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내시경]싱어 송 라이터의 뮤지컬 무대

왕년의 흥행 콘텐츠를 가져와 무대용 뮤지컬로 탈바꿈시켜 인기를 누리는 경우들은 무궁무진하다. 요즘 우리 공연계에 막을 올리는 작품들만 봐도 알 수 있다. 소설과 영화로 유명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역시 소설이 원작인 <노트르담 드 파리>, 엘비스 프레슬리의 음악으로 꾸민 <올슉업>, 영화에서 출발한 <원스>와 <킹키 부츠> 등이 전형적인 사례들이다. 특히 두드러진 것은 싱어 송 라이터들의 활약이다. 자신만의 개성과 음악적 스타일로 인기를 누렸던 대중음악가들이 뮤지컬 무대로 활동 영역을 넓히면서 흥미로운 실험들이 늘어나고 있다. <라이언 킹>, <아이다>, <빌리 엘리어트>를 작곡한 엘튼 존, <킹키 부츠>를 만든 신디 로퍼 등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인기가 높은 ‘스팅’이 그 대열에 가세했다. 브로드웨이의 근작 뮤지컬 <더 라스트 쉽>(The Last Ship)이다.

브로드웨이 뮤지컬 <더 라스트 쉽> | thelastship.com

스팅의 골수팬이라면 뮤지컬 속 음악들이 이미 익숙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지난 2013년 그의 12번째 정규 앨범으로 발매됐던 바로 그 노래들이 무대에서도 대부분 등장하기 때문이다. 엄격히 말하자면 음반 속 음악들이 이미 무대를 위해 고안된 노래들이었다고 할 수 있다. 더 후(The who)의 음반인 <토미>(Tommy)를 무대화했던 것이나 핑크 플로이드의 <더 월>(The Wall)을 영화화한 것, 혹은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의 마지막 앨범 <프로이디아나>(Freudiana)가 오스트리아에서 독일어 뮤지컬로 탈바꿈됐던 것과 엇비슷한 행보다. 물론 음악가 스팅의 애호가라면 여간 흥미로운 실험이 아닐 수 없다.

뮤지컬 <더 라스트 쉽>은 국내 관객에게도 꽤나 친숙할 만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조선(造船) 사업이 사양길로 접어들며 겪게 되는 영국 시골 마을의 번민과 갈등 특히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아스라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아들이 자신과 마찬가지로 배 만드는 노동자의 삶을 살기 바라는 아버지와 정반대로 지긋지긋한 노동자의 삶을 벗어나 고향을 떠나고 싶어하는 주인공, 그리고 이 와중에 뜻하지 않게 이별을 경험하게 되는 연인과 나중에 알게 되는 그녀의 아들 탐이 지닌 출생의 비밀 등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브로드웨이 뮤지컬 <더 라스트 쉽> | thelastship.com

뮤지컬에는 스팅의 개인적인 삶이 담겨져 있다는 후문도 있다. 스토리의 배경이 되는 영국 북동부의 월센드나 이야기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공장 풍경 등은 사실 스팅의 어린 시절 추억 속 이미지들이기 때문이다.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는 실제로 조선소 노동자였을 당시의 삶이 얼마나 치열하고 거칠었는지를 회상하기도 했는데, 뮤지컬에서 등장하는 배 만드는 공장의 땀과 불꽃이 튀는 남성적인 풍경과 시대의 변화로 몰락의 길을 걷는 80~90년대 조선사업의 단면은 바로 음악가 스팅의 생생한 체험의 투영이었던 셈이다. 관객들로 하여금 소셜 리얼리즘의 속 깊은 감동을 느끼게 해 주는 배경이자 이유다. 아무래도 작품의 배경이나 줄거리, 그리고 무엇보다 작곡자 겸 음악감독으로서 음악에 대한 그의 속 깊은 이해와 진정성 있는 무대 퍼포먼스가 사람들로 하여금 잔잔한 감동을 느끼게 하고 있는 듯하다.

문화내시경

K팝의 한류 열풍에 대한 소식은 신물 날 만큼 자주 들리지만, 이를 활용한 2차 부가가치의 창출 소식은 무슨 영문인지 감감하다. 하나를 통해 하나만 얻는 것과 열을 넘어 백을 얻는 것에는 분명 차이가 있다. 문화산업의 부가가치란 굴리면 굴릴수록 극대화되게 마련이다. 뮤지컬 산업의 글로벌한 흥행 트렌드가 주는 교훈에 귀 기울여보길 바란다.

<원종원 순천향대 신방과 교수·뮤지컬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