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경제]지금 만나러 갑니다-죽음이란 기회비용을 기꺼이 지불한 사랑

지나보면 붙잡고 싶은 순간이 있다. 그런 순간이 다시 돌아온다면 이번에는 ‘더 잘’ 보낼 수 있을까.

도이 노부히로 감독의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다시 찾아온 가장 행복했던 순간에 대한 이야기다. 1년 전 아내 미오가 병으로 숨졌다. 남편 타쿠미와 아들 유우지를 남겨놓고서. 미오는 죽기 전 남편과 아이에게 “비가 오는 계절에 다시 찾아오겠다”고 말한다.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아카이브라는 별로 잠시 여행을 떠난 것일 뿐이라며. 장마가 시작된 그 해 초여름. 거짓말처럼 미오가 나타난다. 그녀는 가족에 대해 기억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이들은 꿀 같은 6주를 보낸다. 비가 그치는 날, 엄마 미오는 다시 사라진다. 그녀의 존재는 무엇이었을까.

남편 타쿠미도 불치병을 앓고 있다. 타쿠미는 아내 미오에게 묻고 싶었다. 남들과 같은 삶을 살지 못하는 자신을 왜 사랑했는지, 그리고 죽을 수도 있는데 왜 무리해서 아들 유우지를 낳았는지, 그래서 결국 아내는 행복했던 것인지.

원작은 이치카와 타쿠지의 판타지 연애 소설이다. 2003년 발행돼 일본에서 100만부를 팔았다. 2005년에는 TV 드라마로도 제작됐다. 숨진 아내는 어떻게 가족에게 돌아올 수 있었을까. 대학생 미오는 자신을 만나기 위해 도쿄로 온 타쿠미를 발 견하고 따라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한다. 의식을 잃은 동안 9년 뒤 미래로 간다. 이때 만나는 사람들이 미래의 타쿠미와 자신의 아들 유우지다. 의식이 깨면서 다시 현실로 돌아온 미오는 고민한다. 만약 타쿠미와 결혼을 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미래를 바꿀 수 있다. 스물여덟에 죽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대가가 있다. 남편 타쿠미와 사랑을 할 수 없고, 아들 유우지를 낳지 못한다. 8년 뒤 죽음과 가족의 사랑. 미오는 판단을 해야 한다.

[영화 속 경제]지금 만나러 갑니다-죽음이란 기회비용을 기꺼이 지불한 사랑

경제학은 한정적인 자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것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하나를 택하면 하나를 버려야 한다. 그래서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고 말한다. 어떤 선택을 위해 포기한 모든 것을 경제학에서는 ‘기회비용’이라고 부른다. 기회비용에는 눈에 보이는 명시적 비용과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발생한 암묵적 비용이 있다. 운영하던 식당 문을 닫고 1만원짜리 영화를 봤다고 가정해보자. 영화 비용으로 쓴 1만원은 명시적 비용, 영화를 보러간 대가로 포기한 식당 운영 수익은 암묵적 비용이 된다. 기회비용을 산출하는 방법은 회계사냐 경제학자냐에 따라 다르다. 회계사라면 영화 비용으로 쓴 1만원만 기회비용으로 계산한다. 경제학자라면 영화를 보느라 포기한 식당 운영 수익도 추정해서 더한다. 회계사 식으로 판단하면 기회비용이 너무 축소될 수가 있고, 경제학자처럼 하면 너무 부풀려질 수도 있다.

편익분석을 할 때 가장 골치아픈 부분이 이 지점이다. 논밭을 메워 건물을 짓는다. 논밭을 메우는 데 드는 비용과 건물을 짓는 비용만이 기회비용일까. 아니면 여기에다 이 논밭에서 매년 생산되던 농작물 가치까지 더해야 할까. 비용을 어디까지 보느냐에 따라 비용편익 분석이 달라질 수 있다. 대형 사업 전에 시행하는 환경영향평가나 비용편익분석(BC)이 조사 주체에 따라 달라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영화 속 경제

미오가 타쿠미와의 결혼생활을 택할 경우 얻는 것은 사랑하는 남편과 아들이다. 이때 발생하는 기회비용은 8년 뒤 죽음이다. 남편과 아이가 자신의 죽음과 맞바꿀 만큼의 가치가 있는가가 문제다. 도심 네거리 건널목에 선 미오. 선택의 시점이다. 그녀의 답은 ‘그렇다’였다. 미오는 결심한다. 비록 짧은 삶을 살더라도 사랑하는 그 둘과 함께할 미래를 택하고 싶다고. 그리고 유우지가 세상에 태어날 기회를 주고 싶다고. 스무 살의 타쿠미를 만나러 가는 스무 살의 미오는 자신의 일기장에 이렇게 남긴다. “지금 (사랑하는 당신들을) 만나러 갑니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