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미의 공감 스토리텔링]사람을 죽이는 일, 사람을 살리는 일

심동섭. 그는 내가 아는 성인 남성 중에 가장 개구쟁이 같은 소리로 웃는 사람이다. 웃음소리만으로도 상대방을 웃게 만드는 재능을 가진 사람. 59년 부산, 넉넉지 않은 형편이었지만 마음만은 넉넉하여 베푸는 데 인색함이 없는 부모님 아래서 자랐다. 서울로 유학 가기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자식 뒷바라지에 헌신적인 부모님을 보며 공부에 매진했다. 스물셋, 고려대학교 법대를 졸업하던 해에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순탄한 삶을 살았다. 88년 2월 서울남부지청에서 검사생활을 시작해서 수원지방검찰청 부장검사를 지내고, 2006년 서울고검에서 18년간의 검사생활을 마쳤다. 중앙대 법대 겸임교수를 거쳐 같은 길을 걸은 선배들처럼 변호사 생활을 시작했고, 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쌓아 온 경력만으로도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다. 국내 10대 로펌 법무법인 로고스 파트너 변호사로 소위 ‘가장 잘나가는’ 변호사 생활을 하던 어느 날, 내 삶이 창피하고 치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23세에 사법시험 합격하고, 평생을 평탄하게 살았어요. 사실, 대한민국에서 법조인처럼 혜택을 많이 받는 사람도 드물죠. 내가 누린 혜택과 행복은 사회에 빚을 진 것인데, 나는 빚을 갚았나? 너무 양심에 찔렸어요. 나는 명예와 권력을 다 누리고 돈도 꽤 벌었지 않았나? 그런데 밖에 나와서도 그 명예와 권력을 토대로 또 돈을 벌고 있다는 게 너무 창피해서 견디기 힘들더라고요. 그때부터 ‘어떻게 갚을 것인가’를 고민했어요.”

소망교도소에서는 수용자들을 대상으로 기초인성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사진은 인성교육의 한 장면. | 박상미

보통 자신이 쌓은 명예와 권력을 토대로 돈을 ‘더’ 벌고 싶어하지 않나요.
“어려운 가정에서 자랐지만 돈 욕심은 없었습니다. 부모님 영향이겠지요. 변호사 할 때도 돈이 목적은 아니었어요. 검사 시절에 가진 자들의 재산싸움을 지겹도록 많이 봤어요. 부모가 재산 물려주면 자식끼리 돈 때문에 싸우고…. 다음 세대에 돈을 물려주는 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정말 잘사는 게 뭐냐? 내 자식에게도, 이 나라 젊은이들에게도 그걸 알려주어야겠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하고 있었어요. 그래, 젊은이들을 가르치자. 정신적 엘리트 교육을 하자. 정신문화가 바탕이 안 되면 민주주의, 경제강국 다 소용 없는 거 아닌가? 내가 하자. 정신적 리더를 내가 양성하자. 그게 혜택 받은 사람으로서 내게 주어진 마지막 의무라고 생각했어요. 그 일을 하기 위해선 내가 공부를 해야 했고, 신학을 택했어요.”

50대 중반에 박사과정에 들어가서 공부하기란 쉽지 않은 일인데요.
“공부를 하면 실수를 덜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시행착오와 경험을 배우기 위해서 공부를 하는 거지요. 신학 안에서도 인간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죠.”

신학 공부를 하던 변호사가 갑자기 소망교도소 소장이 됩니다. 짧은 기간에 드라마틱한 인생의 변화가 많으셨어요.
“나도 내가 교도소장이 되리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어요.(웃음) 서울고등검찰청에서 부장이 됐을 때, 20년차 대선배님들과 기도모임을 했어요. 촌놈이 지방에 있다가 서울 오니까 선배들 시키는 대로 기도도 하고, 심부름도 하고…. 그때 민간교도소의 필요성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어요.”

민영교도소에 대해 관심이 생긴 거군요.
“나는 관심 없었어요.(웃음) 선배 검사들이 말씀하시니까 무서워서 열심히 들었죠. 검사생활 끝낸 뒤로는 ‘언젠가 민영교도소가 설립되겠지’ 하는 생각만 가끔 했고, 큰 관심이 없었죠. 소망교도소 설립 때 전문위원으로 참여했지만 소장으로 올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어요. 2010년에 선배님들이 주축이 되어 아시아 최초의 민영교도소가 설립되었을 때도 박수 많이 쳐드리고,(웃음) 저는 여전히 돈 열심히 벌었죠. 그런데 교도소 운영이 어렵다고 선배들이 저를 잡고 걱정을 늘어놓으시는 거예요. 교도소장이 교정전문가가 아니다 보니 법무부와 연결도 자연스럽지 못해서 전문가가 꼭 필요하다고… 계속 걱정을 하시기에 저도 같이 걱정해드렸죠. 좋은 사람 빨리 구하시라고. 그런데 제가 끌려오게 됐어요.(웃음)”

교도소장으로 가장 적합한 교정전문가로 낙점이 되신 거네요.
“대선배들이 오셔서 ‘너 더 큰일을 해라. 죄인들을 교화시키는 일이 먼저다’ 하시면서 제 아내한테 저를 교도소장으로 보내달라고 큰절을 하고 그러시니까(웃음) 저도 아내도 어쩔 줄을 몰랐어요.”

민영교도소 월급은 국영교도소의 70% 정도밖에 안 된다고 하던데, 그때 가족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다행히 우리 가족들도 돈 욕심이 없습니다. 아들도 반듯하게 잘 자라서 아버지 원하는 일이라면 가시라고 했어요. 아내는 가서 민영교도소가 정착할 때까지 일하고 돌아오라고 했죠. 아마 1~2년이면 될 거라고 생각했나 봐요.(웃음) 저도 그랬구요.”

법무부와 협력이 필요한 부분, 수용자들과의 친화적 교류, 인성교육 프로그램 개발 등 모든 분야에서 민영교도소를 이끌 적임자라는 평가를 받고 계십니다.
“교도소의 목적은 두 가지예요. 죄 지은 사람을 잘 가두고, 안전하게 관리 잘해야 되죠. 그리고 사회화 교육을 잘 시켜야 해요. 재교육을 잘 시켜서 사회로 복귀시켜야죠. 이때까지의 교도소는 재사회화 교육은 시간 남고 여력이 되면 하는 것쯤으로 생각했어요. 시간 남으면 하겠다고 생각하면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두 가지가 함께 가야죠. 국가는 아무래도 처벌에 중점을 두게 마련입니다. 좋은 교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운용하는 사람이 사랑을 가지고 수용자를 대해야 합니다. 그런데 공무원을 뽑을 때 사랑을 측정하진 않잖아요? 국가 시스템상 한계가 있는 거죠.”

소망교도소 심동섭 소장 | 박상미

국영교도소보다 월급은 적은데 직원들에게 요구사항은 무척 많더군요. 실력, 인성, 사명감, 사랑 등등.
“전 세계에 사람을 살리겠다는 교도소는 우리밖에 없습니다. 교도소의 운영철학부터 프로그램까지 인성교육에 치중합니다. 우리나라 교도소의 안전 문제는 세계 최고수준입니다. 우리 교도소는 담이 낮지만, 0%에 가까울 정도로 사고가 없어요. 수용자들을 인격적으로 잘 대해주고 사회화 교육 잘 시켜주면 잘 참고 잘 배우며 잘 견딥니다. 국민을 위하는 최선의 길은 재범률을 낮추는 것이에요. 범죄자 한 명을 위한 사회적 비용이 얼마나 큰지 아세요? 국영교도소에서 1명 관리하는 데 1년에 2300만~2400만원의 비용이 듭니다. 범죄자가 한 사람 줄어들면 피해자의 피해도 줄이고, 수사비용, 검찰 유지비용, 재판비용, 민사소송 비용 등을 줄일 수 있어요. 범죄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150조가량 됩니다. 우리 GNP의 절반에 가까운 비용이죠. 죄인을 한 사람 줄이면 사회적 비용을 엄청나게 줄일 수 있어요. 범죄를 줄이면 국민의 행복지수도 높아질 수밖에요. 사랑, 관심, 애정을 주어야 그들을 변화시킬 수 있어요. 직원들의 자질은 매우 중요합니다. 실력과 인성, 사명감을 다 갖추어야 합니다. 그래서 직원들과도 대화를 많이 해야 합니다.”

수용자들을 재사회화시키려면 교정정책을 전환하는 게 가장 중요하겠군요.
“공무원들은 규칙·규율대로 가두는 건 잘해요. 하지만 규율 잘 지키는 사람들이 여기 왔겠어요? 공무원 시험에서 사랑을 측정할 수 없고, 공무원 체제 또한 그걸 할 수 있는 체제가 아닙니다. 그래서 ‘민영교도소를 만들자. 기존 교도소 시스템에서는 불가능하다. 새로운 교도소를 만들어서 교화 혁신을 이룩하자’는 의견이 검사들 기도모임에서 나온 겁니다.”

민영교도소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정부에서조차 민간인이 교정업무를 잘할 수 있을까 걱정이 컸다고 들었습니다.
“통제가 되겠는가, 폭동이라도 일어나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불안감이 많았지요. 선입견을 없애는 게 가장 힘들었어요. 기금과 사람을 힘들게 모으고 나니, 지역주민들이 반대하고 일어났죠. 교화를 잘하는 세계적인 교도소를 만들면 여주의 명성 또한 높아질 것이라고 설득했어요. 지금은 주민들도 반응이 나쁘지 않아요.”

성인 대안학교로 불릴 정도로 인성교육, 기술교육, 심리치료, 재사회화 교육이 잘 이루어지고 있는 교도소로 소문이 났습니다. 어떤 기준으로 수용자를 선발하시나요.
“우선 본인의 자원을 받습니다. 정부에서 2배수를 뽑으면 저희가 면접을 통해서 최종 선발합니다. 중요한 기준은 수용자의 ‘변화 의지’예요. 다른 교도소보다 강력범죄자 비율이 두 배 이상 많지만, 재범률은 매우 낮아요. 성범죄자는 재수감률이 가장 높습니다. 저희 교도소에서 출소한 성범죄자 중 지금까지 단 한 명도 재범이 없고, 다른 출소자들의 재수감률이 현저히 낮습니다. 경이로운 기록이에요. 출소하면 교도소가 있는 방향은 쳐다보지도 않는다고 하지만, 이곳은 출소 후에도 교도소에서 자원봉사하고 싶다는 사람들이 꽤 있어요. 그럴 때 우리 직원들은 큰 보람을 느낍니다.”

2010년에 아시아 최초로 세워진 민영교도소, 중간평가를 하자면 어떻습니까.
“원래 교도소의 출발은 민영이에요. 외국에선 상당히 발달돼 있죠. 국가가 형벌권을 확보하고 법을 집행하는 건 바람직하지만 교화가 잘되지 않아요. 출소하고 사회에 복귀한 수용자들이 더 악해진다는 보고도 있죠.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의 전 법률보좌관 찰스 콜슨이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복역할 때, 여생을 재소자들을 위해 보내겠다고 결심하고 기독교 신앙의 힘으로 재소자를 변화시킨 브라질 휴마이타 교도소를 모델로 삼았어요. 우리도 그 영향을 받아서 설립된 민영교도소이지만, 사람을 살리는 인성교육 프로그램을 많이 개발하고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체계적인 교육을 해 나가는 수준은 매우 높습니다. 인성교육 교도소는 세계에 몇 개 없어요. 특이한 실험이고 우리 교도소가 가장 앞서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일본, 미국 등 선진국은 물론 개발도상국에서 우리의 프로그램을 배우러 옵니다.”

민영교도소, 운영이 어렵지는 않나요.
“민영교도소는 국영교도소 예산의 90% 정도밖에 지원받지 않아요.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려면 비용이 많이 듭니다. 정부 지원 경비는 전액 인건비에 쓰이고 민간 후원금은 교육·교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시설을 확충하는 데 써요. 정부는 민영교도소 경쟁체제 도입을 서둘러야 합니다. 효율적인 민영교도소가 확산될 수 있도록 임대료 등을 보장해줘야 합니다.”

교도소가 자리 잡힐 때까지 1~2년만 근무하시는 게 사모님과의 약속이었는데, 2011년에 부임하셔서 오늘까지 계십니다. 왜 안 가고 계속 계시나요.(웃음)
“이제 변호사 업계로 돌아가는 것도 두렵구요.(웃음) 반대하던 아내도 1~2년 지나면서 신학 공부를 시작했어요. 이제 반대도 안하고 저와 함께 서초동에 작은 양병교회를 세웠어요. 저는 신학박사 공부하며 교도소 일에 집중해야 하니까 주일 설교만 하고, 아내가 목회를 주로 합니다. 청년들이 많아요. 원래 꿈꾸었던 일도 그 교회에서 싹을 틔우고 있어요.”

하루도 쉬는 날 없이 교회, 학교, 교도소를 오가고 계세요. 공부는 그만하셔도 되지 않나요.
“수용자들을 잘 가르치려면 신학 중에서도 인간에 대한 공부를 하는 게 큰 도움이 됩니다. 인간이 어떻게 변화하는가, 종교가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나… 공부를 쉬면 안돼요. 교정학 공부도 해야 합니다. 사람을 살리는 게 말로만 되겠어요? 외국의 교도소도 우리보다 잘하는 게 있다면 가서 보고 배워야 하구요.”

오늘 집중인성교육에 들어갔더니, 출소를 앞둔 수용자들이 출소 직전 ‘소장님과의 대화’ 시간이 가장 기다려진다고 하더군요.
“출소 전날, 우리는 꼭 만나서 얘기를 나눕니다. 고객만족도 조사를 해야죠.(웃음) 평소에도 매일 아침 수용동을 돌면서 수용자들과 대화를 많이 나누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지금의 선택을 후회하신 적은 없습니까.
“2011년 9월 20일, 부임한 첫날 신기한 경험을 했어요. 소장실 의자에 앉았는데 고압 전기가 흐르듯 등골이 찌릿했어요. 의자가 저에게 ‘너 왜 이제 왔어?’ 하는 소리가 들렸어요. 이게 내 자리구나… 생각했죠. 그래도 이렇게 오래 있을 줄은 몰랐어요.(웃음) 부임 2개월 후에 미국에서 90대 노목사님이 한 분 방문 오셨는데, 내 이력을 죽 보더니 나를 보고 무릎을 치면서 말씀하셨어요. ‘당신 정말 좋은 자리 왔군. 당신 이제까지 사람 죽이는 일 하더니 이제 사람 살리는 일 하는군!’”

사람을 살리는 교도소라는 말이 거기서 비롯된 것이군요.
“아… 내가 검사생활 하는 동안 사람 죽이는 일 하다가, 이제야 사람 살리는 일 하러 왔구나! 내 임무구나! 내가 여기서 사람을 살리지 못한다면, 어떻게 젊은이들을 키우겠나? 개똥 같은 소리를 했구나…. 사실 죄인들은 마음이 가난한 사람입니다. 자책하는 사람들이에요. 지푸라기라도 잡고 인간답게 살고 싶다고 절규하는 이들이랍니다. 조금만 손잡아주면 변해요. 이곳에 있는 젊은이들을 살려야 밖에 있는 젊은이들도 살릴 수 있겠죠. 우리는 소년교도소도 세울 겁니다. 청소년들을 범죄에서 살려내는 일을 앞으로 해야 합니다.”

유쾌한 웃음과 함께한 인터뷰를 마친 후, 조평구 교도관(상담목사)의 차를 타고 여주 시내로 나오는 길. 출소자가 조평구 목사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출소 후에 조 목사와 같은 교회에 다니며 봉사를 시작했다는 그는, 월급을 받았는데 가족이 없는 수용자들을 위해 후원금을 입금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놀랐으나 조 목사는 놀라지 않았다. 흔히 있는 일이라는 것.

박상미의 공감 스토리텔링

‘이제야 사람 살리는 일 하러 왔구나!’ 하며 무릎을 쳤던 미국인 노목사와 심동섭 소장의 얼굴이 오버랩 되는 순간이었다.

<박상미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