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규의 미스터리 산책]영화에서 새로 태어나는 소설 주인공들

대개 인기 있는 소설이 영화로 제작될 때 주인공으로는 기본적으로 원작과 비슷한 용모의 배우를 선택한다. 특히 요즘처럼 팬들의 반응을 즉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시대에는 원작자나 제작자가 많은 신경을 쓰게 된다.

지난 2월 말, 영국에서 새로운 경찰 드라마가 제작된다는 외신 기사가 보도되면서 추리소설 팬들 사이에 작은 화제가 되었다. 경찰 드라마가 세계적으로 끊임없이 만들어지는 터인데도 특별한 소식이 되었던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원작이 벨기에 출생의 프랑스 추리소설가 조르주 심농의 쥘 매그레 반장 시리즈였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매그레 반장 역을 로완 앳킨슨이 맡는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매그레 반장 시리즈는 1931년 <수상한 라트비아인>으로 첫선을 보인 이후 1972년까지 40여년 동안 70편이 넘는 작품이 출간된 베스트셀러 시리즈로, 일찌감치 영상화도 진행되었다. 1932년부터 2005년까지 세계 각국(프랑스나 영국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스페인, 소련, 심지어는 일본에서도)에서 꾸준히 영화나 TV 드라마로 제작되어 20여명이 넘는 배우가 매그레 반장을 연기했으니 10년 만의 TV 드라마 제작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이번 드라마에서 주연을 맡은 로완 앳킨슨은 ‘미스터 빈’이라는 코믹한 인물로 너무나 잘 알려져 있어서 그 이미지를 어떻게 바꿀 수 있을지에 대한 흥미가 팬들의 화젯거리였던 것이다.

영국 TV시리즈<브라운 신부>의 주인공 브라운 신부(가운데, 마크 윌리엄스 분).

우람한 매그레 반장이 보통 체격으로
매그레의 외모는 <수상한 라트비아인>에서 다음과 같이 묘사된다.

“그의 몸집만큼은 단연 서민적인 골격이라 할 수 있었다. 한마디로 거대한 통뼈였다. 단단한 근육들은 옷 여기저기를 불거지게 했고, 새로 산 바지 모양을 금세 엉망으로 만들었다.”(열린책들, 성귀수 옮김)

이런 우람한 체격의 매그레 반장과 잘 봐줘야 키는 비슷하지만 보통 체격의 로완 앳킨슨은 분명 괴리감이 있다. 또한 얼굴만 봐도 웃음이 나오는 ‘미스터 빈’의 이미지에서 얼마나 벗어날 수 있을지가 궁금하다.

특히 이번에 제작될 작품 중에는 <매그레, 덫을 놓다>(1955)가 포함되어 있는데, 이 작품은 1958편 한 차례 영화로 제작되었으며 당시 주연은 프랑스의 명배우 장 가뱅이 맡았다. 장 가뱅은 이 영화를 통해 프랑스 팬들 사이에서는 최고의 매그레 연기자로 기억되고 있다.

대개 인기 있는 소설이 영화로 제작될 때 주인공으로는 기본적으로 원작과 비슷한 용모의 배우를 선택한다. 특히 요즘처럼 팬들의 반응을 즉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시대에는 원작자나 제작자가 많은 신경을 쓰게 된다. 예를 들어 조앤 롤링의 <해리 포터> 시리즈가 영화로 제작될 때에는 오디션을 통해 원작과 비슷한 용모의 어린이들을 선발했기 때문에 마치 실제로 책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정도였다.

작가의 의도대로 되는 것만은 아니다. 댄 브라운은 <다빈치 코드>에서 주인공 로버트 랭던을 ‘해리슨 포드를 닮았다’고 묘사했다. 영화에서는 톰 행크스가 타이틀 롤을 맡았다.(처음에는 존 팩스턴이 고려되었고, 러셀 크로, 휴 잭맨, 조지 클루니도 물망에 올랐다) 솔직히 빈말로라도 두 배우가 닮았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매그레로 캐스팅된 로완 앳킨슨. TV 홈페이지

배우가 나이 들어 어쩔 수 없이 교체도
또한 영화가 장기적으로 계속 제작될 경우, 배우도 나이가 들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변화가 생긴다. 제임스 본드, 즉 <007> 시리즈는 50년이 넘도록 계속 만들어졌다. 초대 007이었던 숀 코네리와 21세기의 007인 다니엘 크레이그의 외모에 공통점이라고는 찾아보기 어렵다. 초기 작품에서는 원작처럼 장신에 짙은 색 머리카락이었으나, 현재는 별로 크지 않은 키에 금발머리로 바뀌었다. 아마도 소설을 읽은 사람보다 영화를 본 사람이 많아지면서 이제는 별다른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것 같다.

외모 논란이 잦았던 것으로 기억나는 배우는 톰 크루즈가 있다. 뚜렷하고 잘생긴 용모에 연기력까지 갖춘 그는 소설을 각색한 영화에 출연할 때 종종 반대 여론(?)에 휩싸이곤 했다. 2012년 <잭 리처>에 출연한다는 소식을 들은 원작의 팬들은 귀를 의심했다. 영국 작가 리 차일드가 창조한 액션 스릴러 소설의 주인공 잭 리처는 집도 없이 미국 곳곳을 떠도는 전직 군인. 가는 곳마다 커다란 사건이 터지지만, 머리도 좋고 사격솜씨도 뛰어나고 싸움도 잘해서 언제나 위기를 거뜬히 벗어나곤 한다. 이런 연기는 톰 크루즈에게 별로 어려울 것이 아니겠지만, 팬들의 걱정은 이런 내적 실력이 아니라 외모의 차이였다. 리처는 파란 눈에 금발 머리, 그리고 195㎝, 110㎏의 몸으로 남들을 압도하는 체격을 가졌다. 톰 크루즈는 잘 알려졌다시피 미국 배우 중에서도 작은 편에 속하기 때문에 캐스팅 자체를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원작자 리 차일드도 그것을 우려했지만, 직접 만나보고는 그가 잭 리처에 잘 어울리는 배우라는 판단을 내렸다. 영화가 나름대로 성공했고, 역시 톰 크루즈 주연으로 후속작인 <네버 고 백>의 제작이 예정되어 있는 것을 보면 그의 판단은 옳았던 것으로 여겨진다.

<매그레, 덫을 놓다>의 매그레 반장(장 가뱅 분).

<본 컬렉터>의 링컨 라임(덴젤 워싱턴 분).

<잭 리처>의 잭 리처(톰 크루즈 분).

톰 크루즈는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간 1994년에도 약간의 수난을 겪었다. <뱀파이어와의 인터뷰>에서 레스타트 역으로 캐스팅되자 원작자 앤 라이스가 맹렬하게 반대했던 것이다.(라이스는 네덜란드 출신 배우 루트거 하우어가 어울린다고 생각했지만 해당 배역을 맡기에는 너무 나이가 들어서 고려되지 않았다) 그러나 완성된 영화를 본 다음, 자신의 생각이 틀렸음을 인정하는 사과 편지를 보냈다.

드물지만 아예 인종이 바뀌는 경우도 있다. 미남 흑인 배우 댄젤 워싱턴은 소설에서 백인이었던 인물 역할을 몇 차례 맡았다. 존 그리셤의 <펠리컨 브리프>에서는 주인공 다비 쇼를 돕는 그레이 그랜섬 기자 역을 맡았는데, 원작의 그랜섬은 ‘다리가 허연’ 백인이다. 몇 년 후 제작된 제프리 디버의 <본 컬렉터>에서는 현장 수사 중 사고로 어깨 위 머리와 왼손 약지를 제외한 전신이 마비되는 상태에 놓인 천재적 과학수사관 링컨 라임 역을 맡았는데, 그 역시 원작에서는 백인이다.(미국의 인터넷에서도 ‘링컨 라임이 흑인이냐 백인이냐?’하는 질문을 자주 찾아볼 수 있는데, 아마도 영화 때문인 것 같다)

박광규의 미스터리 산책

지금까지의 선례를 볼 때, 연기만 잘하면 별 문제가 없다는 단순한 결론이 나온다. 이러다 보면 소설을 화면에서 어떻게 묘사할까 궁금했던 장면을 아예 만들 수 없는 일도 벌어질 것이다. 간단히 예를 들자면, 영국 작가 G.K.체스터튼은 브라운 신부를 ‘작은 체격에 얼굴은 노포크의 명물인 푸딩처럼 둥글다’고 묘사했다. 그런데 최근 영국에서 제작되었던 TV 시리즈 <브라운 신부>에서 신부 역으로 출연한 마크 윌리엄스는 얼굴이 푸딩처럼 둥글어 보이지만 185㎝의 장신으로 플랑보 역으로 출연한 존 라이트(175㎝)보다도 키가 더 크다. 원작에 나오는 것처럼 플랑보가 신부를 한 팔로 옆구리에 끼고 달리는 장면은 절대로 볼 수 없으리라는 점이 약간 아쉽다.

<박광규 추리소설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