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수의 길 위에서 듣는 음악]글렌 굴드가 연주하는 바흐의 푸가

바흐의 곡을 들을 때 어김없이 빠지지 않는 연주자는 글렌 굴드다. 토론토에 있는 그의 묘비에 바흐 푸가 음악의 정수가 되는 ‘골트베르크 변주곡’의 아리아가 각인되어 있을 정도로 그는 바흐를 사랑하였고, 아마도 바흐가 살아 있었더라면 그 역시 굴드를 사랑했을 것이다.

월요일 아침 9시10분.

이 정도 시간이면 온몸에 달라붙은 ‘월요병’ 증세들을 이겨내고 새벽같이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한 사람들이 대도시의 주요 간선도로를 임시 점령하였다가 대부분 빠져나간 다음이다. 올림픽대로도 뚫리고 내부순환도로의 주요 병목지점도 풀린 상황. 그러나 여전히 꽉 막혀 있다. 왜? 서부간선도로니까!

그렇다. 이 도로는 특정한 병목구간이 있는 게 아니라 성산대교에서 서해안고속도로에 접어드는 구간 전체가 병목이며 심야와 새벽이 아닌 다음에야 언제나 지체와 정체상태에 속박된 도로다. 차는 고척교를 지나 안양교, 광명교, 철산교를 벗어날 때까지도 앞차의 꼬리를 물고 서행한다. 그러다가 금천교를 지나고 시흥대교를 벗어나면서부터 속도가 붙는다. 차들은 내가 운전하는 차까지 포함하여, 서해안고속도로에 올라서는 순간부터 시속 80㎞를 넘기고 곧 100㎞ 구간을 오르내린다. 나는 비봉 IC를 지향하면서, 이 월요일 아침의 질주가 흡사 바흐의 푸가 음악과 같다고 생각한다. 나는 바흐의 건반음악을 아침에, 특히 월요일 아침 시간대에 자주 듣는다.

푸가는 서양 클래식이 르네상스를 거치고 30년 전쟁까지 치른 이후에 비로소 어엿한 성년이 되는, 바로크 시대를 풍미한 양식이다. 하나의 주제가 제시되면 이를 여러 성부 또는 여러 악기가 일정한 패턴으로 모방하고 반복하면서 전개되는 양식이다. 선행한 주제를 뒤따르는 선율들이 확대, 축소, 조바꿈, 역행, 순환 등의 다양한 조합으로 현묘하게 변주해 나간다. 음표들은 고속도로 위의 자동차들처럼, 미시적 국면에서 속도를 더하거나 줄이고 차선을 바꿔가면서 자율적으로 움직이지만 총체적인 차원에서는 결국 오선지 위에 풍요로운 변주와 아름다운 조화로 귀결된다.

피아노를 연주하는 글렌 굴드 | 위키백과

고속도로 위 자동차 같은 음표들
이 푸가 양식은 15세기의 오케켐 같은 르네상스 작곡가들로부터 연원된 것이지만, 바로크 시대에 이르러 최고의 양식적 완성을 보았고 그 정점에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이나 ‘푸가의 기법’ 같은, 한 시대 예술양식의 전범이 되는 곡들이 존재한다.

바흐의 곡을 들을 때 당연히 칼 리히터, 구스타브 레온하르트, 타티아나 니콜라예바, 에드핀 피셔 같은 유럽의 거장들을 마치 푸가의 스타일처럼 뒤섞어 가면서 듣지만, 이 기나긴 목록에 어김없이 빠지지 않는 연주자는 글렌 굴드다. 토론토에 있는 그의 묘비에 바흐 푸가 음악의 정수가 되는 ‘골트베르크 변주곡’의 아리아가 각인되어 있을 정도로 그는 바흐를 사랑하였고, 아마도 바흐가 계속 살아 있었더라면 그 역시 굴드를 사랑했을 것이다.

글렌 굴드는 흔히 ‘괴짜’라는 수사로 먼저 언급되는 캐나다 출신의 피아니스트다. 결벽증이 심해서 사람들과 악수도 잘 하지 않았고, 병원은 온갖 세균들의 창고라고 여겼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날 때에도 그는 병원에 가지 못한 채 전화로 어머니와 대화를 나눴을 정도다. 바로 그 어머니가 선물한 의자를 그는 평생 사용했다. 그와 관련된 사진과 영상들을 보면 초등학교 아이들이나 앉을 만한 작고 낡고 약간 기우뚱한 나무의자에 앉아 연주를 하는 글렌 굴드의 필사적인 집착을 볼 수 있다.

그런 그가 수많은 변수들이 작동하는 공연장의 관습을 경멸한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는 50년대에 최고의 공연장 스타였다. 그가 처음 데뷔했을 때, 관객들은 인터미션(중간 휴식시간) 때 천재가 나타났다는 소식을 전하러 연주회장의 몇 대 없는 공중전화 앞에 길게 줄을 섰다. 그랬는데 그는 32살 때 일체의 공개연주를 취소하고 은둔에 들어간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인생의 최고 절정기가 되는 30대에 공연장을 떠나서 자택과 녹음 스튜디오로 스스로를 유배시킨 글렌 굴드는 그로부터 20여년 동안 극단적인 자폐적 상황을 만든 후 불멸의 녹음 연주만 수백 번 수천 번씩 반복하였고, 그 녹음들 중에서 먼지 하나 없고 티끌 하나 묻어 있지 않은 최상의 녹음만 따로 엄선하여 몇 장의 앨범을 남기고는 세상을 떠났다.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늘 혼자서 보냈다. 그건 내가 비사교적이기 때문이 아니고, 예술가가 창조자로서 작업하기 위해 자아 규제, 곧 사회로부터 자신을 절단시키는 한 방식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그는 말했다. 다시 말해 글렌 굴드는 그 무슨 결벽증 때문이 아니라 불멸의 기록을 위하여 스스로를 유폐시켰던 것이다. 1962년에 ‘박수를 금지하자!’는 글을 쓸 정도로 그는 기존 클래식 문화의 진부한 관습에 환멸을 느꼈던 사람이다. <오리엔탈리즘>의 저자이자 클래식 음악을 통해 근대 서구 이성의 이면을 들여다본 에드워드 사이드는 글렌 굴드에 대해 “오랫동안 전승해온 ‘부르주아 음악문화’에서 평지돌출한 진정한 아웃사이더”라고 평가했다.

반면 김우창은 “좀 이상하게 친다”고 말한다. 대담집 <세 개의 동그라미>에서 김우창은 “우리 집 식구는 베토벤을 좋아해서 많이 듣는데, 피아니스트는 빌헬름 켐프 같은 사람을 좋아합니다. 나도 좋은 것 같아요. 그런데 좀 이상하게 치는 사람도 있어요. 글렌 굴드니 이런 사람은 개성적이라고 그러는데, 이상하게 치는 사람은 안 좋은 것 같아요”라고 말한다.

김우창과 김갑수 사이의 글렌 굴드
이 발언은 얼핏 듣기에 음악 애호가의 인상비평 같지만, 그러나 내게는 매우 복잡하고 의미 있는 생각을 던져주는 말이다.

김우창이 스스럼없이 말한 ‘집 식구’는 영문학자 설순봉이다. 50년대에 서울대 영문과를 다닌 음악평론가 이백천은 “누군가가 지은 별명이 ‘하나님의 딸’이었다. 약간 고개를 숙이고 책을 껴안고는 조용한 발걸음으로 캠퍼스를 걸었다. 설순봉 하나만을 놓고 본다면 대학이 아니라 수도원이었다”고 회고한다. 근대 조선의 명문가 자제로 외국 유학까지 다녀온 영문학자라면 그 내면에 흡착된 ‘교양문화’에 대한 도저한 몰입을 짐작할 수 있다. 김우창은 더 말해 무엇하랴. 특유의 ‘심미적 이성’론으로 한국 사회의 정신적 고양과 이성적 지평을 넓힌 대표적인 석학이다. 이런 분들이 빌헬름 켐프 같은 유서 깊은 독일 문화권의 적통을 잇는 연주자들을 즐겨 듣는다는 것은 한국 사회의 교양문화가 어떤 지향을 해왔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한국의 근대성, 그 정신적 풍경의 일면을 보여주는 대담이거니와 물론 이를 하나의 사회적 풍경으로 전경화하려면 좀 더 풍성한 학술적 자료와 사회적 지표가 필요하다.

한편 이런 글도 있다. 문화평론가로 잘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그 이전부터 시인이었고, 또 그 오래전부터 이 나라의 클래식과 오디오계에 초절정 고수로서 방대한 컬렉션과 독특한 감식안으로 유명한 김갑수가 있다. 그는 광풍처럼 유행하고 있는 텔레비전의 서바이벌 프로그램, 특히 박진영 같은 사람이 어린 친구들을 매섭게 몰아치는 프로그램을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그는 언제나 가르치려 든다. ‘공기 반 소리 반’이어야 한다는 명언을 했다. 윽박지르는 광경도 여러 번 봤다. 그런 발성에 적합한 성대를 타고난 사람도 있겠지만 전혀 다른 호흡으로 노래하는 가수의 매력은 뭐란 말인가. 고함치듯 빽빽 내지르는 밴 모리슨이나 신경질적으로 울부짖는 로버트 플랜트에게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은 그들의 호흡법 때문이 아니라 생겨 먹은 대로 내지르는 자유로움 때문이다.”

그러면서 김갑수는 박진영에게 글렌 굴드를 들어보라고 권한다. 관습, 규칙, 예의, 이런 진부함으로부터 좀 벗어나자는 얘기다. “굴드는 피아노 터치의 모든 정석을 다 깨버리고 그야말로 제멋대로 연주한 인물이다. 모든 뛰어난 연주와 노래는 ‘이렇게 하라’는 정석과 통념을 벗어나면서 시작된다.”

인문교양의 최고 수준을 지향하여 이로써 한국 사회의 낡은 근대성을 벗어나고자 했던 도저한 인문주의자 김우창의 인상평, 즉 ‘좀 이상하게 치는 사람’ 글렌 굴드는 바로 그 인문적 교양의 세례를 폭포수처럼 받으며 성장한 그 아랫세대에게는 기성의 관습과 권위에 도전하는 아이콘이 되기도 한다.

정윤수의 길 위에서 듣는 음악

나는 다시 차선 위에 있다. 푸가의 음표들처럼 움직이는 차들을 본다. 나는 김우창과 김갑수 사이에서 글렌 굴드를 다시 듣는다.

<한신대 정조교양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