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치스크린]다잉 오브 라이트-노장 감독의 힘겨운 행보

제목 다잉 오브 라이트(Dying of the Light)

제작연도 2014년

제작국 미국

러닝타임 94분

장르 드라마

감독 폴 슈레이더

출연 니콜라스 케이지, 안톤 옐친, 이렌느 야곱

개봉 2015년 3월 19일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생명을 위협하는 수많은 작전 속에서도 살아남았던 노장 첩보원 에반 레이크(니콜라스 케이지 분). 현역에서 물러난 그는 내근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동안의 지옥 같은 생활 덕에 망가질 대로 망가진 육체도 불편하지만, 어느덧 이념과 가치관을 상실한 채 흘러가는 세상을 그냥 바라봐야만 하는 침묵 속의 일상은 그를 더욱 비참하게 만든다. 그러던 어느 날, 죽은 줄 알았던 테러리스트 바니어(알렉산더 카림 분)가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서들이 포착되기 시작한다. 바니어는 과거 무자비한 테러로 민간인 수백명의 생명을 앗아가고, 자신에게도 혹독한 고문을 가해 상처를 남긴 평생의 원수다. 레이크는 바니어를 잡아 정당한 죗값을 치르게 만들리라 다짐하고 생의 마지막 소명으로 받아들인다. 때마침 레이크에게 상부의 강제 퇴직 권고가 전해지고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어진 그는 후배 밀트(안톤 옐친 분)의 도움을 받아 혈혈단신 복수의 길을 나선다.

감독 폴 슈레이더는 1946년생으로 ‘노장’이라는 표현을 피할 수 없는 인물이다. 그는 대학에 진학한 후 뒤늦게 영화의 매력에 빠져들어 비평을 시작했고, 각본가로 영화계에 입문한다. 그 유명한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택시 드라이버>, 브라이언 드 팔머 감독의 <강박관념> 등을 그 즈음 썼는데, 각본가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세우게 된 작품들이기도 하다. 1978년 역시 스스로 각본을 쓴 사회성 드라마 <블루 칼라>를 연출하며 감독으로 데뷔한 그는 <아메리칸 플레이보이>, <캣 피플>의 히트작을 연거푸 발표하며 80년대 미국 대중영화가 성취해냈던 다양성과 상업적 성공에 일조하면서도 자신만의 독특한 색을 잃지 않는다. 하지만 꾸준히 계속되어진 작품의 행보는 그리 단단해 보이지 않는다.

대부분의 작품 속에 뚜렷한 주제의식을 담고 있지만, 기교적으로는 투박한 작품이 대다수였기 때문이다. 이번 작품 <다잉 오브 라이트> 역시 그의 후기작들이 보여줬던 아쉬움의 전철을 고스란히 되밟고 있다. 감독 스스로는 그 어느 때보다 격양된 정치적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그의 주장과 시선에 흔쾌히 동의할 관객은 많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작품을 재미없고 구태의연하게 만드는 결정적 요소는 영화의 만듦새 그 자체다. 느슨한 전개와 개연성이 결여된 인물들의 심리와 행동기재는 괴리를 넘어 감독의 전력조차 의심스럽게 만든다.

충분히 기대할 만한 캐스팅, 대규모는 아니지만 저예산의 답답함을 벗어낼 정도의 다국적 배경을 적절히 안배한 노력 등 첩보 스릴러의 모양새를 충분히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작품은 일말의 영화적 기대나 쾌감을 제공하지 못한다.

터치스크린

그나마 반가운 건 이 영화를 통해 오랫동안 잊고 있던 여배우 이렌느 야곱의 요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루이 말 감독의 <굿바이 칠드런>과 크쥐시토프 키에슬로브스키 감독의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을 통해 국내에도 많은 팬을 확보했던 그녀는 프랑스 태생임에도 동양적인 단아한 외모로 특별한 사랑을 받았었다. 키에슬로브스키 감독의 색깔 3부작 중 하나인 <레드> 출연 이후에도 꾸준한 활동은 해왔지만 이렇다 할 인상적 작품이 없는 탓에 관객들과 만나는 기회도 많지 않았다. 유감스럽지만 이번 작품 역시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거나 그리 오래 기억될 작품은 못될 것이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여전히 아름답게 나이 들어가는 이렌느 야곱의 안녕을 확인하는 것만으로 나름의 위안이 되었다면 너무 후한 평가일까?

<최원균 “무비가이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