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통일운동 ‘새 버전’이 필요하다

기존의 담론 국민 실생활과 동떨어져…

민족주의 관점에서 발전 보편적 가치 주장해야

“흡수통일은 보수진영의 국시처럼 되고 말았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이명박 정부 이후 보수진영의 통일담론에 대해서 이렇게 표현했다. 지난해 10월 경실련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발표한 <대안적 통일론과 새로운 통일운동>이라는 글에서였다.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대박론’과 최근 통일준비위원회 내 ‘흡수통일팀’ 설치 논란 등 정부가 북한에 대해 강경한 기조를 내세울 수 있는 배경에는 북한 및 통일에 대한 인식이 갈수록 보수화된 흐름이 있다. 정욱식 대표는 보수화된 원인을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북한의 핵무장과 열악한 인권상황, 연평도 포격 등 도발적 언행, 그리고 3대 세습으로 대표되는 퇴행적인 선택과 남한의 경기침체 및 양극화 같은 민생 위기가 겹치면서 국민들, 특히 젊은 세대의 통일에 대한 관심이 갈수록 떨어지고 북한에 대한 혐오감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보수진영의 북한 악마화 및 희화화, 학교·군대·사회 현장에서 반북 및 안보교육 강화, 비판세력에 대한 종북 사냥 등으로 더욱 심해지고 있다.”

보수화된 여론에 기댄 정부의 강경노선에 대해 개혁진보진영의 명확한 대응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진보 내에서는 기존의 민족주의적 관점을 넘어서는 새로운 담론이 아직 자리잡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진보진영 관계자는 “기존의 통일담론을 주도하던 흐름에는 국민의 실생활과 동떨어진 부분을 이야기하는 부분이 있었다. 사실 한·미동맹 해체 같은 기존의 이념적인 틀에 갇힌 주장에 대해 일반 국민들은 어색함을 많이 느낄 수밖에 없고, 공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비무장지대 내 판문점에서 군인들이 경계근무를 서고 있다. / 김창길 기자

‘탈분단’ 담론으로 젊은 세대 설득해야
통일담론에서 민족주의를 넘어선 새로운 담론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제기됐다. 권혁범 대전대 정치학 교수는 10년 전의 ‘통일운동’이 아니라 ‘탈분단’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권 교수는 “같은 민족이기 때문에 만나야 하고 대화해야 한다는 것은 젊은 세대에게 특히 설득력이 없다. 민족적 동질성을 완전히 무시할 수 없겠지만, 그보다는 구체적으로 통일을 통해 한반도의 주민들이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고, 평화가 정착되고 인권이 보장된다는 메시지를 전해야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실용적 관점에서 통일을 바라봐야 한다는 목소리는 시민사회에서도 나오고 있다. 홍명근 경실련 간사는 “물론 통일 문제에 대해 민족주의적 시각이 전혀 필요 없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간 시민단체가 민족주의적 감정에만 호소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런 지향점은 대중적 호소력을 상실한 지 오래다. 매년 여론조사를 보면 60대 이후를 제외하고 20대가 통일 문제에 대해 가장 보수화돼 있는 상황이다. 젊은층에게 통일이 남북경협에 기반한 일자리 문제나 군대 문제 등과 연관돼 있다는 실질적인 목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강상구 노동당 대변인은 통일이나 반전평화 문제와 관련해 ‘반미’ 구호가 사라진 것을 꼭 나쁘게 봐야 할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물론 ‘미제국주의’의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지만, 요즘은 이런 말을 잘 쓰지 않는다. 왜냐하면 제국주의라는 말은 한마디로 한국이 식민지라는 말인데, 그것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게 너무 많다. 전시작전권 환수를 연기한 것은 한국 정부가 원해서 한 것이다. 이것도 한국 정부가 알아서 눈치를 본 것이니 식민지다라고 말할 수 없다. 미국의 금융자본들이 문제라고 하지만 동북아 금융허브를 내걸면서 금융자유화의 문을 연 것 또한 한국 정부다. ‘반미’ 구호만으로는 자본주의에서 진보가 해야 할 전략적 과제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반미’만으론 진보 전략적 과제 설명 못해
그런 만큼 민족주의적 관점에서가 아니라 보편적 가치를 통해 통일운동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박정은 참여연대 협동처장은 “기존의 통일운동이 민족지향적이었다면 평화운동은 좀 더 보편적인 가치에 기반을 두고 있다. 예컨대 민족주의에서 통일에 접근한다고 하면 우리가 강해지고 군사력이 튼튼해야 한다는 부국강병적인 입장으로 갈 수 있다. 그러나 평화운동은 한쪽이 군사를 강화하면 다른쪽도 강화해야 하기 때문에 안보딜레마에서 군축을 이야기하게 된다”고 말했다.

홍명교 내일보다 편집위원은 개인의 권리 문제로 평화권에 접근하게 되면 통일이 멀게만 느껴지는 문제는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당위적으로 통일을 말하면 일상의 삶을 살아가는 일반 국민들은 ‘먹고 살기도 바쁜데 통일이 나랑 무슨 상관이야?’라는 생각에 머물기 쉽다. 그러나 누구나 평화롭게 살 권리가 있다는 평화권 개념으로 통일이나 평화 문제에 접근하면 반전평화운동이 자신의 문제일 수 있다는 인식으로 나갈 수 있다. 물론 어려운 일이다. 반전평화운동은 치킨게임을 멈추고 군축을 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북한이 핵개발을 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군축을 하느냐는 문제가 남아 있다. 대중적으로 호소력을 갖는 운동이어야 힘을 갖는데, 어느 한쪽이 멈추지 않는 지금의 치킨게임으로 인해 대중적으로 피력할 수 있는 힘을 잃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직 보편적 가치에 대한 문화적 훈련이 안 되어 있기 때문에 이러한 평화운동의 접근방식은 확산이 더디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권혁범 교수는 “보편적인 가치라는 게 각 나라들의 특수성에도 불구하고 있는 건데,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보편적 가치 교육이 한국 사회에서 너무 없기 때문에 여전히 통일운동이 민족주의적인 흐름에서 진행되고 있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런 만큼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시민교육이다. 홍명교 편집위원은 “시민교육을 포함해 대중적인 여론을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우리가 잘은 모르지만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한반도의 평화 문제가 점점 위협받고 있는데 여기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부족하다 보니 둔감해져 있는 상황이다. 민족주의적인 통일도 중요하지만, 그건 먼 이야기로 느낄 텐데 ‘지금 나에게 전쟁이 없는 평화’라는 관점에서 이야기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