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박투톱’ 새누리당 ‘설상가상’ 박근혜

유승민 원내대표 선출로 당 서열 1·2·3·4위 비박 또는 반박이 장악

유승민 의원이 새누리당의 원내대표로 선출됨에 따라 새누리당이 완전히 청와대의 입김에서 벗어났다. 당 서열 1·2·3·4위를 모두 비박 또는 반박이 장악했다. 투톱인 김무성 대표와 유승민 원내대표는 비박(박근혜)계다. 서열 3위인 원유철 정책위의장은 친이(이명박)계이며, 서열 4위인 이군현 사무총장은 이재오계다. 여기에 당의 입법과 정책을 총괄하는 원내수석부대표에는 비주류인 조해진 의원이 발탁됐다.

‘김무성-유승민’ 체제가 출범함에 따라 당·청관계도 급속히 변하고 있다. 당장 청와대가 당에 일방적으로 지시했던 수직적 관계가 사라지고 수평적 관계로 바뀔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김 대표는 지난해 7·14 전당대회부터 수평적 당·청관계를 주창해 왔고, 유 원내대표 역시 “당이 국정운영의 중심에 서야 한다”고 강조해 왔기 때문이다.

국회에서 2월 2일 열린 새누리당 의원총회에서 새 원내대표에 당선된 유승민 의원(오른쪽)이 김무성 대표(가운데)와 손을 맞잡고 의원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 권호욱 선임기자

청와대는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2년여 동안 황우여-최경환-이완구로 이어지는 친박 원내대표를 통해 대통령의 의중을 당에 전달해 왔다. 청와대의 오더에 따라 당은 ‘박근혜표 정책’을 지원해 왔다.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도 같은 검찰 후배인 김재원 전 원내수석부대표를 통해 수시로 당의 움직임을 점검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로서는 좋은 시절이 끝난 셈이다. 당·청간 우호적 채널이 끊어진 것은 박 대통령에게는 국정수행을 하는 데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할 게 뻔하다. 박 대통령이 국민에게 약속한 공무원연금 개혁, 노동시장 구조개혁 등 주요 국정과제는 입법으로 완성된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앞으로 청와대에 질질 끌려다니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오히려 청와대와 반대 목소리를 냄으로써 박 대통령과 차별화에 나설 공산이 크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최근 김 대표와 유 원내대표가 잇따라 박 대통령의 ‘증세 없는 복지’ 정책기조를 “허구”라며 강한 어조로 비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특히 원내사령탑인 유 원내대표는 소신이 강하고 자기 색깔이 분명하기 때문에 청와대가 가장 껄끄럽게 생각하는 인물이다. 그는 과거 박 대통령의 비서실장까지 지냈지만 청와대에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는, 여권에서 거의 유일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는 “‘청와대 얼라들’이 외교를 망치고 있다”며 대통령이 신임하는 비서관 ‘3인방’을 공격하기도 했다.

당청관계 급변, 박 대통령에게 부담
새누리당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 청와대는 말 잘 듣는 친박계 지도부를 내세워 당을 원격조종해온 것이 사실”이라며 “이완구 원내대표의 퇴장으로 청와대는 당에 더 이상 비빌 언덕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안팎에서는 심지어 박근혜 대통령과 결별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19대 국회의원의 임기가 1년 2개월밖에 남아 있지 않은 상황에서 인기 없는 박 대통령을 감싸고 돌다가는 자칫 공멸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한국갤럽의 최근(2월 넷째 주)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당 지지율(41%)과 박 대통령의 지지율(29%)은 10%포인트 이상 차이가 난다. ‘콘크리트 지지율’을 자랑했던 박 대통령이 오히려 당 지지율을 까먹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1월 20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현안에 대해 발언하면서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쪽을 보고 있다. | 청와대사진기자단

‘박 대통령 탈당 요구’ 목소리도
새누리당의 한 당직자는 “청와대는 박 대통령의 임기가 2년 이상 남았기 때문에 여유가 있을 수 있지만 우리는 매우 급한 상황”이라며 “새누리당 의원들이 유승민 원내대표를 선택한 것은 단순하다. 청와대를 버리지 않으면 총선에서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단언했다.

새누리당 일각에서 당 지도부가 박 대통령에게 탈당을 요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대통령의 탈당은 새로운 것도 아니다. 김영삼·김대중·노무현 등 대부분의 대통령들이 임기 말에 탈당했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여러 번의 선거 경험상 대통령에게 등을 돌린 유권자들이 다시 대통령을 지지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며 “박 대통령이 ‘선거의 여왕’이라는 말도 옛날얘기가 됐다”고 말했다.

현재 새누리당은 박근혜 대통령과 김무성 대표, 유승민 원내대표가 지분을 3등분해 갖고 있는 형국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탈당할 경우 지난 2012년 총선에서 친박계가 친이계를 공천학살했듯이 비박계가 친박계를 희생양으로 삼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친박계는 부글부글 끓고 있다. 비박 지도부에 대해 “한 번 해봐라”는 분위기도 감지되고 있다. 하지만 대놓고 싸우기에는 명분도, 수단도 없어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비박계 지도부가 지금처럼 단일대오로 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는 시각도 있다. 지금은 지도부가 ‘박근혜’라는 공통의 적 앞에서 연대하고 있지만 김무성 대표, 유승민 원내대표, 그리고 친이계가 가치와 노선이 아닌 이해관계에 따라 모여 있기 때문에 언제든지 갈라설 수 있다는 것이다.

당장 김 대표와 유 원내대표만 해도 불안한 동거를 하고 있다. 유 원내대표는 지난 당대표 선거 때 김무성 후보가 아닌 친박 서청원 후보를 밀었다. 당시 김무성 후보가 새누리당의 아성인 TK(대구·경북) 공략에 애를 먹은 것도 유 원내대표의 영향이 컸다. 유승민 의원은 사무총장을 맡아달라는 김무성 대표의 요청도 거절했다.

유 원내대표가 김 대표 밑으로 들어가지 않고 독자적인 길을 가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지금은 두 사람이 의기투합하고 있지만 총선과 대선 국면으로 갈수록 새누리당 대선후보를 놓고 경쟁구도로 바뀔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비박계의 한 축인 친이계도 변수다. 박근혜 정부 이후 2년 동안 숨 죽이고 있던 친이계들은 최근 부쩍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명박 정부 당시 장관, 공기업 사장 등을 했던 국회의원들이 30명 가까이 된다. 그리고 원외에서도 이동관·김두우 등 총선 출마 하마평에 오른 인사들도 수십 명이다. 이들이 결집하면 새누리당 내에서 무시못할 세력이 될 수 있다.

친이계의 한 인사는 “올해 초 이명박 전 대통령이 주재한 모임에 과거와는 달리 많은 사람들이 참석한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며 “총선정국으로 갈수록 이명박 정부와 인연이 있었던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뭉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새누리당이 자원외교 국정조사 등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을 엄호해주지 않을 경우 갈등이 표면화될 수 있다.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는 “비박계를 하나하나 놓고 따져보면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며 “결국에 이들은 사안에 따라 합종연횡을 반복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권순철 기자 ik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