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찬의 눈]증세, 눈치만 볼 것인가?

지난 2월 10일 트위터와 블로그에서 ‘증세 또는 세금’을 언급한 문서가 2만건 이상 검색됐다. 정책 관련 이슈가 하루 2만건을 넘은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2월 11일 트위터 타임라인에서 증세를 검색하면 한 장의 사진이 도배한 듯 검색된다. 2012년 대통령선거 당시의 TV토론 장면을 편집한 사진이다. 당시 문재인 후보가 “증세 없는 복지가 가능합니까?”라고 묻자 박근혜 후보가 “그래서 제가 대통령 되겠다는 것 아니에요!”라고 말하는 장면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최근 증세 논쟁과 관련해 두 번의 의미 있는 발언으로 다시 도마에 올랐다. “증세는 국민을 배신하는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과 “단 한 번도 증세 없는 복지에 대해 말한 적 없다”는 발언이 그것이다. 물론 비판이 쏟아졌다. 담뱃값 인상과 연말정산 세금폭탄으로 지지율이 휘청거린 직후라 더 의아했다. 실질적인 서민증세를 해놓고 마치 증세가 아닌 것처럼 유체이탈 화법을 구사했기 때문이다. 새롭게 야당 대표로 선출된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이를 두고 ‘이중의 배신’이라고 일갈했다.

박근혜 정부가 법인세 감면 등 실질적 부자감세와 서민증세로 세수 부족을 돌파하려 한다는 얘기는 이미 파다하다. 기획재정부 세수 통계도 이를 방증한다. 지난해 소득세는 53조원, 법인세는 42조원을 거둬들였다. 소득세와 법인세 비중이 박근혜 정부 이후 급속하게 역전된 것이다. 결국 유리지갑을 털어 기업을 살찌운 셈이다. 지난해 세수 부족이 10조9000억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증세를 죄악시하고 있다는 것은 참 허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더 큰 문제는 여당 지도부의 좌고우면하는 모습이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복지 과잉은 국민을 나태하게 만든다”는 황당한 발언을 했다가 또 “증세 없는 복지는 불가능하다”는 취지의 말을 하기도 한다. 유승민 원내대표는 “법인세도 성역은 아니다”라고 말해 법인세 인상 가능성을 비췄지만, 여당 지도부는 즉각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밝힌다.

청와대 회동을 마치고 나온 원유철 정책위의장이 박근혜 대통령이 “단 한 번도 증세 없는 복지에 대해 말한 적이 없다”고 전했는데, 유승민 원내대표는 대통령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한다. 새정치연합 유은혜 대변인이 말했듯이 여당 지도부의 영혼 없는 이야기가 국민을 힘들게 하고 있다. 뭐라는 건가. 증세와 복지라는 대한민국의 미래가 걸린 어젠다를 앞에 두고 여당 지도부가 대통령이 그런 말을 했는지 안 했는지 진실게임이나 하고 있어야 하는 건가.

벤저민 프랭클린은 “세상에서 분명한 것은 두 가지뿐인데, 하나는 죽음이고 하나는 세금”이라는 말을 남겼다. 그만큼 세금문제는 다루기 힘들다. 특히 월급쟁이들의 유리지갑만을 노리는 정치집단이 재집권을 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증세문제는 정치권이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다. 누군가는 단순하고 용기 있게 말해야 한다. 정치적 계산을 넘어 국민의 지속가능한 삶을 중심에 두고 정책을 내놔야 한다.

진보와 보수를 떠나 중산층의 붕괴는 괴로운 일이다. 누구나 중산층의 복원을 말한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이자 프린스턴대 교수인 폴 크루그먼은 재정지출 확대라는 단순한 해법을 제시한다. 이는 양적완화와 최저임금 상승 등 오바마 정부의 기조와 부합한다.

유승찬의 눈

이제 한국에서도 누군가는 정치적 위험을 무릅쓰고 단순한 해법을 국민 앞에 내놓을 때가 되었다. 대통령 눈치보기는 이제 그만하라는 뜻이다.

<소셜미디어컨설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