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규의 미스터리 산책]펠레와 나브라틸로바가 추리소설가?

20세기 프로 스포츠가 번성하면서 유명 선수의 작품도 눈에 띈다. 먼저 축구계를 살펴보면 펠레가 있다. ‘축구황제’ 펠레는 1988년 <월드컵 살인자>라는 추리소설을 발표했다. 20세기 후반 세계 여자 테니스의 여왕이었던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는 은퇴 직후 세 편의 추리소설을 발표했다.

어느덧 겨울이 지나가고 봄이 찾아왔다. 봄은 본격적으로 스포츠가 시작되는 계절이다. 프로축구는 이미 시작되었고, 시범경기를 치른 프로야구도 페넌트레이스에 돌입했다. 올해는 새로운 팀이 등장해 10개 구단이 되고 경기 수도 크게 늘어나 야구팬들에게는 더 흥미진진한 시즌이 될 것 같다.

추리소설과 스포츠는 어쩐지 거리가 있어 보이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예를 들어 프로야구 역사가 오래된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프로야구를 소재로 한 추리소설이 드물지 않다. 국내에 번역된 작품을 몇 편 들자면 엘러리 퀸의 단편 <사람이 개를 물었다>나 로버트 파커의 <최후의 도박>, 리처드 로젠의 <스트라이크 살인>(이상 미국), 니시무라 교타로의 <프로야구 살인사건>, 미즈하라 슈사쿠의 <사우스포 킬러>(이상 일본) 등이 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소설과 스포츠는 사이가 좋은 셈이다.

젊은 시절의 에드거 앨런 포.

코난 도일, 축구 골키퍼로 활약
아마도 그보다는 소설가는 운동과 거리가 멀다는 인상이 더 강할 것 같다. 소설가의 이미지는 ‘꼼짝 않고 골방에 틀어박혀 작품을 구상하는 머리 헝클어진 사람’ 정도가 아닐까. 구릿빛으로 그을린 작가의 얼굴은 상상하기 어렵다. 수많은 작가가 작가 지망생에게 늘 하는 말은 ‘무엇보다 엉덩이가 무거워야 한다’-즉 책상에 오래 앉아 글을 쓰라-는 충고인데, 이것만으로도 ‘소설가≠스포츠맨’이라는 공식이 딱 떠오를 것이다.

추리소설가라고 해서 특별히 다를 것은 없다. 특히 현대 추리소설의 선구자인 에드거 앨런 포의 잘 알려진 측면-알코올 중독에 가까운 폭음 탓에 불과 40세라는 아까운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만 보면 그를 스포츠맨으로 생각할 사람은 없을 것 같다. 흔히 눈에 띄는 그의 사진을 보면 나이보다 늙어 보이며(콧수염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체격 역시 작고 쇠약한 몸일 것만 같다.

스키를 즐기는 코난 도일 부부.

하지만 실제의 포는 그러한 이미지에서 크게 벗어난다. 키는 5피트 8인치(약 173㎝)로 아주 크진 않아도 당시 미국 성인 남자의 평균(5피트 5.5인치)을 상회했다. 또 문헌을 살펴보면 어린 시절부터 운동신경이 뛰어났던 것 같다. 15세 무렵 6월의 어느 더운 날, 리치몬드의 제임스 강을 약 12㎞나 헤엄쳐 거슬러 올라갔을 정도로 수영 실력이 뛰어났다. 또 2년 후인 1826년 버지니아대학에 들어갔을 때 넓이뛰기 기록이 약 6m로, 그와 비슷한 거리를 뛴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놀랍게도 이 기록은 70년 후에 열린 1회 아테네 올림픽의 넓이뛰기 은메달리스트의 기록과 비슷하다(당시 금메달 기록은 6.35m). 물론 대학의 체육시간이었으니만큼 정밀한 측정은 없었겠지만, 특별한 훈련을 받지도 않았던 것을 감안한다면 포의 뛰어난 운동신경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대학을 중퇴하고 19세에 군에 입대해 2년 만에 상사로 진급했으며, 제대 후 입학한 육군사관학교에서도 성적이 좋았던 것을 보면 머리뿐만 아니라 육체적인 면도 보통 사람 이상이었음에 틀림없다. 다만 명령 불복종으로 퇴학당한 것이 옥의 티였는데, 그에게 독특한 성격이 없었다면 소설가 대신 유명한 군인이나 운동선수로 이름을 날렸을지도 모른다.

한편 포보다 반세기 정도 늦게 태어났지만, 불후의 명탐정 셜록 홈즈를 탄생시킨 코난 도일 역시 스포츠를 즐긴 작가였다. 약 185㎝의 큰 체격을 가진 그는 축구팀에서 골키퍼로 뛰었으며, 40대의 나이에도 수준급 크리켓 선수로 활약했다. 또한 나이가 들어서도 스키, 골프, 사냥 등 다양한 운동을 즐긴 스포츠맨이었다.

(왼쪽부터) 펠레의 작품 <월드컵 살인자>(The World Cup Murder).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의 <토털 존>(Total Zone) 광고. 찰스 바클리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만화 <찰스 바클리 경과 심판 살인자>(Sir Charles Barkley and the Referee Murders).

추리소설가로 성공한 장애물경마 기수
운동을 취미로 즐겼던 이들과는 달리 운동선수 출신이면서 추리소설가가 되어 성공한 사람이 있다. 평생 경마 관련 미스터리를 발표했던 딕 프랜시스는 그의 작품 소재에서 짐작할 수 있듯 전직 장거리 장애물 경마(Steeplechase) 기수였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기수였던 그는 5세 때부터 조랑말을 타면서 승마에 익숙해졌으며, 15세가 되자 아예 학교를 그만두고 기수를 목표로 삼는다. 제2차 세계대전 때 공군으로 복무를 마친 그는 프로 기수가 되어 10여년간 2305경기에 출전, 345회 우승을 거둔 뒤 은퇴했다. 그는 경마 조교가 되는 대신 경마 담당기자로 활동을 하다가 아내의 조언으로 추리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결과는 대성공. 매년 100만 부 판매가 보장되는 인기작가가 되었으며 영국추리작가협회 회장을 역임하는 등 그가 추리소설계에 남긴 발자취는 뚜렷하다.

20세기 프로 스포츠가 번성하면서 유명 선수의 작품도 눈에 띈다. 먼저 축구계를 살펴보면 펠레가 있다. 요즘은 축구평론가로서 항상 빗나가는 예측 때문에 ‘펠레의 저주’로 유명하지만, 네 차례 월드컵에 출전해 세 번이나 우승한 경력은 그를 세계 최고 선수 반열에 올려놓기에 충분하다. 이 ‘축구황제’ 펠레는 1988년 추리소설가 허버트 레즈니코우와 함께 <월드컵 살인자>(The World Cup Murder)라는 추리소설을 발표했다. 미국 월드컵 결승전. 미국과 동독의 경기(불가능해보이지만 소설이므로)가 벌어지는 도중, 미국 프로축구팀 구단주가 살해되자 주인공인 스포츠 기자 마커스 아우렐리우스는 결승전이 끝나기 전에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마커스는 미식축구와 프로야구를 다룬 작품(이 역시 유명 선수들과 레즈니코우의 합작)에도 등장한다.

20세기 후반 세계 여자 테니스의 여왕이었던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는 은퇴 직후 리즈 니클스와 함께 <토털 존>(Total Zone 1994), <브레이킹 포인트>(Breaking Point 1996), <킬러 본능>(Killer Instinct 1997) 등 세 편의 추리소설을 발표했다. 전직 프로 테니스 스타인 조던 마일즈가 아마추어 탐정으로 활약하는 시리즈물이다. 소설이 아닌 만화에서는 유명 선수가 탐정 역할도 한다. 1980년대부터 1990년대 후반까지 미 프로농구(NBA)에서 활약했던 찰스 바클리는 <찰스 바클리 경과 심판 살인자>(Sir Charles Barkley and the Referee Murders 1993)에 등장, 경기 도중 자기를 퇴장시킨 심판이 살해되자 사건 해결에 나선다.

박광규의 미스터리 산책

스포츠 경기에서 접전이 벌어지면 자신도 모르게 손에 땀이 나곤 한다. 이런 때문인지 야구팬들은 팽팽한 상황에서 흔들리는 구원투수에게 ‘작가’라는 호칭을 붙여주는데, 설마 이 ‘작가’가 순문학 작가나 시인은 아닐 터이고, 서스펜스가 넘치는 작품을 쓰는 추리소설가임에 틀림없다. 어느새 추리소설가는 스포츠와 매우 밀접한 관계가 되어버린 것이 아닐까.

<박광규 추리소설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