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창선의 눈]동굴 속에 갇힌 공화국 시민들

지하동굴 속에 죄수들이 포박되어 있다. 이들은 앞만 보도록 되어 있고 머리를 돌릴 수도 없다. 자신들 뒤쪽에서 타오르는 불빛으로 맞은편 벽면에 투영되는 그림자들만 볼 수 있을 뿐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벽면에서 보는 그림자들을 실물로 알고 있다. 그런데 그들 가운데 누군가가 가파른 오르막 길을 통해 동굴 밖으로 나와 빛을 보고 세상의 진짜 실물들을 보게 되었다. 자신은 행복했지만 동료 죄수들을 불쌍히 여긴 이 사람은 다시 동굴로 내려갔다. 그러나 동굴 밖 세상 이야기를 전해들은 동료 죄수들은 그가 위로 올라가더니 눈을 버려가지고 왔다고 하면서 비웃었다. 자기들을 풀어주고 인도해가려는 그를 죽여버리려고까지 했다. 플라톤의 <국가> 제7권에 나오는 대화 내용이다. 여기서 동굴 밖 세상은 이데아(Idea)이고, 동굴 밖 세상을 보고 그 놀라운 사실을 동료들에게 알려주려고 다시 동굴로 들어간 사람은 철학자이다. 그러나 철학자의 노력은 자기 눈앞에 보이는 것이 실재라고 굳게 믿는, 그래서 동굴 밖으로 나가려 하지 않는 어리석은 동료들로부터 비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다.

그 철학자의 역할을 하는 사람들은 우리 시대에도 있다. 비록 영원 불변의 이데아까지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동굴 밖에 있는 진짜 세상을 알리려는, 동굴 안에 있는 그림자는 가짜임을 알리려는 사람들이다. 서울고등법원은 공직선거법 위반 및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김어준-주진우 두 사람에게 1심과 마찬가지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제기된 의혹들이 완전히 허위라고 단정할 수 없다며, 언론의 자유는 인간 존엄의 핵심적 가치라고 했다. 김어준은 선고 직후 “앞으로도 이상한 것은 이상하다고 말하겠다”고 했다. 실제로 두 사람이 기사와 방송에서 밝힌 내용은 ‘이상하다’는 수준을 넘어선 것으로 보기 어려웠다. 대통령의 동생이 5촌 되는 사람들의 피살사건과 관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은 얽히고설킨 사건의 내용을 접하면 충분히 가능한 것이었다. 그런데도 그 이상하다는 말조차 허용이 되지 않는 사회를 우리는 살고 있다. 법원에서 무죄 선고가 났다고는 하지만, 기소되어 재판을 받는 당사자들은 언제 감옥에 갈지 모르는 각오를 하고 시달려야 했다. 어디 김어준·주진우뿐이었는가.

언론의 자유라는 인간의 존엄은 곳곳에서 훼손되고 있고, 시민들의 입에는 재갈이 물려지고 있다. 오늘 권력은 사람들을 동굴 안에 가둬두려 하고 있다. 혹여라도 진짜 세상을 보게 될까 두려워 뒤조차 돌아볼 수 없게 하고 있다. 권력을 향해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는 명예훼손이며 심지어 ‘종북’이라는 단죄를 받기 십상인 세상이다. 그래도 무릅쓰고 말하는 사람들은 있다.

동굴 속 벽에 비친 그림자는 가짜이고 동굴 밖에 나가면 태양과 물이 있고, 밤에는 별도 볼 수 있음을 알리는 사람들은 이 험한 세월에도 여전히 존재한다. 그런데 우리는 그들에게 무엇이라고 답했던가. 때로는 그들더러 동굴 밖에 갔다오더니 눈을 버린 것 아니냐고 비웃지는 않았던가. 결박을 끊어내고 동굴 밖으로 나가려는 생각을 포기하고 손을 뿌리치지는 않았던가. 플라톤의 죄수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상하다고 해서 모두 음모이고 거짓은 아닐 게다. 하지만 이상할 때 이상하다고 해야 그 속에 숨어 있던 거짓을 밝혀낼 수 있다. 그리하여 햇빛을 볼 수가 있다. 이제 선택을 해야 한다. 포박당한 채 자기 눈앞에 보이는 것만 현실이라고 믿는 노예로 살 것인가, 아니면 우리를 위해 돌아온 동료의 손을 잡고 동굴을 탈출하는 결단을 내릴 것인가. 공화국의 시민들에게 제3의 길은 없다.

<시사평론가>

유창선의 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