 관객에게 답례하고 있다. /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오디오로는 재현이 안 되는 결정적 순간
그러나 6번은 쉽지 않았다. 그 중에서도 4악장은 음향 재현을 위한 만반의 태세가 필수적이다. 비좁은 차 안에서 카오디오 볼륨을 크게 튼다고 해결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래서 작업실의 오디오를 오로지 말러 교향곡 재현이라는 목적에 부합하도록 세팅한다. 대편성 교향곡을 소화할 수 있는 앰프와 스피커, 그리고 100여명의 악단들이 저마다의 악기로 교성을 질러대는 순간에도 저 구석 어디에선가 희미하게 들려오는 트라이앵글 소리가 또렷하게 재현될 수 있는, 그런 디테일 강한 CD플레이어를 장만한다. 그러나 그렇게 하여도 말러 6번 교향곡, 특히 4악장, 그 중에서도 거대한 해머가 두 차례나 강타하는 결정적 순간은 좀처럼 실감나지 않았다. 역시 실연을 들어야만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이를 위하여 나는 지난 3월 25일의 수요일 밤, 예술의 전당으로 달려갔다. 구스타보 두다멜이 지휘하는 LA필하모닉의 공연을 위하여 퇴근길 꽉 막히는 경부고속도로를 필사적으로 주파하여 공연 시작 10분 전에 경건한 마음으로 착석할 수 있었다.

지휘자가 들어서기 전, 단원들은 오보에의 소리에 맞춰 숨을 고른다. 국제표준 음고 지수인 진동수 440㎐를 정확히 재현하는 오보에의 A음에 따라 수십 개의 악기가 튜닝을 한다. 비브라토가 거의 없는 오보에 소리가 기준선을 따라 가느다랗게 직진하는 동안 100여명이 넘는 연주자들이 저마다의 악기를 조율하는데, 그 순간, 아직 실제 공연이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아! 하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저마다 방식대로 조율을 하는데, 그조차도 말러의 어수선한 내면처럼 들렸으며 관악기들이 죽음의 무도가 되는 주제 선율로 음정을 고르는 소리는 마치 조율이라기보다는 이미 연주가 시작된 비극적 계시처럼 들렸다.

마침내 두다멜이 등장했고, 그로부터 85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시작하자마자 끝이 났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 실황을 제대로 듣기 위하여 나는 며칠 전부터 이 곡의 전설적인 기록들을 ‘예습’하였는데 라파엘 쿠벨릭은 지극히 쓸쓸하였고, 클라우스 텐슈테트는 분노조절장애가 있는 듯 격렬하였고, 아바도는 비극이 청승으로 추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 현을 단단하게 움켜쥐었다. 두다멜은 예상과 달리 약간은 느린 템포로 시작했다. 1악장의 장중한 죽음의 행진이 진행되는 동안 나는 금세 그 템포에 익숙해졌는데, 그렇게 익숙해지고 나니 느린 템포 안의 긴장은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풍선과 같았다.

19세기말 북유럽 지식인들 정서 담겨
두다멜은 그리고 그의 손짓을 음악으로 바꾼 LA필하모닉의 음향은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자체를 거대한 악기로 만들어버렸다. 비극적 서정으로 넘실대는 2악장과 그로테스크한 광기가 번득이는 3악장이 전개될 때 콘서트홀 자체가 거대한 음향판이 되고, 악기가 되고, 급기야 음악이 되었으니 4악장은 말할 것도 없었다. 드디어 4악장. 거대한 해머가 두 번이나 강타를 하는 순간을 나는 기다린다. 이것은 일차적으로 음향적인 기대다. 차 안에서, 그리고 오디오로 수십 번이나 들었으면서도 그 음향의 본질적 국면을 느낄 수는 없었던 소리를 기다린다.

말러가 거대한 해머까지 등장시킨 것은 음향적 효과 이상의 음악적 메시지가 있다. 알반 베르크는 말러의 교향곡에 대하여 “이 지상에 대한 끊임없는 사랑의 표현이며, 또한 지상에서 이룩할 수 있는 평화로운 생활과 자연을 그 가장 깊은 곳까지 남김없이, 죽음이 찾아오기 전에 향유해 보려는 그리움”이 담겨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감정은 19세기 말 북유럽 지식인들이 공유하고 있었다.

18세기 이후 시민계급이 유럽의 주도권을 장악한다. 영국의 시민들은 산업혁명을 통해 세계 경제를 움켜쥐었고, 프랑스의 시민들은 거듭된 정치혁명을 통해 신질서를 만들었다. 반면 북유럽의 시민들은 정치와 경제라는 실질세계의 지배권 확보에 실패했다. 그래서 그들은 지식과 예술에 몰두하고 집착했다. 이른바 ‘교양 시민’이라고 불리는 북유럽 현상이다. 예술과 형이상학에 고뇌하는 헤르만 헤세의 창백한 주인공들을 떠올리면 된다. 이 지식과 예술은 현실권력을 결코 대체하지 못한다. 비스마르크 같은 철혈정치가들의 강력한 패권주의 앞에서 지식과 예술은 무기력하다. 그래서 그들은 현세의 환멸과 추상적 죽음에 대한 탐닉에 빠진다.

말러의 교향곡들은 바로 그러한 시대의 광기가 집약된 곡이며, 아도르노의 표현처럼 “구원에 관한 모든 허구를 손에서 놓아버리는” 몰락의 순간들이다. 아도르노는 말러의 교향곡에 대하여 “최후의 불길 속에서 인류가 다시 한 번 붉게 타오르고 망자들이 다시 한 번 살아날 것 같은 소리가 난다. 행복은 암담함으로 떨어지기 일보 직전의 벼랑 끝에서 높이 타오른다”고 썼다.

바로 그런 소리를 기다리는데, 과연 두다멜의 현은 벼랑 끝으로 거침없이 질주하고 관악기들은 울부짖으며 천상의 장막을 찢고 타악기들은 비극적 행렬을 끝없이 부추기는데, 돌연 해머의 거대한 강타가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을 쓰나미처럼 휩쓸어버린다.

정윤수의 길 위에서 듣는 음악

아! 저런 소리였구나. 나는 마치 사랑의 한순간을 영원히 봉인하려는 듯 몸을 앞으로 숙인다. 잠시 후, 곡이 끝났고 잔향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20여초 동안 예술의 전당은 그 어떤 미동과 소음도 없는 진공상태가 되었다. 이윽고 두다멜과 LA필하모닉은 합창단석에 앉은 관객들에게까지 일일이 답례하는 아름다운 뒷모습을 남기며 작별했다.

<한신대 정조교양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