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창선의 눈]약자의 눈물, 강자의 정의

정의란 강자의 이익일 뿐인가. 플라톤의 <국가> 1권을 보면 정의란 무엇인가를 둘러싸고 소크라테스와 다른 인물들이 벌이는 대화가 나온다. 소피스트 철학자 트라시마코스는 권력을 가진 자들은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기 때문에, ‘올바름’이란 더 강한 자의 이익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어떤 기술이나 통치도 그 시혜나 다스림을 받는 약자들에게도 이익이 되는 것이니, 강자의 이익일 수만은 없다고 반론을 편다. 두 사람의 논쟁은 소크라테스의 승리처럼 끝난 것으로 플라톤은 서술하고 있지만, 막상 그 이후 인간의 역사를 보면 현실은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정의란 것이 결국은 강자의 이익을 위한 것 아닌가라는 트라시마코스의 질문은 역사 속에서 내내 계속되어 왔다. 플라톤은 지성을 갖춘 입법자가 만든 ‘최선의 법률’에 모든 사람이 복종할 때 이상적 법치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보았지만, 언제나 법을 만들고 해석하는 것은 강자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법치를 통한 ‘지성의 배분’은 실현되지 못한 이상이었다.

2014년 대한민국, 대법원은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이 낸 해고무효 확인 소송에서 사측의 정리해고는 적법했다며 원심을 파기했다. 6년을 버텨온 해고자들의 복직의 꿈은 무산되었다. 해고자 이창근과 김정욱이 복직을 요구하며 평택공장 굴뚝에 올라갔지만 복직은 이뤄지지 못한 채 내려와야 했다. 올해 2월, 대법원은 KTX 해고 여승무원을 한국철도공사 소속 직원으로 볼 수 없으며, 불법파견이 아니라는 판결을 내렸다. 역시 원심을 깬 이 판결에 따라 10년을 기다려왔던 여승무원들의 복직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법은 결코 약자를 보호해주거나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지 않았다. 정의와 법의 여신 디케(Dike)의 왼손에 있는 저울의 추는 강자에게 기울어 있고, 그 오른손에 있는 칼은 약자를 향하고 있다. 이 사회의 약자들이 쫓겨나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에서조차 버림받았기에 그들에게는 더 이상 갈 곳이 없다.

마침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년째가 되고 있다. 세월호의 눈물은 현재 진행형이다. 유족들은 조속한 세월호 인양 결정을 호소하고 있지만 정부는 아직껏 답이 없다. 사랑하는 아들 딸들이 왜 그렇게 죽어야 했는가를 가리기 위해 만들어진 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는 여당 쪽 추천위원들의 방해와 정부의 소극적 태도 속에서 가동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그 아픈 죽음들 앞에서 지난 1년 동안 이 나라의 권력이 보여왔던 표리부동한 모습은 적어도 내 눈에는 ‘악마의 정치’로 보였다. 자식 잃은 부모들이 얼마나 더 죄인처럼 무릎을 꿇고 빌어야 하는가. 이렇듯 약자의 눈물을 닦아주지 않는 사회, 이곳에 사는 약자들에게는 정의란 강자의 이익일 뿐이다. 적어도 이 땅에서는 소크라테스가 틀렸고 트라시마코스가 맞았다.

강한 사람들은 옳게 살지 않아도 잘만 사는데, 약한 사람들은 아무리 옳게 살아도 잘살기 힘들다는 체념과 절망이 굳어진다면 그 사회는 죽은 사회가 될 수밖에 없다. 마이클 샌델은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사회가 정의로운지 묻는 것은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 이를테면 소득과 부, 의무와 권리, 권력과 기회, 공적과 영광 등을 어떻게 분배하는지 묻는 것이다. 정의로운 사회는 이것들을 올바르게 분배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어떠한가. 그 소중한 것들이 나누어지고 있는가. 힘이 없다는 이유로 소중한 것을 누려볼 기회조차 박탈당하고 있지는 않은가. 권력도 법도 정치도 그것을 바로잡지 않는다. 그래서 되묻는다. 대한민국에서 정의란 무엇인가, 그리고 정의는 누구의 것인가. 우리가 묻고 답을 찾아야 한다.

<시사평론가>

유창선의 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