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편함에 / 봉투꼬리 / 누굴까? / 살며시 / 잡아당기니 / 푸득푸득 / 종달새 되어 / 날아온 너’
시인 김금래가 쓴 <편지>라는 동시다. 여운이 길게 내린다. 종달새의 지저귐이 봄안개처럼 피어오르는 듯하다. 마음의 울림은 편지에 대한 추억이 만든 것일지도 모른다. 편지가 주는 행복감은 오랜 기다림에서 온다. 편지는 ‘완행열차’다. 편지를 주고받기까지 적어도 일주일 이상이 걸린다. 오랜 기다림 끝에 받은 편지는 그만큼 각별해졌을 터.
한 우편집배원이 우체통에서 우편물을 수거하고 있다. / 우정사업본부 제공
편지가 넘쳐나는 시대가 있었다. 그 시절엔 편지로 가족과 친지의 안부와 감사 인사를 주고 받는 게 관례였다. 연인 간의 편지 왕래는 더욱 잦았다. 연애는 연서로 무르익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 ‘국군장병 아저씨께’로 시작하는 위문편지를 단체로 쓰기도 했다. 편지에 대한 답장은 일과를 마친 장병들의 중요한 일 중 하나였다. 학생들도 어버이날이나 스승의 날은 으레 부모님과 선생님께 감사 편지 쓰기 숙제를 받았다. 외국의 친구와 펜팔을 하면서 외국어를 익히기도 했다. 심지어 펜팔을 원하는 사람들의 주소를 게재, 편지친구를 만들어주던 잡지도 있었다. 일부 청소년들은 그 주소를 얻기 위해 잡지를 구입했다. 편지가 사람과 사람을 잇는 소통의 통로가 된 것은 우리나라만이 아니었다. 선진국은 더 활발했다. 한때 영국에서는 우체통 옆에 무료 관제엽서를 비치해 뒀다. 무료 관제엽서가 최고의 소통수단이었다.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는 날마다 그날 만난 사람에게 감사의 마음을 엽서에 적어 보낸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현실 속 편지의 처지는 그렇게 낭만적이지 않다. 이미 추억과 그리움의 대상일 뿐이다. 지난 시대의 유물이 됐다.
시간은 빠르고 사람은 바쁘다. 하루가 다르게 세상은 변한다. 정성 들여 글을 쓰는 시간이 낭비처럼 느껴진다. 가족의 안부를 동영상으로 전한다. 친지 사이의 근황도 카톡이나 이메일로 주고 받는다. 꼭꼭 눌러쓰던 편지 속 글씨를 손가락 터치가 대신하게 된 것이다.
이렇다 보니 집에서 받아 보는 우편물 중에 손편지는 거의 없다. 국민 한 사람이 1년 평균 98.8통의 편지를 받는다. 거의 대부분이 건강보험공단 등 공공기관,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발송하는 세금고지서나 카드·통신·금융기관의 요금청구서 등이다.
광화문우체국에 근무하는 정휘상 집배원은 “하루에 1000통 정도 편지를 배달하는데, 그 중 2~3통 정도가 손으로 쓴 편지”라고 말하면서 “규격 편지봉투에 손으로 쓴 편지는 거의 전부가 군인(군사우편 표시가 되어 있음)이 쓴 것으로 보면 무리가 없다”고 말했다.
편지가 줄어들면 우체통도 그만큼 필요성이 떨어지게 된다. 하지만 우정사업본부는 세종특별자치시 신도시 지역에 우체통을 추가로 설치했다고 지난 18일 발표했다. 우체통은 세종시민의 왕래가 많은 세종청사 지역과 국립세종도서관, BRT 정류장 등에 설치된다.
김준호 우정사업본부장은 ”우편 이용의 편의를 제공하고 손편지 쓰기를 장려하기 위해 전국의 혁신도시, 도시개발지구 등 인구가 증가하는 지역에도 우체통을 추가로 설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편지가 사라지고 있다. 시대의 속도에 따라가지 못한 탓이다. 하지만 탓만 한 채 손을 놓고 있기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조금은 느리고 불편하지만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쌓인 정감은 결코 손가락이 대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정사업본부의 우체통 증설 소식이 반가운 이유다.
<김경은 편집위원 jj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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