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가흠의 눈]자기를 지키기 쉽지 않은 시대

우리는 자신을 잊어야만 잘사는 시대에 살고 있다. 윤리와 도덕 안에서 자기를 지키기가 쉽지 않은 시대에 살고 있다. 모든 게 거꾸로 흐르면서 민주적 가치와 사회정의마저 바로 설 기회를 잃었고, 정치나 법은 절대적인 선을 포기하고 상대적이고 기회적인 유동성만으로 존재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불안하다. 사회를 정의할 수 있는 테두리가 움직인다고 생각하니 그저 가장 중심에 서 있고만 싶다. 우리 사회에 아무런 제재가 닿기 힘든 그 중심에 부와 자본이 지향하는 바가 있고, 평범한 우리는 그 중심에 서기 힘들다. 우리 대부분은 가난하다. 가난하니 힘이 없고 권력이 없다. 우리는 끊임없이 사회의 가상으로, 움직이는 테두리 바깥으로 밀려나기 십상이다. 이 사회 바깥으로 밀려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자기 자신을 잊는 것이다. 누구에게도 눈에 띄면 안 되고, 어떤 잘못을 저질러서도 안 되고, 말을 해서도 안 된다. 사고로 죽어서도 안 되고, 가족이 죽었다고 억울해 해서도 안 되고, 윤리나 도덕에 대해 말해서도 안 된다. 그런 사람은 이 사회의 부적응자, 그저 못난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선조가 독립운동을 해서도 안 되고, 민주주의 가치를 위해 희생해서도 안 된다. 후대들에게 가난하고 힘없는 테두리의 생을 물려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적어도 중심이라고 믿는 부와 권력의 눈에 그렇다는 얘기다. 밀려나지 않기 위해 남을 바깥으로 밀어야만 중심에 남는다고 착각하는 사람들, 그런 삶을 추종하는 다수의 사람들이 믿는 이 사회의 정의라는 게 이것이다.

밀려나지 않는 사회의 중심을 보자.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자서전을 냈다. 그는 자기 자신을 잊었기 때문에 여전히 잘산다. 그를 떠올려보자. 할 말이 없다. 입에 담기 싫어 이젠 그의 전 측근이 된 사람의 말을 옮긴다. “자원외교는 바보장사”, “MB 회고록은 모든 국민의 뺨을 한 대씩 때린 격”, “결국 국민들에게 매를 번 것”이라는 요지다. 정두언 의원의 말이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만 말한 사람도 자신을 잊어가는 중 같다.

서울교육청에 학부모들이 모여 데모를 했다 한다. 강남의 한 아파트 주민들인데, 인근 보금자리주택의 학생 19명이 단지 안 중학교에 배정되자 철회를 요구한 것. 그러니까 임대주택 사는 가난하고 못사는 애들이랑은 자기 자식을 같이 공부시킬 수 없다는 얘기다. 무엇이 잘못됐는지 우리들 대부분이 이해한다. 무엇이 아이들을 사회 테두리로 밀어내는지 보인다. 허나, 그들의 바람대로 머지않은 날 임대주택은 서울 중심에서 멀어질 것이다. 실제로 이미 멀어졌다. 중심이라 믿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말 있잖은가. 사회통합, 그것은 자기들이 가진 것을 지키는 중심을 단단히 한다는 말이다. 테두리에 있어야 할 집과 사람들이 중심에 있기 때문에 사회적 문제가 발생한다고 믿는 부류들이다. 그들은 오로지 그 문제들을 바깥으로 밀어내는 것이 최선이라고 믿지 않던가. 자기를 지킨다는 것은 자신을 잊는 것이 아니라 양심에 근거한 가치를 이루는 것. 사람이 사람인 이유를 잊지 않는 것이다. 자신을 잊지 않은 사람으로 중심이 바뀌어야 한다. 바깥으로 밀려나는 우리가 세금을 더 많이 내고 있지 않은가. 나만 잘살자고 우리가 세금을 이리 많이 내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더불어 살기 위해 우리는 애쓴다는 말이다. 이 사회는 우리 것이란 말이다. 이제 너희들 차례라는 말씀. 싫으면 이제 니들이 나가라는 말이다.

백가흠의 눈

뜬금없이 떠오르는 시 한 편, 아름다운 구절들을 생략하니 전혀 다른 의미로 읽힌다. ‘(중략) 죽음은 그렇게 온다/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활짝 핀 모란꽃 옆에서/ 졸음에 빠져들며/ 자신을 잊어가는 것이다’(박형준, ‘자취’)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