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돈 못벌어 남는 학생들에게 돈 더 내라는 대학들

대학 졸업을 유예하는 ‘취준생’들에게 대학은 점점 남아 있기 힘든 공간이 되어가고 있다. 졸업을 미루는 대신 등록금이나 기성회비를 낼 것을 요구하는 대학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신분만 대학생인 백수 처지도 한탄스러운데, 대학의 야멸찬 처사는 ‘취준생’들을 더 슬프게 한다.

‘마지막 방학이었으면 좋겠다….’ 매일 아침 가방을 챙겨 학교로 나서며 드는 생각이다. 지난해 하반기에도 대학생 김세중씨(27·가명)는 취업에 실패했다. 김씨가 대학에 들어간 건 2007년이었다. 설마 8년이 지난 2015년에도 졸업을 못하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대학 동기들은 이미 학사모를 쓰고 대학 문을 나섰다. 하지만 이미 지난 학기에 한 번 졸업을 유예했던 김씨는 오는 봄학기에도 또 한 번 졸업을 미뤄야 하나 고민 중이다.

김씨를 더욱 망설이게 만드는 것은 등록금 탓도 크다. 학칙이 바뀌어 졸업을 미루려면 등록금을 내야 한다. 지난 학기까지는 학칙이 허용하는 한에서 등록금을 내지 않고 졸업을 미룰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졸업 요건인 토익 등의 영어시험 점수를 제출하지 않으면 등록금을 내지 않고도 재학생 신분이 연장됐던 것이다. 재학생이라는 이름표를 더 오래 달고 다니려는 이유는 하나다. 졸업생보다는 재학생이 조금이나마 취업할 확률이 높다는 판단 때문이다.

서울 소재의 한 대학의 학위수여식장에서 졸업생들이 앉을 의자가 거의 대부분 빈 채로 놓여 있다. | 이상훈 선임기자

50~60만원대 추가 등록금 부담해야
학교 도서관으로 꼬박꼬박 나가긴 하지만 막상 할 일은 많지 않다. 집에 있으면 눈치도 보이고, 도서관이라도 안 가면 생활이 흐트러질까 두렵다. 채용공고가 뜸하게 올라오는 비수기더라도 취업정보과에 들러 새로 올라온 공고들을 살펴본다. 방학도 그렇지만 학기가 시작하고 채용 시즌이 되면 기업 채용설명회 자리에 빠질 수 없으니 매일 학교에 들러야 한다. 남는 시간에 갈 곳은 도서관뿐인데 졸업생이 되면 들어가기 힘들다. 이런저런 생각 끝에 등록금을 내더라도 졸업유예는 해야겠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래도 한 학기 60만원은 너무 비싸다. 집에다 손 벌리기도 미안하다.

어머니는 김씨를 보며 김씨의 외삼촌이 떠오른다고 했다. 외삼촌은 졸업학기에 느닷없이 IMF 외환위기를 맞은 92학번이었다. 대학 시절 도서관 대신 당구장과 록카페에서 살았던 외삼촌은 날벼락을 맞은 뒤 부랴부랴 고등학생 때도 안 다니던 영어학원에 등록했다. “외삼촌은 그래도 대학 때 실컷 놀았던 기억 하나는 남았잖아요. 저희 또래 대학생활은 처음부터 성적, 영어, 자격증, 스펙, 이게 다였어요.” 김씨는 외삼촌이 대졸 백수 신세를 면하는 데 2년 가까이 걸렸다는 얘길 들었다는 말을 덧붙였다. 휴학과 졸업유예로 김씨가 늘린 재학기간도 이미 2년이 다 됐다. 김씨는 언제까지 신분만 대학생인 백수 신세로 살아야 할지 가늠할 수 없어 답답하다.

졸업을 유예하는 대학생들에게 대학마저도 점점 남아 있기 어려운 공간이 되고 있다. 이미 재학기간과 졸업 학점을 다 채웠지만 취업이 안 돼 졸업을 미뤄온 대학생들에게 졸업을 미루는 대신 등록금이나 기성회비를 낼 것을 요구하는 대학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이화여대는 2015학년 1학기부터 ‘과정수료제’를 도입해 이미 졸업에 필요한 학점을 모두 취득한 학생들을 재학생에서 수료생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이 조치를 피하는 방법은 등록금의 6분의 1 이상을 내고 1학점 이상의 강의를 듣는 것뿐이다. 50만∼60만원대인 추가 등록금을 새로운 부담으로 짊어져야 하는 것이다.

졸업 요건인 졸업논문 제출이나 채플 이수를 미루는 등의 방식으로 재학생 신분이 유지됐던 학생들은 ‘수료생’이란 이름 때문에 취업과정에서 불이익을 보게 되진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올해 4학년이 되는 이지선씨(24)는 재학 중 최대한 인턴 경력을 쌓아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졌다. 기업들의 인턴 모집공고를 보면 적지 않은 수의 기업들이 자격요건에 졸업생이나 수료생을 제외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턴을 뽑을 때도 2·3학년 위주로 뽑는 회사들이 늘고 있다는데 재학생 신분까지 바뀌게 되면 스펙 쌓을 기간이 부족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죠.” 배씨의 주변 선배들을 보면 구직기간이 길어질수록 서류심사도 통과하지 못해 면접조차 못 보는 비율이 늘어 걱정이다. “기업들 입장에서는 ‘취업 적령기’를 넘기면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게 되나 봐요. 근데 학교는 돈 안 내면 나가라는 식이고….”

등록금 납부 없이 졸업유예가 가능했던 제도를 손봐 재학 신분을 유지하려면 등록금을 내도록 학칙을 바꾼 대학은 이화여대만이 아니다. 건국대와 서강대, 서울과학기술대 등도 최근 1학점이라도 등록해야 재학생으로 남을 수 있게 학칙을 조정했다. 등록금을 납부할 경우에만 졸업유예가 가능했던 대학들이 전국 144개 주요 대학 중 96곳(66.7%)으로 대부분을 차지했던 상황에서 학생들을 위한 혜택이 점차 줄어든 셈이다. 게다가 전남대와 경남대, 경동대 등 21곳의 대학에서는 등록금이나 기성회비의 일부 금액을 납부함에도 졸업유예 학생들은 수업을 듣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졸업을 미루는 근본적인 이유는 취업의 어려움 때문이다. 대졸자의 취업률이 갈수록 낮아지는 것과 비례해 졸업유예를 선택하는 학생들도 늘어났다. 재학생 1만명 이상인 대학 가운데 2011년 이전부터 졸업유예 제도를 실시한 대학 26곳을 대상으로 한 교육부의 조사 결과, 졸업유예 신청자는 3년 사이 두 배가 넘게 급증했다. 2011년 8270명이었던 졸업유예 학생은 2013년 1만4975명, 2014년에는 1만8570명으로 124%나 증가했다. 반면 같은 기간 4년제 대졸자 취업률은 2011년 54.5%에서 2012년 56.2%로 반짝 상승한 뒤, 2013년 55.6%, 2014년은 54.8%로 잇따른 감소세를 보였다.

취업정보업체 잡코리아가 취업준비생 1116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조사에 따르면 졸업을 미룬 적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53.2%에 달했다. 취업난이 대학을 떠나려는 학생들의 발목을 잡고 있는 셈이다.

졸업유예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대학들의 경우 일반적으로 등록금의 6분의 1 이상을 납부하도록 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 전국 4년제 대학 평균 등록금이 666만7000원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대학 측은 졸업유예 학생 1명당 한 학기에 최소 55만원 이상의 금액을 거둘 수 있는 셈이다. 이 부담은 고스란히 학생과 학생의 가계로 넘어간다. 등록금 부담이 없는 휴학의 경우 대부분의 대학이 3~4학기까지 휴학기간을 제한하고 있는 데 비해 부분 등록금 수입이 있는 졸업유예의 경우에는 8학기까지도 허용하는 대학이 6곳 중 1곳에 달했다.

서울의 한 대학 스터디룸에서 대학생들이 취업 대비 스터디 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 김태훈 기자

정부재정지원 평가지표 변경도 요인
졸업유예 학생들에게까지 적지 않은 액수의 등록금을 내도록 하는 이유에 대해 대학측은 강의 수강과 시설 이용을 위한 최소한의 비용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의 한 4년제 사립대 관계자는 “한 과목이라도 등록하면 그만큼 수업료 명목으로 등록금을 내는 건 당연하고, 여기엔 교육서비스를 이용하는 최소한의 행정비용까지 포함되어 있다고 보면 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대부분의 졸업유예 학생은 이미 졸업학점을 채워 추가로 수업을 들을 필요가 없는 데다 수강 중에도 인턴 등 구직활동으로 출석률이 저조하다는 점에서 학생들은 불필요한 서비스를 울며 겨자먹기로 이용하는 셈이다.

최근 대학들이 졸업유예를 제한하는 데에는 등록금 수입 외에 다른 목적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교육부의 정부 재정지원 제한대학 평가지표에서 주요 지표의 비중이 바뀐 탓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 재학생 충원율이나 취업률의 비중이 높았던 데 비해 새로 도입된 기준에 따르면 전임교원 확보율, 학사관리 및 교육과정, 교육비 환원율 등의 비중이 높아졌다. 졸업유예 학생이 많으면 취업률에 도움이 됐던 과거 지표에 비해 이젠 재학생 수가 증가하기 때문에 대학의 평가점수가 낮아지게 된 것이다.

재학생 수가 늘어난 불편은 졸업유예 학생이나 일반 학생 모두 피부로 느끼고 있다. 중간·기말고사가 있는 시기에는 교내 스터디룸이나 도서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졸업예정자들에 대한 불만글도 대학 인터넷 게시판에 자주 올라온다. “제가 신입생이던 2010년에 비하면 제가 봐도 도서관이나 스터디룸에 죽치고 있는 고학번 학생들이 늘어난 것 같아요. 스터디에서 만나는 다른 학교 사람들 말을 들어봐도 졸업 못하고 있으면 학교에서 은근히 후배들 눈치 보일 때가 많다더라고요.” 성신여대 학생 윤은기씨(25)도 동기들과 취업 스터디를 할 때면 차라리 대학 인근 카페를 찾는 게 마음이 편하다. 하지만 후배들 눈치야 그렇다 쳐도 졸업유예 학생 등록금까지 받는 대학이 시설을 확충하는 등의 지원이 부족하다는 점은 불만스럽다.

윤씨는 졸업을 미루는 게 단순히 재학생이 졸업생보다 취업에 유리하기 때문만은 아니라고 말했다. 스펙을 쌓으려면 학교에서 공부하는 게 제일 낫기도 하고, 취직한 선배 소식이라도 건너건너 들으려면 학교 친구들을 통해야 하니까 나온다는 것이다. “장학금도 받은 적 없는데 취업준비생 등록금이라도 좀 깎아주면 어떤가 싶어요. 형편 어려운 친구는 등록금 때문에 시간 쪼개 알바까지 하는데, 정작 스터디 나오면 피곤해서 졸고 있고….” 윤씨는 그렇게라도 해서 재학생 이름표를 달고 있어야 불안이 덜하다는 친구도 있다고 말했다.

지난 학기 졸업유예 제도를 신청했지만 취업에는 실패한 윤씨는 졸업유예 학생들은 성적에서도 어느 정도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졸업유예 때문에 억지로 듣는 과목들도 그냥 보통 개설되는 강의이기 때문에 성적표를 받거든요. 근데 졸업 앞두고 여기저기 면접 보러 다니고 인턴하느라 못 나오는데 성적이 제대로 나올 리가 없잖아요. 그나마 출석은 교수님이 재량껏 봐주지만 성적은 낮을 수밖에 없으니까 한 학기 안에 취업 못하면 최종 평점 평균은 낮아지는 거죠.”

억지로 듣는 수업, 학점 평균만 까먹어
졸업과 취업을 앞둔 대학생 입장에서는 졸업을 유예시키는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그만큼의 대가가 돌아올지가 가장 큰 관심사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의 분석에 따르면 졸업유예자는 일반 졸업자에 비해 소폭이지만 취업의 질이 더 나은 것으로 나타났다. 졸업유예자의 고용률은 76.3%로, 75.7%인 일반 졸업자에 비해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지만 선망직장 고용률을 살펴보면 졸업유예자(31.3%)가 일반 졸업자(25.4%)보다 5.9%포인트 더 높았다. 월평균 임금도 일반 졸업자가 195만원인 데 비해 졸업유예자는 221만원으로 13% 더 높았다. 비정규직 비율 역시 졸업예정자(27.7%)가 일반 졸업자(33.4%)보다 낮았다. 수치상으로는 졸업을 유예하면서까지 들인 노력의 결과가 드러난 것이다.

졸업유예자가 일반 졸업자를 앞선 지점은 영어성적과 인턴 경험 여부 같은 이른바 ‘스펙’에서였다. 양정승 직업능력개발원 부연구위원은 “대학생들이 졸업유예 기간에 취업에 필요한 역량과 기술을 집중적으로 향상시키기 때문으로 보인다”면서 “그러나 졸업유예가 계속 증가한다면 노동시장 진입 연령 상승과 학비 지출 증가 등 사회적 비효율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기업들의 스펙 위주 채용 관행과 학비 부담을 학생에게 일방적으로 전가시키는 대학의 정책이 만나 사회적인 비용만 더 늘어난다는 것이다. “취준생이 봉이죠. 알아서 스펙 쌓고, 싼 값에 너도나도 인턴 하겠다고 몰리고, 대학은 재학생 신분 돈 받고 팔아먹는 거나 마찬가지고….” 김세중씨도 불만은 많지만 우선은 대학 탈출이 급선무다. 같은 마음인 어머니는 김씨 지갑에 ‘취업 부적’을 넣어줬다. “IMF 때도 외할머니가 외삼촌이랑 가족들한테 부적 받아줬다던데, 성당 다니는 엄마가 이런 거에라도 기대려는 게 우습기도 하고 씁쓸하죠.”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