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경제]오마르-외부에 의해 금 간 우정, 극복할 수 있을까

개인은 국가라는 거시적 환경을 벗어날 수 없다. 경제위기를 맞은 국가에서 나홀로 행복하기는 어렵다. 분쟁 중인 국가는 말할 것도 없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에서는 일상의 삶조차도 사치스러울 수 있다. 사랑하는 연인과 단란한 가정을 꾸미고 싶다는 소박한 꿈마저도 말이다. 팔레스타인계 이스라엘인인 하니 아부 아사드 감독의 영화 <오마르>는 평범한 일상을 지키기 위해 ‘이중첩자’가 되는 청년 ‘오마르’ 이야기다.

오마르는 팔레스타인 제빵사다. 친구 ‘타렉’의 여동생인 ‘나디아’를 좋아한다. 그녀를 만나기 위해 수시로 8m 장벽을 오르내린다. 팔레스타인 청년들은 이스라엘에 대한 반감이 있다. 타렉과 오마르, 그리고 암자드도 그렇다. 세 명의 친구는 이스라엘 군부대를 습격한다. 이스라엘 비밀경찰은 오마르를 체포하고, 오마르는 친구 타렉을 잡아오는 조건으로 풀려난다.

오마르는 하루빨리 일상으로 돌아가 나디아와 가정을 꾸미고 싶다. 하지만 쉽지 않다. 이스라엘 비밀경찰은 거짓말을 흘려 자신과 친구, 그리고 세상을 이간질시킨다.

오마르는 감옥에서 출소하지만 이미 자신에 대한 신뢰가 무너져 있다. 주변에서는 ‘배신자’라고 비난하고 타렉과 암자드와의 관계도 예전같지 않다. 조직의 밀고자를 찾아내더라도 예전과 같은 ‘절친’이 되기는 힘들다. 서로에 대한 불편한 감정들이 이미 쌓였다.

외부적인 힘에 의해 어떤 물질의 성질이 변화된 뒤, 그 변화의 원인이 제거됐음에도 본래의 상태로 되돌아가지 않는 현상을 물리학에서는 이력효과(hysteresis)라 부른다. 예를 들어 쇠붙이에 자기장을 가해서 자성을 띠도록 만든 뒤에 자기장을 제거해도 쇠붙이는 여전히 자석 성질을 가지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력효과는 경제학에 차용됐다. 1970년대 오일쇼크로 유럽의 실업률이 8%대로 치솟은 뒤 기름값이 정상화되고 경기가 회복된 1980년대에도 실업률은 10% 내외를 유지했다.

경제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두 가지로 설명했다. 하나는 실업자들이 장기간 실업상태에 빠지면서 기술력이 떨어졌고, 반대로 기술은 재빨리 발전해 경기호황이 되어도 재취업이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기존 취업자들이 경기호황의 성과로 임금을 높여 받으면서 고용주들이 직원을 추가채용할 수 없었다는 해석이다.

어찌되었건 경기호황기에 생각보다 일자리가 늘어나지 않는다는 것은 경제학자들을 곤란하게 만들었다. 통화론자들은 실업률을 떨어뜨리는 대안으로 “돈을 풀어 경기를 확장시켜야 실업률이 낮아진다”고 주장했다. 단순 경기회복으로는 안 되고 ‘유동성 공급’이라는 처방도 함께 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환율과 국제수지에도 이력효과가 적용된다. 1980년대 중반 무역적자가 불어나자 미국은 달러 가치가 너무 높아서 가격경쟁력을 상실한 것이라 보고 플라자 합의를 통해 엔과 마르크화의 가치를 높였다. 달러화 가치가 떨어졌지만 무역수지는 개선되지 않았다.

이력효과는 최근 그 의미가 확장됐다. 낮은 경제성장이 몇 년 계속되면 가계와 기업 등이 성장에 대한 확신을 잃어버려 실제 경제성장률도 떨어지는 현상도 이력효과로 설명한다. 추후 경기가 회복되더라도 자신감은 쉽게 회복되지 않아 고성장으로 이어가기 어렵다는 것이다.

영화 속 경제

1990년대 일본의 잠재성장률은 3% 정도로 평가됐지만 ‘잃어버린 10년’을 겪으면서 자신감을 상실했고, 각종 경기부양책에도 경제성장은 연 1%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외부의 힘에 의해 금이 간 오마르와 타렉, 암자드의 우정은 이력효과를 극복했을까.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