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로 본 세상]<유쾌한 왕따>-왕따, 폭력과 장난의 경계선

<유쾌한 왕따>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 대하여 질문을 던진다. 피하고 싶은 우리의 맨 얼굴을 보여준다. 가면 없이 만나는 인간의 맨 얼굴을 고작 중학교 3학년 아이들을 통해 봐야 하는 건,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니다.

왕따 문제는 인간의 맨 얼굴, 혹은 맨 얼굴 뒤에 감추어진 또 다른 얼굴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개인적인 문제와 사회적인 문제가 복합적으로 녹아들어 있기 때문이다. 낯선 날것의 느낌이어서, 그 상처들이 너무 처참해서 왕따 문제를 정면에서 다루기가 쉽지 않다. 상처를 정면으로 직시한다는 건 역설적으로 너무 뻔한 이야기가 되기 때문에 작품 안에서는 장르 안으로 녹여 넣는 걸 선택한다.

만화에는 ‘학원물’이라 부르는 장르가 있다. 만화는 역사 속에서 어린이 신문이나 잡지 혹은 만화방을 통해 유통되며 주로 어린이들을 위한 매체로 자리 잡았다. 그러다가 독자의 성장과 함께 점차 중·고생들에게도 읽히기 시작했는데, 자연스럽게 중·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하는 만화들이 등장했다. 중·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하지만, 열심히 공부하는 푸른 학원의 모습보다는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는 격투와 연애가 교차하는 그런 만화들이었다. 우리나라에서 학원물은 90년대 중반 만화잡지가 번성하며 크게 인기를 얻기도 했다.

김숭늉 작가의 만화 <유쾌한 왕따> | 레진코믹스

잔혹하게 정면으로 직시한 왕따문제
많은 학원물 안에서 왕따라는 주제와 소재를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다. 격투나 로맨스를 다룬다고 해도 학교나 교실에서 벌어지는 인간관계는 필연적으로 왕따 문제를 담아낼 수밖에 없다. <일진의 크기>(글 윤필, 그림 주명)는 거대한 체격으로 교실의 일진으로 군림하던 주인공이 점점 몸이 작아지는 병에 걸린다는 판타지한 상상력으로 왕따와 데칼코마니인 일진의 문제를 다루기도 했다. 그런데 김숭늉의 <유쾌한 왕따>는 제목처럼 왕따 문제를 정면에서, 그것도 아주 잔혹한 방법으로 다룬다. 약간의 은유도, 장르를 통한 순화도 모두 거부하고 정면으로 직시한다. 잔혹하게도.

소똥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중3 동현은 왕따다. 만화는 교내 방송에서 동현의 생일 축하 방송이 나오며 시작한다. 아름다운 학교에 생일 축하 방송이 울려퍼지는 순간, 그러니까 자신의 생일날 동현은 옥상에서 같은 반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한다. 함께 왕따를 당하는 진국이 있지만, 진국이도 동현과 같이 엮이기를 싫어한다. 진국은 돈을 주며 괴롭힘을 벗어난 상태니까.

옥상에서 동현을 괴롭히고 먼저 들어온 교실의 권력자들은 옥상에서 자살 충동에 시달리다 뒤늦게 교실로 돌아온 동현에게 아무 죄책감 없이 묻는다.

“야! 소똥! 왜 이렇게 늦게 와?!”

“난 또 자살한 줄 알았네.”

동현은 어쩔 수 없이 가기 싫은 교실 뒷자리로 간다. 교실 뒷자리에는 권력의 정점에 있는 일진 성환과 지은이 있다. 동현은 ‘어떻게 하면 얻어맞지 않고 이 상황을 넘길 수 있을까’만 고민한다. 조금 더 버티면 졸업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기도 한다. 수업이 시작되면 동현은 마음속으로 자신의 욕망을 실현한다. 모두를 죽이는.(이후 이야기의 전개에서 보자면 조금은 사족처럼 보이는 장면이기도 하다)

동현을 괴롭히는 일진 성환은 교실에서는 동현을 때리지 않는다. 작가는 이를 내레이션을 통해 ‘폭력과 장난의 경계선’이라 부른다. 교실은, 아이들의 공동체는 폭력과 장난의 경계선에 아슬하게 걸쳐 있다. 이건 현실이다. <유쾌한 왕따>는 가상의 안락함보다는 현실의 선명함을 선택한다. 도대체 어느 지점을 가상으로 독해해야 될지 선택할 수 없다. 폭력과 장난의 경계선,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당하는 동현에게는 폭력이지만, 교실의 모든 아이들에게는 장난이 된다. 아이들은 적극적으로 장난에 동참하거나 적어도 무관심함으로 함께한다. 아이들의 욕설과 은어가 난무하는 말풍선들 안에서 폭력과 장난이 넘나든다. 아주 일상적으로. 그래서 만화의 한 장면 한 장면이 사실적으로 받아들여진다.

그곳에 수현이 전학을 온다. 수현은 동현 옆자리에 앉게 되고, 동현은 자신을 사람처럼 대해주는 수현에게 호감을 느낀다. 하지만, 여전히 동현은 왕따일 뿐이다. 만화는 수현으로 인해 동현이 왕따를 탈출하는 ‘판타지’를 보여주지 않는다. 동현과 수현의 로맨스도 없다. 단지 교실에는 권력관계가 있고, 장난으로 폭력을 외면하는 아이들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여전히 괴롭힘을 당하는 동현에게 “그래 한 학기밖에 안 남았지만 반 애들 다 착하니까 사이좋게 지내”라고 말하는 담임이 있을 뿐이다.

담임 선생님이 학교 지하실을 정리하라는 어느 날, 사건이 벌어진다. 앞 화에서 복선을 깔아놓은 대로, 지진이 일어나고 반 아이들이 죽고, 고립된다. 그 와중에 아이들은 공포와 광기에 지배를 당한다.

마치 모치즈키 미네타로의 <드래곤헤드>를 보는 것 같다. 물론 <유쾌한 왕따>는 <드래곤헤드>와 다르다. <드래곤헤드>는 인간의 감정이란 무엇인가를 묻는다. 뇌에서 두려움을 지배하는 곳을 마비시키는 인간들의 모습을 통해 인간과 감정의 문제라는 실존적인 질문을 던진다.

공포와 광기의 지배를 당하는 아이들
<유쾌한 왕따>는 지진으로 공동체를 고립시킨다. 그 공동체는 권력관계와 함께 존재했고, 권력관계에 참여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권력관계의 정점에 있던 (동현과 진국을 괴롭히던 일진) 성환이 죽고 그나마 적은 수의 아이들이 고립되면서, 권력관계는 뒤틀린다. 만화는 맨 얼굴의 왕따 이야기에서 장르물로 전개된다. 장르의 법칙에 따라 고립되고, 죽고, 죽인다. 왕따 문제로 드러낸 맨 얼굴은 장르물에서 더 유효하게 적용된다. 고립되고 생명에 위협을 느끼는 순간 작은 공동체는 어떻게 유지되고, 망가지는가를 보여준다.

만화로 본 세상

작품은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 대하여 질문을 던진다. 피하고 싶은 우리의 맨 얼굴을 보여준다. 가면 없이 만나는 인간의 맨 얼굴을 고작 중학교 3학년 아이들을 통해 봐야 하는 건,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니다. 아마도 <유쾌한 왕따>는 역설적인 제목처럼 다양하게 독해될 것이다. 어떤 독자들에게는 속 시원한 장르물로 읽힐 수도 있다. 복수는 성공하니까. 하지만 작은 교실의 권력관계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아이들, 그리고 사고로 인해 모든 것이 뒤틀린 상황에서 마주하는 아이들의 대응방식은 단순한 장르 복수담으로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박인하 만화평론가·청강문화산업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