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수의 길 위에서 듣는 음악]베네치아 시민의 감수성을 담은 <사계>

대항해시대 이후 유럽 경제의 중심축이 대서양으로 움직이면서 몰락하기 시작한 베네치아, 중세의 기나긴 터널을 막 빠져나오면서 갑자기 펼쳐진 근대 초기의 광기 어린 빛에 멀미를 앓는 베네치아 사람들의 격렬한 감정이 ‘사계’에 들어 있었다.

“고마워요, 유튜브.”

2008년 4월, 영화평론가 김혜리씨가 사용한 표현이다. 아! 적절하다, 그때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오늘날의 미디어 경험은 확실히 유튜브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2005년, 페이팔의 직원 세 사람이 창립한 이 획기적인 동영상 사이트는 2006년 10월, 구글이라는 거대한 플랫폼에 장착(인수)되면서 곧장 글로벌 미디어 네트워크의 패권을 차지했다. 우리나라에서는 2008년 1월 23일부터 서비스를 개시했고, 역시 개시하자마자 인터넷 디지털 미디어의 보통명사로 쓰이기 시작했다. 싸이의 ‘강남 스타일’로 인하여 국내에서 유튜브는 한 번 더 상한가를 치게 되지만, 김혜리씨가 “고마워요, 유튜브”라고 표현한 것은 그 이전의 일, 유튜브 초창기인 2008년 봄이다.

말로만 듣던 걸작들, 책자 안의 글자로만 존재했던 영화들, 추억 속의 희미한 잔상으로 남아 있는 고전 영화들을 유튜브에서는 클릭 두세 번만에 곧장 볼 수 있다. 찰리 채플린의 1936년도 걸작 <모던 타임스>, 알프레드 히치콕의 1940년도 걸작 <레베카>, 이강천 감독의 1955년도 문제작 <피아골> 등을 우리는 당장 볼 수 있다.

10여년 전만 해도 영화를 소재로 강의를 하려면 DVD 타이틀을 들고 다녀야 했다. 그런데 학교나 단체의 컴퓨터가 DVD 타이틀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수가 많았고, 다행히 플레이된다 해도 스피커와 연결이 되어 있지도 않아서 곤란한 일이 적지 않았다. 하긴 그 이전에는 VHS 비디오 테이프를 들고 다니면서 강의를 했는데, 하도 많이 틀어대서 그런지 인류의 시각 경험을 송두리째 뒤바꿨다는 SF 영화 <블레이드 런너>의 도입부를 보는데 혁신적인 비주얼은커녕 허옇게 빛이 바랜 영상을 틀어놓고 강사와 학생이 다만 그 너머의 총천연색 SF 효과를 상상하기만 했던 적도 있었다. 그러니 “고마워요, 유튜브”라고 할 만하다.

비발디와 동시대를 살았던 베네치아의 화가 카날레토가 1732년에 그린 베네치아의 풍경. / 위키백과

언제 어디서나 듣는 시대 “땡큐 유튜브”
나 역시 “땡큐, 유튜브”라고 말하고 싶다. 10여년 전부터 클래식과 재즈를 중심으로 그 장르의 형식과 주요 작품은 물론 그 장르들을 통해 서양 근대사를 해석하고 미국의 현대사를 파헤치는 강의를 해왔다. DD 음반이나 DVD 영상 타이틀을 여러 장 갖고 다니면서 넣었다 뺐다 하면서 간신히 틀곤 했는데, 지금은 인터넷으로 클릭을 한다. 하긴 음악평론가 강헌씨는 이제는 고대 유물처럼 취급받는 LP 음반을 들고 다니면서 강의를 했고, 막상 현장에 턴테이블이 없는 경우도 있어 아예 턴테이블까지 들고 다닌 적도 있었으니, 이 엄청난 상전벽해를 겪은 사람들은 “땡큐, 유튜브”라고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사실 영화평론가 김혜리씨가 “고마워요, 유튜브”라고 쓴 글은 영화가 아니라 첼리스트 장한나에 관한 인터뷰였다. 바로 그 얘기다. 나도 장한나를 데뷔할 때부터 CD 음반으로만 들었다. 활을 다루는 힘과 솜씨가 어릴 적부터 대단했다. 그것을 CD 음반으로 상상하며 들었는데, 유튜브를 클릭해 보면, 장한나가 거대한 오케스트라에 맞서 당당히 첼로 하나로 ‘맞짱’을 뜨는 담대한 연주를 들을 수, 아니, 볼 수 있다.

그뿐인가. 20세기 중엽 이후 이 나라의 클래식 애호가들은 오로지 LP와 CD를 들으면서 ‘불멸의 연주’와 ‘역사적인 실황’을 오직 상상으로 듣기만 했다. 그랬는데 이제는 ‘악마에게 영혼을 판’ 위대한 지휘자 빌헬름 푸르트벵글러가 1942년 히틀러 생일 축하연으로 베토벤의 9번 교향곡 ‘합창’을 연주하는 라이브, 그토록 무수한 논쟁을 낳았던 역사적 라이브 무대를 동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다. 크나퍼츠부쉬, 뵘, 쿠벨릭, 아바도 등의 지휘를 ‘직접’ 보고 듣는다. ‘히스토리컬 라이브’ 목록 1순위에 속하는 호로비츠의 1986년 모스크바 라이브나 역시 ‘역사적인 명연 녹음’으로 꼽히는 글렌 굴드의 바흐 ‘골트베르크 변주곡’ 녹음 또한 마찬가지다. 내가 그토록 편애했던 두 명의 리히터, 즉 바흐 음악의 스페셜리스트인 칼 리히터와 모든 피아노 음악의 전설을 쓴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도 바로, 지금, 당장, 동영상으로 볼 수 있다.

그 목록에 나는 비발디가 1723년에 작곡한 바이올린 협주곡 작품번호 8, No. 1~4를 반드시 꼽는다. 일명 ‘사계’다.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를 빼놓고, 이 곡만큼 우리 귀에 익숙한 곡은 따로 없을 것이다. 여름이나 가을에도 자주 들려오지만, 특히 차가운 겨울, 그리고 봄꽃 소식이 들려오는 이맘때에 클래식 FM에서는 어김없이 ‘사계’를 튼다. 지난주에 나는 길 위에서, 이 곡을 세 번이나 들었다. 두 번은 클래식 FM에서 들었고, 한 번은 내가 운전하면서 일부러 골라 들었다.

네덜란드 출신의 바이올리니스트 야니네 얀센의 ‘사계’ 앨범.

당대 문화권력이 두려워한 비발디 선율
내 오랜 기억 속의 ‘사계’는 나른한 배경음악이었다. 오래전에 라디오의 멘트나 연주회 팸플릿이나 음악 전문지 등에서 비발디를 소개하는 방식, 나아가 클래식 음악을 전달하는 방식 자체가 그런 수준이었다. 그 음악을 배태한 시대적 상황, 정치사상적 경향, 예술가들의 사상적 모색 등은 생략된 채 매우 한가로운 교양문화 정도로 소개되었다. 봄이 왔으니, 커피 한 잔 마시며 비발디의 ‘사계’를 듣는다는 식이었다.

나는 견디기 어려웠다. 세상도 혼탁했고 또 나 자신의 성장과정도 어지러웠기 때문에 바흐와 베토벤과 말러를 듣는 일을 한가로운 교양 내지는 정신적 고양으로 반복하는 언어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나중에 좀 더 많이 듣고, 또 공부를 하면서, 클래식 음악을 그 시대의 맥락과 종횡으로 겹쳐서 보고 들으니 슈베르트와 바그너와 쇼스타코비치를 전면적으로 다시 해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비발디 또한 그러했다. 대항해 시대 이후 유럽 경제의 중심축이 대서양으로 움직이면서 몰락하기 시작한 베네치아, 이 물의 도시가 치른 역사적 상흔과 분열과 음모들, 그럼에도 활기차게 펼쳐졌던 시민적 삶과 축제의 나날들, 그 속에 비발디가 있었다. 중세의 기나긴 터널을 막 빠져나오면서 갑자기 펼쳐진 근대 초기의 광기 어린 빛에 멀미를 앓는 베네치아 사람들의 격렬한 감정이 ‘사계’에 들어 있었다.

비발디는 축제의 도시 베네치아에서 원치 않은 임신으로 인해 태어나자마자 버려진, ‘오스페달레 델라 피에타’(피에타 구빈원)의 여자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쳤다. 그는 그때까지 인류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극단의 연주곡을 미친 듯이 써냈고, 오직 바이올린만이 유일한 희망인 여자아이들은 피나는 수련으로 오선지 위의 난해한 기호들을 악마적인 선율로 바꿔냈다. 그리하여 비발디의 바이올린을 중심으로 한 수많은 합주 협주곡들은 근대 초기의 강렬한 시민적 감수성을 밤하늘의 예광탄처럼 터트리는 음악이 되었다.
지금 우리는 <사계>를 봄을 맞아 커피 한 잔 마시기 위해 들어보는 생활 속의 BGM처럼 여기고 있지만, 당대의 문화권력은 비발디의 선율에 내장된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감수성을 두려워하기까지 했다.

새 봄이니 누구라도 한 번쯤 ‘사계’를 듣게 될 것이다. 그 어떤 대중음악보다 ‘대중적’인 곡이니 수많은 명연 명반이 있는데, 네덜란드 출신의 야니네 얀센을 검색해 보기 바란다.

정윤수의 길 위에서 듣는 음악

오래전 이 곡의 대명사는 이 무지치 합주단이었다. 우아하다. 90년대 이후에는 음악 및 오디오 애호가들을 전율케 한 파비오 비욘디의 ‘사계’가 있었다. 지금 다시 들어도 의자의 등받이를 잊게 할 만큼 온 신경을 곤두세우게 하는 연주다. 여기에 야니네 얀센을 더하여 들어보자. 아니, 동영상으로 다 볼 수 있다. 야니네 얀센의 동영상에서 17분53초부터 연주되는 ‘사계’ 중 ‘여름’, 그 3악장 ‘폭풍우’를 (들어)보면, 더 이상 비발디를 커피 한 잔 마시기 위한 배경음악 작곡가로 여기지 않게 된다.

<한신대 정조교양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