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나는 일을 못한다]실수 자주 하는 덜렁이를 위한 변명

많은 실수를 저지르면서 알게 된 것은 실수를 해도 대부분의 경우 만회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이었다.

오전 업무를 끝내고 나는 종종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곤 한다. 벌써 퇴근하느냐고 사람들이 묻지만, 오전 아홉 시에 퇴근할 리가 없다. 그럴 때 대체로 나는 집에 사무실 열쇠를 두고 온 것이다. 사무실 열쇠와의 악연은 끔찍한 수준이다. 코트를 오랜만에 바꿔 입고 출근했다가 집으로 돌아온 사건, 가방 안에 열쇠가 있다는 걸 까먹고 집으로 돌아가다가 버스 안에서 깨달은 사건, 실수로 사무실 안에 열쇠를 넣고 문을 잠갔는데 슬리퍼 차림으로 닫는 바람에 사무실에서 신는 슬리퍼 신고 퇴근한 사건까지.

그렇다. 나는 흔해 빠진 덜렁이다. 나는 페이스북 커버에 나를 매우 훌륭하게 설명하는 문장을 박아 놓았다. ‘앉으면 졸고/ 걸으면 넘어지고/ 먹으면 흘리고/ 들고 가면 쏟는다.’ 처음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초등학교 시절부터 이 아둔한 성격은 나를 규정해 왔다. 나는 준비물을 집에 두고 오고, 우유팩을 가방에 넣었다가 터뜨리고, 넘어지고, 넘어지고, 또 넘어지고, 남과 했던 모든 약속을 잊어버렸다. 아무리 정신을 바짝 차리고 집중을 해도 잊을 만한 것들은 끝내 잊혔고, 손에서 미끄러질 만한 것들은 결국 미끄러졌다.

처음 <주간경향>의 이 코너에 글을 썼을 때 누군가가 내가 쓴 글이 올라온 포털 게시물에 이런 댓글을 달았다. ‘저런 칠푼이도 취직을 하는데.’ 칠푼이라는 말이 매우 적확하게 어울리는 인간으로서 아마 칠푼이가 아닐 댓글 작성자에게 조금 미안한 기분이 들었다. 많이 고생하고 계실 텐데 칠푼이 주제에 제가 먼저 취직해서 죄송합니다. 그러나 칠푼이도 취직할 수 있는 세상이 좀 더 좋은 세상 아니겠습니까. 칠푼이도 우리 사회의 일원이니까요.

그러나 덜렁이로 살아가는 삶은 그리 마음 편하지 않다. 덜렁이는 무슨 일을 해도 도무지 자신을 신뢰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장부를 쓰면서도 겁을 먹고, 문서를 처리하면서도 겁을 먹고, 공문을 쓰면서도 겁을 먹는다. 혹시 내가 실수하면 어떡하지. 물론 나는 매사에 실수를 저지르지만 실수와 혼나는 상황이 익숙해진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러나 그 많은 실수를 저지르면서 알게 된 것은 실수를 해도 대부분의 경우 만회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이었다. 열쇠를 놔두고 오면 몸이 좀 고생을 해도 집에 갔다 오면 되고, 돈 계산을 잘못했으면 남은 분량을 통장에 도로 넣으면 되고, 장부를 잘못 썼으면 두 줄로 지우고 새로 쓰면 된다. 혼이야 나겠으나 어차피 덜렁이의 삶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차선책으로 수습을 능숙하게 하는 인간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할 수도 있는 것이다. 단, 이런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조건이 필요하다.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해서는 안 된다.

러시아에 한 엔지니어가 있었다. 그는 원자력 발전소의 부소장이었다. 어느 날 그는 발전소의 원자로 하나가 충분한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지 실험하는 과정에서 출력을 올리기 위해서 제어봉들을 제거했다. 서른 개였던 제어봉이 여섯 개로 줄어들었고 핵반응로는 끝내 증기의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폭발하였다. 86년 4월 26일, 체르노빌에서 있었던 일이다. 이 엔지니어의 이름은 아나톨리 댜틀로프다. 아무 생각 없이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간 이 덜렁이는 죽기 전에 체르노빌 사고의 원인에 대해 책을 냈다. 출력 자체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막상 원자로는 매우 불안정하게 설계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세상 어디에도 나 같은 구멍들은 존재한다. 그러나 세계가 멸망할 정도의 스케일이라면 다른 차원의 이야기이다. 죽은 사람을 다시 살려낼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덜렁이도 취직을 해야 하듯 덜렁이라는 상수가 이 사회에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고려하지 않을 수는 없다. 심지어 덜렁이가 아닌 사람들도 종종 실수를 저지르지 않던가.

그래, 나는 일을 못한다

다행히 아직까지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른 적은 없다. 사무실 책상 앞에 앉아 두려움에 떨거나 일을 저지르고 좌절하면서, 세상 여기저기에 산재해 있을 구멍들에 대해서 생각하곤 한다. 시스템을 만든다는 것은 단순히 효율을 극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숨어서 떨고 있는 덜렁이들을 상상하는 것이 아닐까. 어떤 덜렁이도 세상을 멸망 시킬 수는 없도록, 모두 함께 그 실수들을 만회할 수 있도록.

<이서영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