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미의 공감 스토리텔링]2030싱글들에게 언니들의 유쾌한 수다

내 주변엔 혼자 사는 언니들이 많다. 아직은 혼자 사는, 그리고 앞으로도 혼자 살겠다는 친구들은 더 많다. 나는 사람 복이 많아서 개성 강한 세 명의 싱글 언니들과 벗을 삼게 되었는데, 이들을 만날 때마다 혼자 듣기 아까운 얘기들이 쏟아져서, 2030싱글 벗들에게 이 언니들의 유쾌하고 명쾌한 수다를 잠시 들려주고 싶어졌다. 때는 설 명절을 앞둔 일요일 낮, 효자동 한옥에 여자 넷이 모였다. 그녀들의 체감시간 한 시간, 실제로는 온종일 나눈 이야기.

큰 언니 최홍림(54)은 약국을 운영한다. 주말마다 풍경 사진을 찍으러 전국을 다니는 아마추어 사진작가이자 붓글씨도 수준급인 여자인데, 그의 약국은 약을 사러 왔다가 인생 상담을 하느라 줄을 선 사람들로 늘 북적인다. 키는 아주 작지만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선 사람처럼 넓은 시야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찾아내어 돕고, 무엇이든 도전하는 거인 같은 사람이다. 출판사 편집장으로 일하면서 취미로 활을 쏘고 바이올린을 켜는 김진 동화작가(51)는 지인들을 위해 한옥을 언제든지 사랑방으로 내어주는 인심 좋은 여자인데, 연령과 성별 구분 없이 친구가 500명은 넘을 것 같은 사람 부자다. 작곡가, 피아니스트, 음악감독, 팝 아티스트… 이름 앞에 어떤 수식어를 붙여야 할지 고민이 많이 되는 유니스 황(40)은 요가 실력도 수준급인 여자인데, 솔직한 화법이 매력적인 사람이다. 소개가 이렇게 길어지는 건, 개성 강한 언니들의 열정적인 삶의 증거가 아니겠는가.

김진, 최홍림, 유니스황.(왼쪽부터)

언니들이 생각하는 진정한 ‘골드미스’의 정의를 내려주세요.

김진 “나는 이 말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아. 대개는 고학력, 고연봉의 미혼 여성을 말하기 때문이야. 삶의 질의 척도가 반드시 학력이나 돈으로 규정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가난하더라도 자신의 삶을 윤택하게 가꾸어가는 사람들도 많아. 내 주변에는 작은 시민단체에서 한 달에 100만원 정도 월급을 받고도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일에 몰두하는 당당한 여성도 있어. 고액 연봉을 받으며 오로지 자신의 생활의 윤택함만을 추구하는 삶보다 아름답고 가치 있지 않아? 사회를 돌아보며 자신의 정신과 영혼을 윤택하게 가꾸는 사람을 ‘골드미스’라고 부르고 싶어.”

유니스 황 “결혼정보회사의 계산법에 따라 좋은 등급을 받을 만한 사람들이 아니라, 자신의 분야에서 열심히 노력하며 빛을 내는 사람들, 시련에도 굴하지 않고 잘 견뎌낸 사람들!”

최홍림 “맞아. 당당한 자세로 살아가는 여성이라면 누구나 ‘골드’지.”

진 언니는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시절이 언제였나요. 어떻게 건너왔나요.

김진 “난 가난한 집안형편 때문에 하는 수 없이 고향 강릉에서 대학을 다녔어. 그게 졸업 후에 서울에서 사회생활을 하게 된 내게 큰 열등감의 요소가 됐지. 지방대를 다녀서 그런 게 아니라, 대학을 다니는 동안 현실적인 불만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보낸 탓에 졸업할 무렵에 아무런 실력을 갖추지 못했어. 그건 경제적 어려움으로 이어졌지. 하지만 나는 원하는 일을 하고 싶었어. 글을 쓰거나 글을 만지는 작가나 편집자가 되고 싶었거든. 조그만 출판사와 잡지사 등에서 일을 하면서 실력을 쌓아야 했지. 월급을 받지 못하는 때도 부지기수였고. 20대 후반 사장 한 명과 편집부에는 달랑 나 하나인 출판사에 근무할 때였어. 그 출판사도 가난했기 때문에 월급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 거야. 그런데 하루는 우리 출판사에 2000장이 넘는 원고뭉치를 들고 한 어른이 찾아오셨는데, 일제시대 때 우리나라에서 발간된 역사교과서를 분석해 일제가 우리 역사를 어떻게 교묘하게 왜곡했는지를 파헤친 <일제 식민사관에 왜곡된 조선사>라는 원고였어. 도쿄대학에서 논문의 일부만 빼면 박사학위를 주겠다고 했지만 이 어른은 학위와 자신의 신념을 바꾸지 않은 것이었지. 나는 그런 원고를 내 손으로 편집할 수 있다는 데 몹시 떨렸고, 그때부터 8개월간 그 원고 편집에 매달렸어. 당연히 월급은 나오지 않았지만, 내가 이런 원고를 교정보고 편집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자부심이 느껴졌지. 중간에 회사와 문제로 저자가 원고를 회수해간 적이 있는데, 내가 그분 댁으로 찾아가 ‘이 원고는 제가 꼭 편집해보고 싶습니다. 저를 보고 주십시오’ 해서 그 원고를 받아오기도 했지. 그렇게 그 책 편집을 마치고 나서 난 결국 다른 직장으로 옮겼어. 이렇듯 좀 더 나은 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경력과 실력을 동시에 쌓아야 하니까, 분야를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책을 읽고 공부했지. 투수가 한 팔로 공을 던지면 공을 던지는 한쪽이 근육도 더 많이 붙고 팔 길이도 길어진다고 하잖아? 무엇이든 하면 늘더라. 그러다 보니 이제는 전문가로 일을 하게 되었네….”

유니스 언니는 시련 없는, 탄탄대로만 걸어온 사람 같아요.

유니스 황 “자유롭게 내 스타일대로 일하고 싶어서 친구와 함께 만든 작은 회사에서 15년째 일하고 있어요. 경제적인 위기와 시련이 시도 때도 없이 몰려왔었고, 오랜 기다림이 필요한 시간이었죠. 각자 외부 아르바이트를 하며 회사를 유지해야 한 적이 더 많았고, 직원들 월급 챙겨주느라 나는 월급이 없는 달도 많았어요.(웃음) 아직도 아티스트 유니스 황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직장인 ‘황 실장’의 삶을 더욱 치열하게 살아야 하는 날이 많아요. 하지만 원하는 꿈을 원하는 방식으로 이뤄내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대가라고 생각해요. 난 항상 다짐해요. 더 길게 보고 기다림에 지치지 않기, 믿음을 버리지 않기, 때를 기다리며 준비하기.”

홍림 언니, 언니 인생의 ‘늪과 막대기’ 얘기 또 들려주세요.
최홍림 “늪에 빠질 때마다 단단한 막대기 하나만 있으면 빠져나올 수 있지. 난 엄마가 그 힘을 길러줬어.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딸을 안고 일주일 만에 마음을 다잡았대. 우리 엄마는 ‘이미 나에게 벌어진 일’에 대해 대담했어. 나 고등학교 때 8학군 애들 모아서 하는 그룹과외가 유행이었는데, 상위권 애들 그룹 짜는데 가서 시험을 보고 내가 1등을 했다는 거 아니우?(웃음) 그런데… 장애인이 끼면 공부하는 학생들 분위기 안 좋아지니 빠져줬으면 좋겠다고 전화가 온 거야. 그때 ‘내가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지?’ 하고 쓰러질 뻔했는데, 우리 엄마가 그걸 막았어. 엄마는 ‘네!’ 딱 한마디 하고 단호하게 전화를 끊었어. 그러고는 바로 학교 엄마들을 우리 집에 모아서 과외 팀을 짜더라. 엄마가 당당하니까 내가 좌절할 수가 없었어. 우리 시절엔 장애가 있으면 안 받아 주는 대학이 많았어. 엄마가 대학마다 가서 상담을 하고 오더니 ‘이화여대 약대는 받아준대. 이대 가자!’ 엄마가 세팅하면 나는 무조건 노력해서 한걸음 딛고 올라가고… 그렇게 오늘까지 왔어.”

결혼을 생각해 본 적은 없나요. 그때 그 남자랑 결혼할 걸… 후회해 본 적은요.

유니스 황 “가족과 함께 안정을 이루며 살고 있는 친구들, 벌써 중학생 학부형이 된 친구들을 보면 난 언제 만나 언제 결혼하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하지만 각자 결혼을 하는 시기도 다르다고 생각해요. 나는 이미 많이 늦었으니까, 주변의 잔소리가 지겨우니까, ‘대충 조건 맞으면 결혼해야지’ 하는 생각엔 반대해요. 살면서 타이밍이 중요하지만 결혼만큼은 ‘언제’보다는 ‘누구와 어떻게’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늦어진 만큼, 혼자였던 만큼, 더욱 숙성될 수 있는 시간도 있었기에 그리 후회는 없어요. 지나고 보니 정말 괜찮은 사람이었구나… 싶은 사람도 있고, 지금이라도 만나면 그렇게 살지 말라고 충고라도 해주고 싶은 사람도 있어요.(웃음) 물론 그땐 잘 몰랐었고 표현도 제대로 하지 못해 인연이 이어지지 못했고 문득문득 아쉬운 마음이 들 때도 있죠. 하지만 정말 좋은 사람을 만났었다는 사실에, 잠시나마 나에게 주어졌던 아름답던 시간에 대해 더 감사하려고 하는 편이에요. 정말 좋은 사람을 만나 멋지게 연애할 수 있다는 걸….”

최홍림 “솔직히 결혼은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여기며 살았어. 예전에는 모두에게 결혼이 당위였지. 못 가면 기 죽는 것이었고. 그런데 우리는 ‘당연히’ 못 가. 그 심정은 어땠겠어…. 그런데 시대가 변했어. 기술도 얼마나 좋아졌니? 장애가 있어도 신이 우리를 덜 불편하게 살게끔 해 주지. 이젠 누구나 결혼을 당위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니까, 나도 ‘못 가는’ 게 아니라, ‘안 가는’ 것이라고 생각해. 그러면 위안이 된다우.”(웃음)

김진 “결혼을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나. 하지만 나도 결혼을 할 수 없었지. 결혼할 시기였던 20~30대는 나 스스로가 너무나 보잘것없었어. 내가 아무것도 아닌 상태에서 결혼할 남자를 만난다는 것은 그 상대를 속이는 것 같았거든. 내가 영글고, 자신감이 있어야 상대에게도 좋은 사람이 된다고 생각했어.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 결혼을 해도 되겠다 싶었고, 마침 사귀던 남자도 있었는데… 다른 여자와 결혼을 해 버리더군!”(웃음)

일과 결혼을 고민하는 후배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요.

최홍림 “그 나이에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과 연애 모두 열심히 했으면 좋겠어. 할 수만 있다면.”

유니스 황 “나 정도 스펙이면 이 정도의 남자는 만나야지. 이 정도 나이엔 이 정도 연봉의 남자를 만나 이 정도 되는 집과 차는 있어야지.… 일반적인 답안에 나를 끼워 맞추기보다는 좀 더 다양하게, 창의적으로,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물론 그런 다양하고 재미있는 답을 박수치며 인정해주는 사회 환경을 함께 만들어 가는 것도 중요하구요.”

김진 “자신에게 집중하고 스스로를 사랑한다면, 일도 결혼도 다 순조로울 수 있지 않을까?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남도 사랑할 수 없으니까. 내가 50까지 살아 보니 하나의 진리 같은 것이 깨달아져. 사람이 멀리 생각하지 않으면 반드시 가까이에 근심이 있다는 공자 말이 있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큰 그림을 그리고, 그것을 향해 나아가는 것. 그러면 지금 내가 시골구석에 있어도 두렵지 않다는 것! 나는 20대에 햇빛 한 줌 들지 않는 방에서 지내면서도 절망하지 않았어. 40 넘으면 등단을 하고, 50 넘으면 사서삼경이나 성경이나 불경을 읽고…. 이런 그림을 가지고 있었거든. 덕분에 좀 늦었지만 내가 그림을 그린 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아.”

최홍림의 글쓰기 작품.

사회생활 하다 보면 여자 후배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들이 있잖아요. ‘우리 이런 사람은 되지 말자’는.

유니스 황 “받는 것을 너무 당연하게 여기는 여자들도 있어요. 남녀평등을 주장하다가도 받을 때는 남자가 더 큰 걸 해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여자들, 당연히 남자가 사야 한다고 생각하는 여자들, 함께 즐거워하며 축하해야 할 날에 축하와 선물 받을 궁리만을 하는 여자들이 있죠. 비싼 가방을 선물해달라고 해서 사줬더니 돌아오는 건 십자수 선물이더라는 남자들의 이야기가 단지 농담만은 아닐 거예요. 물론 마음의 가치는 계산하기 어렵지만. ‘오빠’라는 말을 무기로 너무 많은 것을 쉽고 당연하게 얻으려고 하는 여자는 되지 않았으면 해요.”

김진 “맞아. 이기적인 여자, 의존적인 여자, 주변을 돌아보지 않는 여자, 자신의 성공에만 관심 있는 여자는 되지 말아야지.”

최홍림 “그래. 나 자신에게 멋지게 보이는 여자가 가장 멋진 여자 아니겠어?”

홍림 언니와 진 언니는 오랜 시간 동안 혼자인 엄마를 모시고 살다가, 두 분 다 작년에 엄마를 잃으셨어요. 어머니는 어떤 분이었나요. 함께 사는 동안 힘들지 않았나요.

최홍림 “내가 엄마를 모시기도 했지만, 돌아가시는 날까지 우리 엄마도 나를 보살폈지. 서로 자극하고 버팀목이 되는 사이였어. 24년 동안 병중에 있었던 엄마와 나는 애증의 관계였어. 이 딸을 내가 보살펴야지 하는 강한 정신력이 엄마를 강하게 붙들고 있었던 것 같아. 1926년생이고, 한국은행을 36년간 다닌 신여성이었던 엄마는 나와 아들 둘을 씩씩하게 키웠어. 우린 엄마한테 엄청 맞았어. 동생들은 많이 맞고 나는 장애가 있는 특혜로 조금 덜 맞고.(웃음) 한 번도 너는 장애가 있으니… 라는 느낌을 안 줬어.”

김진 “엄마가 94세에 돌아가실 때까지 10년을 함께 살았어. 나는 엄마와 함께 사는 게 행복했어. 엄마가 44세에 늦둥이로 날 낳았지. 초등학교 들어가서야 우리 엄마가 늙었다는 걸 알았어.(웃음) 아버지가 나 열다섯 살 때 돌아가셨기 때문에 엄마마저 돌아가실까봐 늘 전전긍긍했지. 잘 모셔야 한다는 강박도 있었고…. 엄마는 이상하게도 집안에 대한 자부심이 매우 강했어. 어릴 때, 1년에 한 번꼴로 셋방 이사를 다녀야 했는데, 이삿짐을 풀면서 엄마는 늘 이렇게 말했어. ‘우리는 선비 집안이다. 선비 집안은 허리띠가 양식이다. 그러니 우리가 가난해 셋방살이 하는 것을 부끄러워 말아라.’ 엄마의 그 말은 내게 큰 영향을 미쳤지. 나는 가난하게 사는 것을 부끄럽게 여긴 적이 없어. 그래서 등록금을 늦게 내 학교 선생님들에게 불려가도 조금도 기가 죽지 않았지. 그렇게 어려운 살림에도 엄마는 거지들이 아침 식사시간에 집에 오면 밥상을 차려주는 분이셨어. 난 그분을 존경할 수밖에….”

유니스 언니는 부모님이 고향에 사시죠. 엄마 영향을 많이 받은 딸이라고 들었어요.

유니스 황 “내가 중학교 때 시한부 선고까지 받으셨던 분이시지만, 포기하지 않고 병을 이겨내고 아직도 잘 살아가고 계세요. 늘 많이 아팠지만, 완벽한 여장부 스타일이셨어요.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법, 힘들어도 조금 더 참아내는 법, 믿고 기다리는 법은 분명 어머니께 배웠어요. 많이 믿어주셨기에 좀 더 자유로운 환경 속에서 내 선택을 존중받으며 자랄 수 있었고, 그 자유를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했죠.”

홍림 언니, 비밀로 하라고 하셨지만, 언니 동생들 얘기 좀 해요. 어머니 장례식 때 들어온 조의금을 동생들이 언니 모교에 ‘최홍림 장학금’으로 기부하셨다구요.

최홍림 “엄마 돌아가시고 난 후에 남동생들과 함께 얘기했지. 우리가 이렇게 싸가지 있는 어른으로 자란 건 우리 엄마의 가르침 덕분이라고.(웃음) 장례식에서 지인들이 말하더라. 우리 남동생들이 성공한 거 놀라운 일이라고. 부모도 장애 있는 자식에게 좀 더 관심을 갖게 되니까, 나머지 형제들이 겪는 정서적 결핍이 얼마나 크겠니? 장애를 가진 당사자와 부모는 숙명이지만, 형제들은 무슨 죄니. 우리 누나 입학 허가해줘서 우리 엄마가 기뻐하셨고, 누나도 약사가 되었고… 고마운 학교니까 이화여대 약학대에 다니는 몸이 불편한 학생들을 위해서 장학금으로 써 달라고 조의금의 반을 기부했을 때, 나도 동생들에게 마음을 쓰는 법을 또 한 번 배웠어.”

언니들, 앞으로의 계획은요. 워낙 열정적으로 사는 분들이라 예측이 안 돼요.
김진 “앞으로 난 내 머릿속에 구상해놓은 작품들을 다 쓰는 게 목표야. 그리고 못 다한 공부들을 다 하고 싶어. 바이올린도 계속 배울 것이고, 50 넘으면 하고자 했던 사서삼경 공부와 더불어 붓글씨를 써야지. 소위 말하는 문자향서권기를 나도 한 번 느껴보고 싶어. 그리고 활 쏘는 것도 꾸준히. 삶의 숨구멍 혹은 창을 많이 달고 싶어. 힘 빼고, 산책하듯이 삶을 살고 싶다.”

유니스 황 “20~30대에는 미래를 위해 현재의 많은 것들을 포기하며 살았어요. 앞으로는 좀 더 현재에 충실하고 현재를 누리는 삶을 살고 싶어요. 그리고 멋진 순간들을, 선한 에너지를 세상과 함께 나눌 수 있는 건강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최홍림 “살아온 삶의 향이 퇴색되지 않고 품위를 잃지 않는 어른으로 살고 싶어. 사랑의 대상이 꼭 사람일 필요는 없어. 나는 지금 사진과 연애를 하고 있어.”

홍림 언니 사진은 ‘낮은 시선’만이 담을 수 있는 순간을 포착해 내요. 작은 것도 우러러보는 시선을 통해서 위안을 얻게 돼요. 장애를 가진 동생들에게 큰 언니의 조언 부탁해요.

최홍림 “얘들아, 옛날보다 사회의 시선이 많이 좋아진 걸로 믿자!(웃음) 그것만으로도 숨통이 트인다. 편견을 가진 시선에 주눅 들면, 우리가 스스로 내 인생을 허비하는 거야. 하다 보면 이뤄지고 걷다 보면 도착한다. 가랑비는 보이지 않지만 옷이 흠뻑 젖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존재란 그런 거지. 당장 눈에 안 보여도 우리도 사회에 꼭 필요한 사람이야. 내가 당당하게 바로 서면 외롭지도 않다….”

여자 나이 30대 중반, 결혼에 대한 고민이 가장 많은 시기인데요. 그 시기를 건너서 40대에 막 들어선 유니스 언니가 그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유니스 황 “서른 전까지는 어느 정도 의도적인 결혼 기피를 했던 것 같아요. 목표를 이루는 일에 더 집중하고 싶었죠. 서른 중반부터는 조금씩 여유를 갖고 어느 정도 결혼이나 연애에 마음을 열어보았지만, 이미 그땐 좋은 사람을 만나는 일이 힘들어졌어요. 그 나이가 되면 좋은 사람들은 벌써 다른 사람의 짝이 되어 있기에 만날 수 있는 확률이 점점 희박해지죠. 하지만 난 여전히 희망을 버리지 않고 기다리고 있어요. 분명 인연은 있다고 믿어요.”(웃음)

진 언니, 지금 삶에 만족하나요. 앞으로 좋은 사람 만나면 결혼하실 겁니까.

김진 “난 만족해. 무라카미 하루키가 <태엽 감는 새>에서 운명이란 지금 서 있는 곳에서 뒤돌아보았을 때 자신이 걸어온 길이라고 했지. 지금 돌아보니, 내가 걸어온 길이 우주에서 지구에 생명을 받아 올 때 주어진 길이라는 생각이 들어. 가난하고, 고단하고, 자주 외롭지만, 그것도 내 것이니 매우 만족해. 그리고 기회가 온다면, 결혼은 할 거야. 좋은 사람이 내 앞에 나타났는데,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함께 살아보지 않는다면 바보야!”(웃음)

박상미의 공감 스토리텔링

혼자 사는 멋진 언니들의 유쾌하고 명쾌한 수다는 8할도 싣지 못했다. 이 언니들의 사랑 이야기는 때론 배꼽을 잡고, 때론 눈물을 쏙 빼놓는데, 설 연휴를 기대하시라. 합석할 언니들도 대기 중이다. 어쨌든 생각보다 꽤 멋진 우리들, 설날을 맞아 또 한 살 ‘맛있게’ 먹자.

<박상미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