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나는 일을 못한다]“마음에 안 들면 니가 직접 하세요”

“화려하면서도 심플하게 해주세요.” ‘아이고… 그런 게 어딨음? 너님이 해보세요…’라는 말이 목구멍을 넘으려다 만다. 듣다보면 어이가 없어서 마음속에 작은 화산이 폭발하는 것 같다.

“사람들이 광합성을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일 안해도 되고….”

“그러면 햇빛을 관리 독점하는 누군가가 생기겠지. 낄낄.”

“아… 일 그만두고 싶다. 쉬고 싶어.”

“아 나도. 어디 로또 같은 거 안 되나? 왜 근로기준법엔 유급 안식월이 없는 거야??”

이것도 벌써 한참 전 이야기다. 사실 나는 소진된 지 오래된 웹디자이너 일못(일 못하는 사람)이다. 에너지가 하도 많아서 ‘흥 부자’(흥이 많은 사람) 하면 나였는데, 도대체 어쩌다가 내가 ‘일 잘하고 싶던 일못’에서 ‘일 안하고 쉬고만 싶은 일못’이 된 것일까?

우선, 내가 일못이라고 스스로 인정하게 된 계기는 전공과 무관한 웹디자이너로 직종을 변경하면서부터였다. 해외의 멋진 웹사이트들을 보고 “와 나도 해보고 싶다! 열심히 하면 되겠지?” 하고 무작정 뛰어들었다. 그리고 예술 전반에 흥미가 있었기 때문에, 이 분야 일을 하면 내 개인 창작물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취미가 곧 일이 된다니, 좋아하던 거니까 오래 해도 질리지도 않고 이게 바로 일석이조 아닌가? 하고 시작했다.

처음에는 신기하고 재밌었다. 하지만 컴퓨터 직종은 우선 타고난 감각과 어마무시한 학습 시간을 요구했다. 하지만 막상 해보니 난 감각도 없었고, 원래도 느린 편인데 미숙하다 보니 일 처리는 계속 늦어졌다. 늦으니까 야근하고, 못하니까 야근하고, 모르는 거 공부해야 하니까 야근하고, 야근하니 아침에 지각하니까 야근하고, 주말에는 도망치듯 쉬니까 야근하고 하다 보니 나중엔 그냥 사무실에서 사는 것처럼 됐다. 아침에 출근해서 뭐 한 것도 없는데 정신 차려보면 캄캄한 밤이었다. 한동안은 계절이 바뀌는 것도 알 수 없는 지경이었다.

해야 하는 공부는 왜 이리 많은지… 어도비를 축으로 한 다양한 디자인 프로그램들과 제이쿼리 같은 코딩 언어는 기본이고 여기에 스마트폰, 태블릿PC 등 새로 나온 기계에 대한 지식도 꾸준히 업데이트 해야 한다. 동영상 편집툴도 다룰 수 있으면 좋았다. 디자인 경향도 계속 공부해야 한다. 물론 남들은 기본으로 다하는 이것도 나는 많이 버거웠다.
“화려하면서도 심플하게 해주세요.”

‘아이고… 그런 게 어딨음? 너님이 해보세요…’라는 말이 목구멍을 넘으려다 만다. 듣다보면 어이가 없어서 마음속에 작은 화산이 폭발하는 것 같다. 디자이너들은 점, 선, 면, 색, 구도 등 디자인 요소들에 의미를 넣거나 빼면서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의도대로 표현하고자 노력한다. 보통 제한시간이 있는 작업들이라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는 디자인들도 많다. 하지만 때로는 회심의 역작이라며 디자인을 내보이는 때도 있는데 이때, “안 예뻐. 이상해. 아 여기는 빨간색은 좀 아니지 않나?” 이런 소리를 들으면 일단 빨간색의 색채학적 의미부터 왜 여기에 쓰였는지 나름 설명해 보지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속으로만 외친다. ‘나의 온갖 개똥철학의 산물로 정한 빨간색인데!! 이 의미를 이해 못하다니!! 그리고, 무엇보다 예쁘지 않나? 완벽한데?!!?’

회의가 다음으로 미뤄지고, 폭풍 같은 감정의 회오리가 휩쓸고 나면 어느새 잔잔해진 마음 위로 짙은 패배감이 내려앉는다.

‘하… 여기서 뭘 더 어떻게 고치나…. 일잘(일 잘하는 사람)들은 한 번에 잘하겠지? 나 때문에 팀 전체 일정이 밀리는 건가, 도대체 나는 왜 민폐 일못으로 태어났나….’

물론 그리고 다시 야근을 시작한다. 내 개똥철학과 삶은 또 사라진다. 시간이 없으니, 가외로 달려들었던 내 작업에 대한 포부도 희미해진다. 오로지 일만이 내 일주일을, 한 달을, 1년을 채워나간다. 언젠가는 내가 사라지기 전에, 잃어버린 나를 찾기 위해 일을 잠깐 쉬고 싶다. 마음속에 활화산이 없는 곳에서 오로지 나를 위한 디자인을 해보고 싶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세상의 모든 디자이너들이 동시에 안식월을 쓰는 거다. 그럼 화려하면서 심플한 디자인은 누가 하느냐고? “니가 해!! 낄낄.”

그래, 나는 일을 못한다

「배람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 회원」

망고 맛 메로나 아이스크림처럼 의식의 경계를 확장하는 디자인을 하고 싶은 웹디자이너다. 궁극적으로는 종합예술인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