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내시경]45년의 역사 <고도를 기다리며>

앙상한 나무 한 그루가 황량하게 서 있는 소극장 무대. 마치 그 나무와 같은 형상으로 무대 위에 붙박이처럼 서 있는 두 남자의 쓸쓸한 실루엣 위로 조명이 떨어진다. 산울림 소극장의 간판 공연인 사무엘 베케트 작, 임영웅 연출 <고도를 기다리며>의 마지막 장면이다. 두 시간의 공연 내내 그토록 애타게 ‘고도’를 기다리던 두 남자,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는 결국 공연이 끝날 때까지 고도를 만나지 못한 채, 다시 다음날을 기약하며 새로운 기다림을 시작한다. 그리고 그 기다림은 세월에 세월을 거듭해, 어느덧 45년의 역사를 만들어냈다.

올 3월, 오랜만에 다시 막을 올리는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는 초연 45주년, 산울림 소극장 개관 30주년, 그리고 임영웅 연출 60주년이란 어마어마한 세월의 무게를 담고 있는 뜻 깊은 무대다. 반세기에 가까운 시간 동안 이 무대에서는 수많은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가 거쳐 가며 각기 다른 조합의 ‘기다림’을 보여주었다. 극단이자 극장을 겸하고 있는 산울림 소극장은 전속 배우는 없지만 그동안 한국 연극의 중추를 이루는 명배우들을 수없이 많이 배출했고, 그들 대부분은 이 작품 <고도를 기다리며>를 적어도 한 번 이상은 거쳐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간 약 40명에 가까운 배우들이 이 작품에 이름을 올렸고, 이 중 정동환, 정재진, 이호성, 박용수, 송영창, 안석환, 이영석, 한명구, 박상종, 김명국, 정나진, 박윤석, 김형복 등 13명의 ‘고도’ 출신 배우들이 이번 무대에 다시 선다. 작품도 작품이지만, 30년간 한 자리를 지켜온 이 작은 부채꼴 모양의 무대 역시 배우들에게는 단순한 무대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무대와 객석이 코앞이다 보니 맨 뒷자리에 앉은 관객도 배우의 일거수일투족을 정확하게 볼 수 있기에 배우에게는 숨을 구석을 찾을 수 없는 참으로 어려운 무대다.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산울림소극장 제공

하지만 그렇기에 이 무대를 거쳐간 배우들은 이 무대를 통해 자기 움직임과 정서에 확신을 지닐 수 있었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처음부터 끝까지 ‘고도’라는 알 수 없는 대상을 기다리는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의 대화와 말장난, 그리고 반복되는 무의미한 행위들로 이루어져 있는 작품이다. 일명 부조리극, 반연극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이 작품을 임영웅 연출은 ‘놀이성’이라는 자기만의 독특한 관점으로 풀어내었고, 이는 이 작품이 그토록 오랜 세월 생명력을 지니며 사랑받을 수 있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그는 이 무대를 연출함에 있어, 그동안 수없이 반복되어온 “고도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과감하게 지웠다. 임영웅 연출에게 이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고도의 의미나 고도를 기다린다는 행위 자체보다 그를 기다리는 두 사람이 도대체 무슨 ‘짓거리’를 하면서 기다리느냐의 문제였다. 그 ‘짓거리’ 자체가 바로 무의미하고 부조리한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 인간의 모습을 담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무대 위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가 언제 올지 모르는 고도를 수십 년 동안 기다릴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함께’였기 때문이었다. 산울림 소극장의 <고도를 기다리며>가 반세기에 가까운 세월 동안 생명력을 잃지 않고 꾸준히 공연될 수 있었던 것 역시 작품에 대한 연출자의 절대적인 신념과 배우들의 신뢰가 함께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초연 45주년을 맞아 각자의 스케줄을 다 비운 채, 이 작은 소극장 무대로 기꺼이 돌아온 13명의 배우들과 연출의 해후는 다시 한 번 그 ‘함께’의 힘을 느끼게 해준다. 3월 12일부터 5월 17일까지, 서교동 산울림 소극장.

<김주연 연극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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